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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핀란드 대사 에로 수오미넨 '모르면 먼 나라 알고보면 이웃나라'[인터뷰]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11.02 08:30

기자로서 국내외 리더들을 만나 취재하다 보면 가장 자주 거론되는 나라가 핀란드다. 기업인들은 절차와 규제가 비교적 자유로운 핀란드의 기업경영 환경을 부러워한다.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과 삶의 만족도는 정치인들의 연구대상이며,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은 교육자들의 연구대상이다. 인구 550만의 작은 나라는 어떻게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그 해답을 에로 수오미넨 대사로부터 듣고 싶었다.

에로 수오미넨. 1985년부터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독일,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에서 근무했다. 최근에는 중국 광저우의 핀란드 총영사관에서 총영사로 근무했으며,핀란드 외교부 대외경제국에서 자국의 수출을 장려하는 ‘팀 핀란드Team Finland’의 리더였다. 2016년 9월부터 주한 핀란드 대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 홍수정 기자)

에로 수오미넨 대사를 만나러 가기 전, 인터넷과 각종 서적에서 핀란드에 대한 개괄적인 자료를 찾아보았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한국과 핀란드 사이에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두 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선진국이다. OECD가 주최하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매번 1, 2위를 다툰다. IT산업이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도 닮았다. 두 나라는 각각 일본과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국민들이 커피를 많이 마신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 국민들의 1인당 연간 커피콩 소비량은 12킬로그램(한국은 약 2킬로그램)에 달한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핀란드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공통점이 참 많더군요

‘케미’가 잘 맞는다고나 할까요(웃음). 교육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점이나,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정직과 성실’ 등의 가치관을 중요시한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2년 전 대사로 부임했을 때도 한국을 이해하고 생활에 적응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두 나라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에서 매번 상위권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서로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입시위주의 교육과정과 교육정책이 늘 문제점으로 지적받습니다. 핀란드의 교육현장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책이나 다큐 등을 통해 본 핀란드 학생은 공부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 역시 한국의 교육현장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저희 딸들(그는 딸만 여섯이다)은 제가 본국에서 근무할 때는 핀란드 학교를, 외국에서 근무할 때는 국제학교를 다녔거든요.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경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물론 핀란드 학교에도 시험이 있지만, 수업구조 자체가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합니다. 수업 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께 스스럼없이 묻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며 이해하기도 하지요. 개개인의 학습목표와 흥미를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또 핀란드의 교사들은 전원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있습니다. 질적으로 우수하고 잘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수업을 연구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점들이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핀란드 대사가 말하는 핀란드 자랑 3가지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한다’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국민 개개인이 각자의 재능을 불필요한 경쟁으로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데 결집시켜야 한다는 거죠. 청소년들로 하여금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배우고 싶도록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굳이 당장 쓸모없는 정보라도 말입니다. 당장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거든요.

협력 외에 또 한 가지 핀란드 교육의 핵심가치는 평등입니다. 핀란드 국민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교육도 직업교육도 모두 무료입니다. 대학마다 장단점은 있겠지만, 핀란드의 대학들은 모두 평준화되어 있습니다.

수오미넨 대사는 인생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라고 정의했다.“매사에 호기심을 갖고 묻고 배우다 보면 인생은 절로 깊어지고 풍성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석사학위만 세 개를 갖고 있는 ‘공부하는 외교관’이다. 1980년에는 뉴욕주립대에서 사회과학 및 행동과학 석사학위를, 1983년에는 헬싱키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영국 브리스톨대에서도 사회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여섯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에로 수오미넨 대사는 휴일이면 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다정한 가장이다.

1985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하셨으니 올해로 33년째 입니다. 외교관으로 진로를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재밌는 질문이네요(웃음). 우리는 인생에서 때때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정작 자신은 중요한 결정인지 모르고 그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나는 외교관이 되어야겠다’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어요.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한 건 트램(노면을 달리는 전차) 정류장에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외교관 양성프로그램과 임상심리 전문가 양성프로그램을 놓고 어디에 지원할지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외교관 프로그램에는 이미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어요. ‘임상심리 전문가 프로그램은 탈락할 수도 있으니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외교관 프로그램에 지원해야지’라고 생각해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철저하게 계획대로 사는 분도 계시겠지만, 인생이 늘 계획대로만 되는 건 아니죠. 설령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큰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어요.

<투머로우>에서 지금까지 취재한 대사들께서는 대부분 외교학이나 국제법, 국제경제 등을 전공하셨습니다. 대사님은 비전공자로서 외교관 업무를 수행하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처음부터 ‘나는 외교관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맡겨지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지요. 외교관 일은 워낙 다양하고 어려운 데다 업무량도 많으니까요. 외교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일을 하면서 외교라는 게 어떤 분야인지, 외교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쳤습니다. 국제기구에서 외교관의 역할과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외교관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지, 다자간 외교란 무엇인지 차이점도 배울 수 있었어요. 인생은 결국 배움이니까요.

