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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풀어가는 소통과 화합의 리더모잠비크 옴부즈만Ombudsman 이자크 샨드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09.03 14:22

매년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은 각국 청소년부 및 교육부 장관들이 모여 청소년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베냉 고등교육부 장관, 아르헨티나 교육문화부 장관… 참가자 명단을 훑어내려가던 중 낯선 직함이 눈에 들어왔다. ‘모잠비크 옴부즈맨’? 모잠비크란 나라도 옴부즈맨이라는 직함도 모두 생소했다. 기자로서의 호기심과 취재욕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이자크 샨드’ 옴부즈맨과 인터뷰를 하기 전, 먼저 인터넷에서 모잠비크란 나라에 대해 간단히 검색을 해 보았다. 우리에게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친숙한 아프리카 남동부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는 그 마다가스카르를 바다 건너 마주하고 있다. 모잠비크가 지나 온 세월은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독립 후에는 국론의 분열로 다년간 내전에 시달렸으며, 지금은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해 국가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기자가 ‘모잠비크에서 온 리더와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인사를 건네자, 그는 ‘나 역시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악수와 함께 미소를 교환하며 우리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자크 샨드Isaque Chande. 모잠비크 최고의 종합대학인 에두아르두 몬드라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고교 교사와 교장, 국영 전기회사 변호사를 거쳐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지난 5월부터 잘못된 법률이나 공권력의 횡포로부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옴부즈만으로 선출되어 조국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사진 김흥수)

국가 요직에 계시다 보면 해외를 방문할 기회도 많으실 텐데,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시라고요?

네. 남아공 등 모잠비크 주변 나라들이라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는 출장도 여러 번 다녀왔지요. 캐나다나 브라질도 가 본 적이 있고요. 그런데 아시아에 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도 TV나 인터넷으로는 한국 등 아시아 국 가들을 자주 접하셨을 텐데요. 직접 와 보시니 어떻습니까?

아프리카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모습을 보고 그런 나라들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미국과 유럽 못지않게 발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수출액이 세계 10위권에, 조선업과 반도체는 세계 1위, 자동차 수출은 세계 3위라면서요? 독립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참 친절하고, 거리나 도시도 무척 깨끗했습니다. 이번 장관 포럼에서 자원봉사자로 활약한 대학생들도 서너 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더군요. 해외에서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온 학생들이라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동안 학생들이 조국에 기여하는 일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밖에 또 인상 깊은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에서 참석자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면 ‘이 나라에서 배울점이 뭐가 있을까?’를 유심히 살핍니다. 특히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주의 깊게 봅니다. 그 나라의 경제나 사회, 제도, 인프라 등은 결국 그 나라 사람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한국은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아주 높은 것 같습니다. 이번 장관 포럼과 함께 열린 IYF 월드캠프는 수천명이 참석하는 큰 행사인데도 모든 프로그램이 항상 정시에 시작되는 등 체계적으로 진행하더군요. 아프리카에서는 10시에 시작하기로 한 행사를 10시 반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잠비크라면 행사 중간에 쉬는 시간 등으로 허비되는 시간이 한 시간 반이 넘습니다. 그러면 진행에 차질이 생기잖아요? 포르투갈에 가보니 점심시간이 두 시간이 넘더군요. 식사 때 술도 즐겨 마시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점심 먹고 휴식 시간까지 해서 한 시간이면 충분하더군요.

마인드교육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말하기를 배우는데는 3년, 듣기를 배우는데는 60년이 걸린다’고 말씀하신 한국의 어느 대기업 CEO의 정신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가 뭔가 좀 안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안 듣잖아요? 마인드교육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는 정말 깊고도 강력했습니다.

모잠비크Mozambique.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모잠비크는 인구는 약 2,882만으로 세계 50위, 면적은 80만 1,590평방킬로미터로 세계 35위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후 소련과 쿠바 등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국가인 모잠비크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로 노선을 바꾸었다. 소총과 괭이, 책이 그려진 독특한 국기를 사용하는데, 소총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겠다는 의지를,괭이는 국가의 기반산업인 농업을 상징한다. 책은 끊임없는 교육을 형상화한 것이다.

모잠비크는 앙골라, 기니비사우 등과 함께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는 몇 안 되는 아프리카 나라들 중 하나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 열강들은 앞다투어 해외로 눈을 돌려 항로를 개척하고 식민지를 세웠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콜럼버스, 바스쿠다가마, 마젤란 등이 이때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이 같은 유럽 국가들의 해외 러시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1396~1460)였다.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로 동서양을 잇는 해양교역을 시작하는 한편 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앙골라, 중국의 마카오, 인도 등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수도 마푸토의 파노라마 사진ⓒ Andrew Moir

식민지에서 끌어 모은 막대한 지하자원과 농산물로 포르투갈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1822년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더 이상 예전의 부를 누릴 수 없게 됐다. 게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계기로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도 1960년대부터 하나둘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모잠비크도 앙 골라, 기니비사우와 함께 포르투갈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운 끝에 1975년 독립에 성공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의 특성상 모잠비크는 사바나(열대초원), 해양성 기후 등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bobrayner

모잠비크는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는 아랍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로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는 등 약 천 년 동안 아픈 세월을 보냈는데요.

