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속에서는 매일매일 전쟁이 일어납니다. 우리 몸 안의 면역세포들이 아군이 되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균이라는 적군과 싸워 이겨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면역세포에 이상이 생겨 병균이 아닌 우리 몸 자체를 적군으로 오인하고 공격하는, 이른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자가면역질환에 걸리면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른다니,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전쟁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오래 전 어느 대안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에게 학교는 전쟁터였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학생들 생활지도 하랴, 수업준비 하랴…. 학생들과의 전쟁에 지쳐 동료들에게 투덜거리면 동료들은 의외로 학생들 편을 들었습니다. 교사가 교사 편을 들어주지 않다니! 기분이 상한 저는 학생들과 동료 모두를 마음에서 적군으로 분류했습니다. 마치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것처럼요. 적군들과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나요? 저는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저는 세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어민처럼 영어하기, 셰프처럼 요리하기, 발레리나 같은 몸매 가꾸기… 과연 제가 성공했을까요? 계획을 이루기는커녕 저는 스마트폰에 빠졌습니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올리느라 엄지손가락과 손목에 건초염이 생기고, 엎드린 채 스마트폰을 보느라 테니스도 안 치는데 팔꿈치에 테니스 엘보우(팔꿈치 관절과 팔에 무리한 힘이 주어져 팔꿈치 관절에 통증이 생기는 질환), 허리에는 수술도 소용없다는 퇴행성 디스크를 얻었습니다. 시간과 여유가 주어졌을 때, 제 삶은 자기계발이 아닌 방종으로 흘러갔습니다.

떠나고 보니, 제가 싸웠던 학생들은 제게 에너지를 주는 아군들이었고, 그렇게도 그만두고 싶던 학교는 저를 지켜주던 든든한 울타리였던 것입니다. 누가 진짜 적군이고 아군인지 정확히 분별하게 되었을 때, 저는 운 좋게 학교로 복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돌아온 학교는 여전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전쟁 중이었고, 학생들 역시 선생님들과 마음에 거리를 두고 지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얘들아, 나도 한때는 너희들에게 마음에 거리를 두고 지냈어. 그런데 나는 너희들을 공격하는 적군이 아니야. 너희들을 도와주려고 있는 아군이야.”

학생들은 아직 제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가면역질환에서 벗어났듯이 학생들도 곧 그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겠지요? 저는 이제 학생들을 위해 영어공부를 계속하고, 셰프 수준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받은 에너지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우아한 발레리나는 아니지만 격주로 실버대학에 가서 어르신들과 건강체조를 하며 마음에 기쁨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마음의 자가면역질환 환자처럼, 소중한 가족이나 직장동료들을 적군으로 오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성분이라면 혹 시댁 식구들을 향해 마음에 벽을 쌓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의 가장 큰 적군은 소중한 사람들을 향해 등을 돌리고, 저의 안전지대였던 학교를 떠나게 한 저 자신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은 우리의 성장을 돕는 아군입니다. 여러분도 진정한 아군과 적군을 발견해보시길 바랍니다.

이지연
텍사스 주립대에서 테솔(TESOL, 영어 외 모국어 사용자를 위한 영어교육) 석사 졸업. 현재 대안학교인 동서울 링컨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본 에세이는 지난 6월 ‘북테라피’ 독서클럽이 주최한 마인드강연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스피치를 글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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