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는 상사병에 걸렸다 [8] 사랑이 이루어지다, 상사병 끝!

남필현(사진 오른쪽) 씨는 2003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봉사단 에티오피아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도전하며 값진 것들을 얻어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남필현(사진 오른쪽) 씨는 2003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봉사단 에티오피아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도전하며 값진 것들을 얻어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남필현(굿뉴스코 에티오피아 지부장)

2003년 3월 10일, 나는 에티오피아를 향해 출발했다. 아프리카가 나라 이름인 줄 알았을 정도로 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가는 내내 비행기 안에서 한잠도 못 잤다.
에티오피아에서 제일 먼저 겪은 시련은 현지인들과의 소통 문제였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인 줄 알고 영한사전과 영어회화학습용 교재를 잔뜩 가져갔는데,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가 아닌 암하라어를 쓰고 있었다. 280개의 고유한 알파벳을 가지고 있는 에티오피아 현지 언어를 배우고 익혀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함께 절망이 찾아왔다.

하프탐무와의 손짓 대화

한번은 봉사단 센터 앞 공터에서 열린 축구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경기는 여느 경기와 다르게 좀 특별했는데, 낡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축구를 하다가 멈추어 서서 한참 손짓을 하는가 하면 이단 옆차기와 날라차기를 하며 다투기까지 했다. 무술 시합을 방불케 하는 그 축구 경기는 알고 보니 언어 장애와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경기였다. 이색적인 그들의 모습을 의아해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한 학생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했다.

‘하프탐무’라는 이름의 그 학생은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해 손짓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에티오피아에 온 지 한 달 만에 현지인과 나누는 대화! 신기하게 손짓으로 이야기가 통했다. 말을 못해서 벙어리, 귀머거리로 지내던 나였기 때문에 그와 마주앉은 시간이 즐겁기만 했고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하프탐무와 거의 매일 만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에티오피아 수화를 익혔다.

하프탐무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550킬로미터 떨어진 에티오피아 남부 지역 아르바믄쯔에서 공부하기 위해 온 학생이었다. 바나나 농장을 하는 가정에서 10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열병을 고치려고 약을 먹었다가 잘못되어 청력을 잃고 말았다. 하프탐무는 가난한 장애인이었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고,미래를 내다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하프탐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내가 지내온 시간들이 돌아봐졌다.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할머니와 살면서 늘 ‘세상은 불공평해. 나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이 되어 학업은 포기하고 소매치기와 좀도둑질을 일삼다가 경찰에게 여러 번 잡히기도 했는데, 할머니에게 근심을 많이 끼치는 나 자신이 싫어서 달라져보고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 하프탐무를 보며 내가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방학을 맞아 하프탐무의 고향인 아르바믄쯔를 방문했다. 아르바믄쯔는 바나나 농장이 끝없이 펼쳐쳐 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는데 전기도, 수도도 없는 정말 더운 마을이었다. 하프탐무의 가족들은 아르바믄쯔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인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내가 받기에는 과분한 호의와 관심 속에서 에티오피아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며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2013년 꼬레아 축구팀. 투머로우 희망캠페인이 시작됐다.
2013년 꼬레아 축구팀. 투머로우 희망캠페인이 시작됐다.

만남이 가져온 변화

‘에티오피아를 위해 일하고 싶다. 축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나처럼 방황하는 한국 학생들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도록 돕고 싶다.’ 하프탐무와 아르바믄쯔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이다. 에티오피아에서의 만남은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고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바라던 대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소속되어 일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고 이후 같은 꿈을 품고 일할 수 있는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지부로 파견되어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일해오고 있다.

새 유니폼으로 열심히 훈련하여 2014년 유소년 컵 축구대회에서 우승 후 유니폼을 선물 받았다.
새 유니폼으로 열심히 훈련하여 2014년 유소년 컵 축구대회에서 우승 후 유니폼을 선물 받았다.

에티오피아에 온 후 열심히 공부한 덕에 암하라어를 불편함 없이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는데, 더 많은 현지인들과 교류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또 2012년부터 유소년 축구팀 ‘꼬레아’를 창단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축구교육과 인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네 개 도시에서 세 개 팀씩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35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한다. 올해부터는 시 단위의 축구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2015년 축구공과 여러 축구 용품을 희망캠페인에서 후원 받고 더욱더 힘차게 운동하는 꼬레아팀.
2015년 축구공과 여러 축구 용품을 희망캠페인에서 후원 받고 더욱더 힘차게 운동하는 꼬레아팀.

그 나라를 잊지 못하는 병

나는 스물한 살 나이에 어두운 마음으로 막연한 변화를 기대하며 봉사단에 지원했는데, 오늘과 같은 삶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해외봉사단 에티오피아 지부장이자 봉사단 선배로서 후배 단원들을 만나면 내가 봉사활동을 하던 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들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원하는 게 뭔지,뭐가 힘든지, 언제 즐거워하고 언제 성숙하는지….

1년간 봉사하며 함께 지냈던 지부 가족들, 동기 단원들, 현지인들과 마음으로 연결된 후배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길고 짧은 메시지들을 보내온다. 즐거웠던 순간들보다 눈물 날 정도로 힘들었던 일들과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며 해준 따가운 지적들이 더 좋았고 큰 교훈이 되었다며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그때 가장 큰 보람과 감동을 느끼며 좀 더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해주지 못한 점이 미안하기도 하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꿈을 펼쳐나가게 해주는 해외봉사단 1년! 그 1년을 잊지 못해 마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끙끙대다가 그 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 나 역시 그 상사병에 걸려 에티오피아에 왔는지 모르겠다. 경험했고,도전했고, 사랑 받았던 기억 때문에 걸리는 이 행복한 상사병에 모두 걸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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