핀란드를 깊이 이해하려면 꼭 봐야 할 자료① 서사시 <칼레발라>. 칼레발라는 핀란드의 다른 이름으로 ‘영웅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의사이자 문헌학자인 엘리아스 뢴로트가 카리알라 지방에서 수집한 시를 바탕으로 쓴 국민서사시가 <칼레발라>이다. 천지 창조를 시작으로 예언자 베이네뫼이넨, 대장장이 일마리넨, 협객 레민케이넨 등 세 사람이 북쪽 나라 포흐욜라의 로우히 여왕의 딸에게 구혼하러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외교관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핀란드 외교부에서 외교관을 육성하는 부서의 총 책임자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제가 가장 중요시한 기준은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가?’였습니다. 외교관이라면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주재국)에서, 다른 문화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따라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동향이나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이 나라의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또 자신의 나라를 주재국에 알릴 수도 있어야죠. 외교관이라면 어떤 분야를 깊이 알지는 못해도 모든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알아두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도 클래식부터 K-팝까지 다양하게 듣습니다. 최근에 방탄소년단 앨범을 딸에게 생일선물로 사준 적도 있어요. K-팝을 깊이 아는 건 아니지만 노래제목 정도는 알아두지요(웃음).

 

‘외교관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라는 수오미넨 대사의 말에 문득 핀란드의 휴대폰제조회사인 노키아가 생각났다. 1865년 설립된 노키아는 원래 종이와 타이어를 만들던 회사였지만, 1970년대부터 통신장비와 휴대폰으로 주력제품을 바꾸었다. 그리고 1998~2010년 세계 휴대폰 판매 1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시대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면서 지금은 휴대폰 사업을 정리하고 통신장비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핀란드를 깊이 이해하려면 봐야 할 자료② 영화 ‘언노운 솔저’. 핀란드 국민작가 ‘베이뇌린나’의 소설이 원작이다. 핀란드와 소련 간의 ‘계속전쟁(1941~44년)’이 영화의 배경으로, 평범한 국민들이 전쟁에 휩쓸리면서 겪는 고통과 전쟁의 무서움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제지회사에서 IT회사로 변신에 성공한 노키아가 정작 스마트폰 시대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대사님이 말씀하신 유연성과 개방성을 노키아가 조금 빨리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네. 하지만 이후에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속속 생겨났지요. ‘앵그리 버드’나 ‘클래시 오브 클랜’ 같은 세계적인 모바일게임들도 만들어졌고요. IT와 의료, 교육, 인공지능 등의 분야가 꾸준히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장, 새로운 제품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핀란드는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불립니다. 교육처럼 IT기업들도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를 꿈꾸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이 갔던 길을 무작정 좇기보다는 자신만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선 신문을 읽기를 권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고 신문은 읽지 않더군요. 신문을 읽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사회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가능하면 많은 것을 경험해보길 바랍니다. 저는 학생일 때 공부도 했지만, 친구들과 극장·전시회·음악회 등에도 부지런히 다녔어요.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도 하고요. 그래야 삶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할 수 있고, 해외에 가서 다른 나라, 문화권 사람들과 일할 때도 그들의 삶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 외에 영화나 음악, 공연 등도 유연성을 길러줄 훌륭한 소재입니다. 해외로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것도 좋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핀란드 선수들과 함께.

수오미넨 대사와의 이야기 주제는 문화, 교육,정치, 외교를 거쳐 인생 전반으로까지 넓혀졌다. 지난 3월,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156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핀란드는 10점 만점에 7.632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 그가 생각하는, 핀란드인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핀란드 국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유가 뭘까요?

지금까지 60년 넘게 살아온 제 경험에 따르면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입니다. 복지정책이 잘 갖춰져 있어 국민들의 삶이 안정되어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연립정부(다수당이 다른 정당과 함께 의석 과반수를 채워 구성한 정부)입니다. 그러다보니 실용적인 해법을 함께 모색하고, 의견이 부딪혀도 타협하는 정치문화가 잘 갖춰져 있지요. 국민도 그런 정부를 신뢰하며 법을 준수하고 타인을 존중하기 때문에 핀란드 사회가 원활히 작동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인내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삶은 그리 간단한 것도, 계획한 대로만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실수한다고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작년 3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설립한 교육·연구·업무 시설인 핀란드 타워 준공식에서 연설하는 에로 수오미넨 대사.

수오미넨 대사는 “20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세계 정치사, 특히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배움을 향한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일리톨 껌, 앵그리 버드 게임, 무민 캐릭터, 사우나….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핀란드에서 온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핀란드에 대해 배운 것들은 훨씬 더 많았다. 핀란드가 가까운 이웃나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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