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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특집] 나는 상사병에 걸렸다 [1]
김소리 기자 | 승인 2018.07.10 21:11

한 아버지가 딸이 해외봉사에 가서 병에 걸려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고쳐보려 해도 고칠 수 없는 중한 병이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하기에 증상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틈만 나면 생각나고 그립고, 그래서 밥맛도 없고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증상으로 분석해 본 결과 딸의 병은 ‘상사병相思病’이었습니다. 상사병은 ‘어떤 대상을 몹시 그리워하는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입니다. 딸은 자신이 봉사하고 온 나라를 잊지 못해 상사병에 걸린 것입니다. 신기하게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단원들은 누구나 이 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사랑받으며 변화하고 성장하기에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상사병을 치료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합니다. 단념하거나, 사랑을 이루거나! 꿈에 그리던 사랑을 이루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8인의 상사병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①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② 이런 증상 경험해 보았나요?
③ 당신의 치료법을 공개해주세요
    치료법1 같은 나라에 다녀온 단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치료법2 교환학생으로 그 나라에 다시 간다
    치료법3 그 나라에 관련한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치료법4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 이민을 간다
④ 그리운 에너지 모아 그 나라 박람회 열다
⑤ 사랑이 이루어지다, 상사병 끝!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만능비누
글 | 유지은(아프리카 가나 해외봉사자, 만화가)

가나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가 ‘비누 설거지’이다. 비누로 하는 설거지는 재미있었고 색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장난을 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신나는 놀이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나에서 비누는 그야말로 ‘만능세제’로 쓰였다. 갖추어진 게 별로 없는 나라여서 한 가지 물건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데, 그런 점이 나에게는 굉장히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가나에 주방용 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비싸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누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누 설거지가 정말 이상하고 불결해 보였다. ‘세수나 빨래를 할 때 쓰는 비누로 설거지를 하다니! 주방용 세제가 없으면 설거지는 불가능해!’라고 고집했는데, 꼭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어디든, 어떻게든 쓸 수 있는 게 비누였고 그게 가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세면용, 주방용, 빨래용, 화장실용 등으로 나뉘고 거기에서 다시 세수할 때, 머리 감을 때, 화장 지울 때, 샤워할 때 등으로 세분화되는 각종 세제들이 넘쳐나는 한국. 그에 비해 가나에서의 삶은 참 단순했다. ‘복잡하지 않아서 여유롭고 즐거운 사람들….’

한국에 돌아왔는데 우리 집에 물건이 정말 많았다. 뭐든 종류대로, 없는 게 없는 도구들의 궁전이었지만 그 궁전에서 행복하지만 않았다. 편리하지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틀 속에서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나에 다녀온 후 내 사고방식이 훨씬 유연해진 걸 느낀다. 일할 때 뭔가를 갖추려 하기보다 가진 것으로 해내려는 시도를 하게 됐고 돈과 물건,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도 생겨났다. 또 나와 조금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자유와 여유로움을 가르쳐준 그 만능비누가 좋아서 요즘도 종종 신나게 비누 설거지를 하며 가나를 향한 지독한 그리움을 달랜다.

므위와 베이에
글 | 지경민(아프리카 베냉 해외봉사자, 대학생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면 ‘므위’와 ‘베이에’가 먹고 싶다. 므위는 옥수수나 팥으로 만든 죽 종류의 음식이고, 베이에는 작은 도너츠인데 둘 다 맛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므위를 처음 봤을 때팥죽인 줄 알고 덥석 먹었다가 시큼한 맛에 뱉을 뻔하기도 했다.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지만 므위가 식탁에 자주 올라와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맛없는 므위, 베이에에 중독된 데는 계기가 있다. 베냉 봉사단원들은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 현지 학생들에게 세계 문화 댄스를 가르쳐주었는데 관심을 많이 보이며 좋아했다. 나는 댄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베냉 학생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댄스 동아리에 참여했다.
댄스 동아리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돈을 아끼느라 먼 곳에서 봉사단 센터까지 몇 시간씩 밥도 안 먹고 걸어왔다. 배고프고 지친 중에도 즐겁게 댄스를 배우고는 우리에게 무언가 주고 싶어서 없는 돈을 모아 므위와 베이에를 사왔는데, 그때 나누어 먹은 므위와 베이에의 맛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베냉에서의 봉사기간이 1년으로 모자라 기간을 연장하여 2년간 활동했다. 그러다 ‘베냉에서 아예 사는 건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우선 학업을 마치기 위해 한국에 귀국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다. 베냉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기억 때문에 지나가는 오토바이만 봐도 반갑고, 울퉁불퉁한 거리가 그리워서 일부러 안 좋은 길을 골라 다니기도 한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열악한 환경이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2년이나 있었냐’고 질문한다. 말라리아에 걸릴 수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잠 못 자고 두세 시간 걸어 우리를 찾아오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면 베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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