제가 1960년생이니까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에 태어났지요. 무려 13년 동안 저희 부모님 세대들이 전쟁을 치른 끝에 독립해서 물려주신 나라가 바로 모잠비크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나라니까 당연히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발전시켜야죠. 국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세우려고 독립한 건데, 독립하기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게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물론 식민지 시절에 비하면 모잠비크는 훨씬 살기 좋아졌지만, 여전히 발전해야 할 부분들이 많고 여러 모로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절로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고, 그래서 이렇게 공직자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절에는 고생을 많이 하셨을 텐데요.

ⓒRosino

우리가 사는 곳은 분명히 모잠비크 땅인데도 정작 모잠비크 사람들은 살 집을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저희 집도 가난했는데, 아버지께서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노력 없이 성공할 수는 없다. 특히 책은 가난한 사람의 친구이니 늘 가까이 하라’고 강조하셨어요. 어려운 형편인데도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정부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기에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은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저는 제가 생각해도 참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웃음).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때 저와 제 친구 하나가 똑같이 최고점을 받고 졸업했어요. 그 친구는 오로지 공부만 하는 풀타임 학생이었지만, 저는 파트 타임 학생이었습니다. 아침에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거든요. 법률을 공부하려면 읽어야 할 자료들이 엄청나기 때문에 잠은 하루 세 시간 정도 자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때 함께 최고점을 받은 친구는 현재 대법원장으로 있습니다.
그 뒤에 석사 공부를 할 때도 최고 성적을 받았는데, 졸업식 때는 총리님이 참석하신 가운데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수님들이나 다른 친구들도 ‘저 친구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공부한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럼 대학 졸업 후에는 판사나 변호사로 일하셨습니까?
아니요. 고등학교에서 역사와 지리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네? 전공과 거의 무관한 직장 같은데, 어떻게 교사로 일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제가 법학을 공부하기로 한 건 법을 알면 가난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일이 많을 것 같아서였어요. 또 법을 다루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직장을 얻기도 쉬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독립 이후 모잠비크가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전공이나 적성과는 상관없이 정부가 정해주는 직장에서 일해야 했어요. 원했던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성심껏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게 스물서너살쯤 되었을 땐데, 14년을 근무하면서 교장까지 올랐습니다.

교사로 일하면서 지금도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모잠비크에서는 매일 아침, 학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서 조회를 가진 뒤 하루를 시작합니다. 한번은 학생 중 하나가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듣는 앞에서 선생님께 욕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학생의 처분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퇴학시켜야 했지만 그러자니 한 아이의 장래를 망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두면 다른 학생들에게 ‘선생님에게 저렇게 무례해도 되는구나’라는 잘 못된 생각을 심어주게 될 것 같고. 고심 끝에 결국 그 학생을 퇴학시켰습니다. 저로서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사회가 늘 법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꼭 집행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라는 샨드 옴부즈맨. 1996년에는 교직에서 국영 전기회사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변호사 겸 7천 여 직원들의 인사업무를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2008년부터는 모잠비크전기협회에서 6년 간 근무한 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궁으로부터 필리페 니 우시Filipe Nyusi 신임 대통령이 그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싶다는 것이 요지였다.

법무부 장관이라면 법조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 아닙니까.

포럼 기간 동안 부산 신항을 방문한 샨드 옴부즈맨. 새로운 곳을 방문할 때면 그의 눈은 자국 발전을 위해 벤치마킹할 거리를 찾느라 빛난다.

모잠비크에서 법무부의 정식 명칭은 법무·헌 법·종교부Ministry of Justice, Constitutional and Religious Affairs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법무부 장관직을 맡기고 싶은데 맡을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셨고, 그 제안을 수락해 2년 3개월 동안 장관으로 일 했습니다.

법무부 장관 재직 중 ‘옴부즈맨’에 취임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자리입니까?

옴부즈맨 제도가 처음 생긴 것은 1809년 스웨덴에서였다고 합니다. 옴부즈맨ombudsman은 스웨덴어로 대리인이라는 뜻인데요. 국왕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국법을 어길 경우에 대비해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직책입니다. 그 뒤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여러 나라에도 옴부즈맨 제도가 보급되었고, 지금은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오세아니아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법률이나 제도의 허점을 바로잡고, 권력의 부정不正이나 횡포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또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입니다. 모잠비크의 경우, 옴부즈맨은 국가 서열 8위에 해당하는 요직입니다. 웬만한 장관들보다 서열이 높지요.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시는군요.

