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는 상사병에 걸렸다 [3] 치료법 1 같은 나라에 다녀온 단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송영근(아시아 필리핀 해외봉사자, 회사원)

앙헬레스시에서 지프니를 타고 숲 속 깊은 곳으로 가면 필리핀 순수 원주민들이 사는 아이타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2개월간 건축 봉사활동을 했는데 나에게는 모든 것이 모험이자 크나큰 도전이었다. 봉사단원들은 집을 짓기 위해 곡괭이로 땅을 파고 벽돌을 쌓았다. 허기가 지면 오두막에 모여 바나나를 반찬 삼아 밥을 먹고 덜 익은 파파야로 국을 끓여 먹었다. 밤에는 계곡에 가서 흐르는 물로 별빛 아래 샤워를 하고 다음 날 새로운 활력으로 일하기 위해 재충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모기가 내 발목을 세 번이나 물었다. 가려워서 세게 긁다가 피부에 상처와 함께 피가 났는데 작업을 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내색하지 않았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발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앉아서 쉬고 있을 때 다른 단원들이 나를 보고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며 한소리씩 했다. 순간 너무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진정한 봉사정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힘들고 여건이 안 좋을 때도 실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무얼까? 어떤 자세로 봉사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해외봉사는 진정 가치 있는 선택이 되리라고 마음속으로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는 아이타마을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다섯 살 여자아이를 보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어린이집에 다니며 놀고 있을 아이인데, 옷가지들을 한 바구니 가져와 서툰 손놀림으로 빨고 있었다. 잠시 후 여자아이가 멀리 있는 나를 발견하고 쫄래쫄래 다가왔다.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을 낯설어하지 않고 두 팔을 벌려 반기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어 한없이 높은 곳에 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음을 활짝 연 아이의 맑고 투명한 눈망울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녹아버렸
다. 자신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과 나를 향해 다가오는 아이. 나에게는 그런 순수함이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다가가 대화하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순수함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위하면서 봉사할 수 있는 힘이 그것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필리핀을 무대로 1년 동안 참 많은 활동을 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를 지탱해준 힘은 두 팔 벌려 나를 반겨준 필리핀 사람들의 순수함이었고, 그 순수함을 닮아가다 보니 새로운 힘을 얻고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필리핀 동문회장을 맡아 필리핀 지부에서 오는 반가운 소식들을 흩뿌려주고 우리의 사랑을 그들에게 전하는 메신저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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