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는 상사병에 걸렸다 [5] 치료법 4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 이민을 간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멕시코!’ 우리 부부가 종종 하는 말이다. 12년 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멕시코에서 활동한 나는 중남미 국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파라과이에서 자란 남편과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5년째 파라과이에서 살고 있다. 멕시코가 마냥 좋았다. 그래서 다녀온 후에도 열심히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남미 사람들을 만나고, 중남미 관
련 행사들을 찾아다니고 했는데, 멕시코와의 인연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킬 줄은 몰랐다.

스무 살 나이에 멕시코에 가서 무슨 대단한 봉사를 한 건 아니다. 멕시코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을 뿐인데,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지낸 그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는 자양분이 되었다. 몸무게도 8킬로그램이나 늘었었는데, 불어난 체구만큼 몸과 마음이 멕시코에서 받은 관심과 사랑으로 채워졌다.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한국에서 꾸역꾸역 배웠던 피아노 실력으로 멕시코 아이들을 가르치며 피아노 선생님으로 불렸을 때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며 열심히 배우던지! 피아노를 배우고 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지내온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나는 멕시코에서도 에스타도 주에서 봉사했다. 초기에는 주로 언어를 배우며 현지인들과 청소 같은 가벼운 활동을 했는데 그때 한 현지인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청소다’라는 말을 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신기하게 그 말이 잊혀지지 않고 나의 일상에 적용하며 살고 싶은 인생관이 되었다. 당시에 언어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질문하며 단어장에 적고 외우고 말하고 했는데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늘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대학교에 편입했고 스페인어를 부전공으로 공부하며 주한 도미니카대사관에서 인턴십 과정을 밟았다. 또 스페인어 통역활동을 하며 선배 봉사단원으로서 대외협력 분야에서 지속적인 역할도 했는데 이러한 활동들은 ‘중남미로 돌아가서 평생 살고 싶은 꿈’을 꾸게 했다.

그저 꿈만 꾸었을 뿐인데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파라과이 교포인 현재의 남편을 소개로 만났고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멕시코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터라 통하는 점이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멕시코에서의 나의경험들을 소중히 여겼고 파라과이에서 꿈을 키우고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봉사단으로 활동할 때처럼 적극적으로 일하면 좋겠다고 나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다 하루는 신문에서 주파라과이 한국교육원이 한국어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라는 남편의 말도 생각나고 멕시코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행복했던 옛 기억도 떠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채용이 되어 4년째 베테랑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교육원에서는 매주 현지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과 성인 300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준의 한국어 수업을 개설하여 가르치고 있다. 수업을 하면서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국민성을 소개하다 보면 애국심도 커지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느낀다.

언어와 문화를 서로 배우고 경험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점이 좋은데,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한다. 한국교육원에서 가르치는 일은 내 삶에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파라과이교육대학교에 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교육학과가 있어서 그곳에서 교수로 일할 꿈도 꾸며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다. 언어를 가르칠 뿐 아니라 밝고 강한 마음을 전달하게 위해 달리는 특별한 교육자의 모습을 그리며 파라과이에서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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