대학생 리더스 포럼에도 참가해 대학생들의 아프리카 프로젝트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국민 중 누군가가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잘못된 법 집행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옴부즈맨을 찾아와 바로잡아 달라고 건의할 수 있습니다. 옴부즈맨은 그 사정을 듣고 분석한 뒤 ‘아, 이 사람이 정말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구나’ 하는 확신이 서면, 장관이나 해당 부처의 장에게 서신을 씁니다. ‘이 사람이 이러 저러하게 피해를 당했는데,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제안 내지는 권고하는 겁니다. 물론 그런 그 제안이나 권고에 법적 강제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장관이나 해당 부처의 장들은 대부분 옴부즈맨의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큼 사심 없고 공정한 인물이 옴부즈맨으로 선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옴부즈맨은 잘못된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법이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행정법이 그보다 상위의 법인 헌법에 위배될 경우 해당 법 조항을 개정 또는 폐지를 건의 할 수 있습니다. 모잠비크 헌법에 옴부즈맨 관련 조항이 삽입된 것이 2004년인데, 실제로 첫 옴부즈맨이 탄생한 것은 2012년입니다. 임기는 5년이지요.

옴부즈맨으로 선출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대통령께서 저를 부르셔서 “아주 중요한 자리에 적임자를 찾고 있는데, 자네가 맡아주면 어떻겠나?”고 물으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자리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누가 옴부즈맨이라고 귀띔해 주더군요. ‘그래, 대통령께서 원하시면 한번 해 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모잠비크에는 여당인 모잠비크 해방 전선FRELIMO과 제1야당인 모잠비크 민족저항운동RENAMO, 제2야당인 모잠비크 민주운동 MDM 등 세 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각 정당마다 한 명씩 후보를 내 세울 수 있는데 저는 여당 후보였고, 제1야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아 제2야당 후보와 둘이서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당선되려면 모잠비크 국회의원 250명 중 3분의 2, 그러니까 167명의 동의를 얻어야 했는데요. 의원 222명이 출석한 가운데 저는 196표를, 야당 후보는 23표를 얻었고, 나머지 3표는 기권이나 무효 처리되어 옴부즈맨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게 지난 5월이었지요.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현재 모잠비크 국회의원 250명 중 여당은 144명, 야당은 106명이다. 전임 옴부즈맨인 조세 아부도Jose Abudo의 경우, 투표 당시 여당 의원이 3분의 2를 넘었기에 야당의 지지 없이 당선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여당과 야당의 대립은 필연적인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그가 출석 의원 중 90%에 가까운 지지를 얻어 당선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여당과 야당, 양측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은 비결은 무엇입니까?

법무부 장관 시절, 국회와 정부를 연결해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과 일하거나 대화할 때도 상대의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았지요. 그래서 야당 의원들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물론 뇌물을 받거나 한 적도 없어요.

옴부즈맨은 요직인 데다 국민들의 기대가 큰 만큼 책임감도 클 것 같습니다.

옴부즈맨이 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서 제 인생에 아주 큰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모잠비크에는 아직 이 옴부즈맨 제도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에게 옴부즈맨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또 옴부즈맨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국민들의 신뢰도 얻으려면 시민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겠지요

오랫동안 리더로 일해 오셨습니다. 리더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요?

"리더라면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고, 혼자서가 아닌 모두의 힘을 모아서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지적하고 고쳐주고, 잘한 게 있으면 칭찬해서 의욕을 북돋워주고요. 그런 리더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어떤 조직이든 장(長)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이 곧 리더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것만으로는 리더라고 할 수 없죠. 진정한 리더leader라면 리드lead, 즉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와서 “이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격의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고, 혼자서가 아닌 모두의 힘을 모아서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지적하고 고쳐주고, 잘한 게 있으면 칭찬해서 의욕을 북돋워주고요. 그런 리더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법학도 출신이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강렬한 눈빛 때문에 대화를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이자크 샨드 옴부즈맨. 하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서 상대를 향한 배려가 느껴졌다. 기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국의 역사와 정치, 문화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모잠비크의 2022년 경제성장률이 14퍼센트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석탄과 흑연, LNG 등 천연자원을 개발하면서 모잠비크 경제가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샨드 옴부즈맨 역시 모잠비크가 부강한 나라가 되길 바라지만, 한 편으로는 국민들이 서로를 돕는 마음을 지속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모잠비크 국민들은 정이 많아요. 형제자매들 중에 누군가 가난하면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도와주는 식이죠. 이웃이나 외국인들에게도 친절하고요. 앞으로 나라가 발전 하더라도 서로 어려우면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런 아름다운 문화는 계속 이어나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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