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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경받는 아버지이고 싶다세상 모든 아버지를 대표해서
오세재 | 승인 2018.09.13 16:47

아버지는 왜 존경받기 힘들까?

영국문화원에서 설립 70주년을 맞아 비영어권 국가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어단어’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어머니mother’가 1위를 차지했고, 아버지father는 78위였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한 지 60여 년이 지난 뒤에야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분이다. 온갖 수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낳아주셨기에 아무리 존경해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수고와 희생이라면 아버지 역시 어머니 못지않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왜 좀처럼 존경을 받지 못하는가?

아마도 아버지, 즉 남자들의 서툰 표현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면서도 가족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버지일 것이다. 흔히 아버지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작은 잘못 앞에서도 호통 치는 사람’ ‘반면 자신의 잘못은 절대 인정 않는 권위주의자’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세상 모든 아버지가 가족을 향해 호령이나 변명 대신 자상하게 진심을 표현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관계는 사회생활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가정에서의 인간관계 역시 중요한데,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 서툴고 힘들어 한다.

그 비참한 심정을 그때 알았더라면
아는 후배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정신분열 증세까지 있었다. 후배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이면 아버지는 이 논바닥에서 저 논바닥으로 뛰어다니면서 연신 “엎드려!”를 외쳤다. 그런 괴상한 행동을 하는 아버지 때문에 후배는 친구들에게 ‘엎드려’라는 별명을 얻었고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후배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임종을 감지했는지,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후배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늘 학교를 마치면 일찍 집에 돌아오라’고 의미심장은 말을 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식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후배는 아버지의 그 마지막 말을 가볍게 듣고 해가 넘어가도록 친구와 놀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앓던 이를 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는 작은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가슴 아픈 사연을 듣게 됐다. 후배의 아버지는 6·25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다. 마침 아버지가 근무하던 부대에 막내삼촌이 전입을 왔다. 유달리 약했던 남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아버지는 동생을 자기와 같이 근무하도록 했다. 어느 날 밤, 부대에 큰 폭격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동생의 손을 잡고 어두운 밤길을 뛰고 또 뛰었다. 한참을 달리다 문득 동생을 잡은 손이 가벼워 정신을 차려보니, 같이 뛰던 동생의 몸이 폭탄에 맞아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아버지는 지나온 밤길을 훑었지만 결국 동생의 시신을 찾지 못했고, 결국 그 큰 고통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와보니 아내와 딸이 전쟁 중에 참혹하게 살해된 뒤였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오지 않았다. 떠난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 탓에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훌륭한 군인이요, 가정에 헌신한 가장이었지만 가족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알코올 중독자로, 정신이상자로 취급받은 것이다. 집집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다 비슷할 것 같다. 그런 아버지께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건 어떨까.

억만금과도 바꾸지 않을, 6천 원짜리 찌개의 행복
이렇게 이야기하는 필자 역시 젊어서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했다. 평소 엄하시던 아버지가 늘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고생하며 어떻게 우리를 키우셨는지 알게 되면서 아버지께 존경심이 생겼다. 하지만 필자도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서, “아버지, 존경합니다”라고 말씀드리지 못했다. 지금 내 앞에 아버지가 계신다면 주저없이 말할 것이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가장이십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에게도 대학생 아들이 둘 있다. 아들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세대차 때문일까. 아들들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번은 아들들이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마인드강사 일을 하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아들에게 내 지난 삶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서로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듣는 사람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까.

아들들에게 인생이야기를 한 번에 다 하면 너무 지루할 것이기에 10분 단위로 녹음을 해 보았다. 어디서 나서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대학을 다녔고 어떻게 결혼했으며, 어떻게 진로를 결정했는지 등을 녹음해서 듣고 또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 녹음파일들을 아들들과의 카톡방에 올렸다. 그 파일을 들은 아들들은 나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나 역시 아들과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졌다. 얼마 전에는 부산에 갔다가 아들과 점심을 먹었다.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대학가 맛집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6천 원짜리 찌개였지만, 그 행복은 값으로 매길 수 없었다.

“이제는 말할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필자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서툰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필자에게 ‘넌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도 잘 놀았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이 너무 익숙하고 편했다. 하지만 마인드강사가 되어 사람의 마음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면서 ‘진정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단순히 돈을 벌어 먹고살기 위해 사는 존재일까? 아닐 것이다. 인간은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서툴더라도 가끔씩 섭섭했던 이야기를 하거나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속내도 표현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삶이야말로 진정 인간다운 삶이구나 싶다. 이제는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표현하고 교감하며 사는 삶이 더 편하고 행복하다.

TV에서는 간혹 산이나 시골에 묻혀 세상과 인연을 끊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내용이 나오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내심 안타깝다. 그들이 세상을 등지고 사는 데는 사연이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경우다.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다 지친 사람, 사랑했던 이에게 버림받은 사람,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 얼마나 상처가 크고 아픔이 많으면 오지에서 혼자 산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는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혼자 살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혼자 살수록 마음은 계속 약해져 작은 어려움에도 더 힘들어하게 된다. 또 자기도 모르게 사회성을 잃고, 사람끼리 마음을 나누며 살 때 느꼈던 행복과 기쁨을 잃어버린다.

필자는 어느 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가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어. 그게 뭐냐면 아들한테서 ‘아버지, 존경합니다’ 하는 소리를 듣는 거야.” 설마했는데 아들이 바로 문자를 보내왔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겠지만, 너무도 행복했다.
흔히 세상을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에 비유한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가족과 아내,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는 삶에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맞서 싸울 힘이 생긴다. 험한 인생을 사느라 지치고 상처 입은 아버지를 향해 여러분이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바로 “아버지,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는 한마디인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가족에게 평소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마음을 표현해 보자. 어느 때보다 행복한 한가위가 될 것이다.

오세재
‘행복한 삶을 결정 짓는 건 물질 아닌 마음의 행복’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국내외 청소년, 공무원, 기업인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강연을 펼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 및 필리핀 교육부 공로상을 수상했으며,<경남일보>에도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오세재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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