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는 상사병에 걸렸다 [4] 치료법 3 그 나라에 관련한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감비아에 도착해 한 달쯤 되었을 때 ‘킨디샤벳’이라는 농촌 마을에 가서 1주일 간 봉사활동을 했다. 뜨거운 날씨에 물과 전기가 없는 환경에서 밭을 정리하고, 나무를 베고, 담을 쌓는 등의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시스라는 열두 살 남자아이가 나에게 와서 캐슈너트를 주었다. 먹어본 적 없는 열매였는데 고소하고 맛이 있어서 프란시스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기뻐하며 돌아갔다. 다음 날 프란시스가 스무 개 정도의 캐슈너트를 또 가지고 왔다. 함께 있던 아이들과 불에 구워 먹고 좀 더 먹고 싶어서 숲 속으로 캐슈너트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당시는 캐슈너트 철이 아
니어서 샅샅이 뒤져도 한 개를 겨우 찾는 정도였다. 그제야 프란시스가 나에게 먹으라고 준 캐슈너트가 평범한 간식거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더위와 배고픔쯤은 얼마든지 견딜 만했다. 목이 마를 때 길어 마실 물이 있었고 허기가 지면 오렌지와 코코넛 열매를 따먹으면 되었다. 킨디샤벳 마을에서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 프란시스가 나에게 검은 봉지 하나를 주었다. 봉지안에는 서른 개가 넘는 캐슈너트가 있었는데 너무 고맙고 소중해서 1년 동안 책상 위에 올려놓고 먹지 못했다.

감비아 사랑이 공부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다

해외봉사를 떠날 당시 나는 대학에서 응용식물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농업 관련 학과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감비아에서 봉사하다 보니 한국의 앞선 농업 기술을 감비아에 전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공을 살려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감비아 농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학과 내의 벼육종 실험실에 소속되어 파종,모내기, 방조망 설치 등을 직접 해보며 배웠다. 감비아에 다녀오기 전에는 농업이 내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아 공부하기가 싫었
는데, 아프리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은 의욕이 커져갔다.
또 대학생으로서 틈틈이 중고생들을 위한 강연활동도 했다.
감비아에서 겪은 체험담을 내용으로 교류와 역경을 이기는 마인드에 대해 강연했는데, 서른 군데 이상의 학교에서 발표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무척 행복하다. 나 또한 중학생 시절에 어느 대학생의 아프리카 체험담을 듣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내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봉사단원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며 열정적으로 강연했다.

세네갈에서의 또 다른 꿈

나는 학교 실험실에 소속되어 연구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감비아와 아프리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눈여겨보시던 교수님 한 분이 졸업을 앞두고 진로상담을 하면서 나에게 농촌진흥청을 소개해주셨다. 그곳에서 배우면 아프리카에 관련한 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마침 농촌진흥청이 직원을 모집하고 있어서 바로 지원했지만 성적이 뛰어난 편이 아니고 특별한 자격증도 없어서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 면접관들이 내가 감비아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공감해주었고, 아프리카를 향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와 포부에 대해 자세히 질문했다.
면접을 잘 본 덕인지 농촌진흥청에 입사해 작물육종과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파종도 하고 종자도 정리하면서 배워가던 중에 아프리카에 관련한 일을 하시는 작물육종과 박사님을 통해 ‘아프리카벼연구소Africa Rice Center’를 알게 되었고, 파견 근무를 지원해보기로 결정했다. 농업 분야 국제기관인 아프리카 벼연구소에 지원하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대학 실험실에서 공부한 과정과 감비아에서 활동한 경험, 특히 아프리카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지낸 소중한 사연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 최종적으로 채용될 수 있었다.
나는 2017년 9월부터 아프리카벼연구소 세네갈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프리카 벼의 품종을 개발하고 종자를 보급하는 일을 담당하며, 아프리카 20여개국 농업 관련자들을 세네갈로 초청하여 농업교육을 진행한다. 이들에게 봉사단 시절에 경험한 도전과 교류의 정신도 소개하고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행복의 비결도 이야기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처럼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해외봉사단의 꿈을 심을 것이다.

오정호(아프리카 감비아 해외봉사자, 농촌진흥청 연구원)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