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국방부 군사정책위원장 페드로 로하스

콜롬비아는 세계 제일의 커피 맛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풍부한 지하자원을 자랑하는 나라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이어진 내전으로 인한 상처 또한 깊다. 이런 콜롬비아가 최근 마인드교육을 도입하며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콜롬비아 육군 소속 페드로 로하스 대령이 중국 국방무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 한국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는 2016년 9월, 콜롬비아 북부 도시 카르타헤나에서 만나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때 두 사람은 ‘총알을 녹여 만든 펜’으로 서명했는데 펜의 손잡이에 스페인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총알은 우리의 과거를 기록했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내전이 만들어낸 상처와 고통 속에서 콜롬비아 사람들이 기대를 거는 것은 교육뿐이다.

지난 5월, 콜롬비아 보고타 시 두 곳에서 군인들을 위해 특별한 교육이 진행됐다. 정훈병과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자살방지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강연회와 육군사관학교 장성 및 장교 2백 명에게 ‘마음을 연결하는 대화’에 대해 소개하는 강연회가 그것이다.

이 행사를 추진한 사람은 콜롬비아 군의 정신교육을 총괄하고 있는 페드로 로하스 대령이다. 그는 콜롬비아 군에서 벌어지는 자살사건과 군인들의 이혼·폭력•우울증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로운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마음의 변화를 중시하는 한국의 인성교육을 도입했다.

페드로 로하스 대령. 콜롬비아 국방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사정보학과 공공행정 분야의 전문가이자 국방부 교수로 강의하며 군사프로젝트 지침서 제작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25개 이상의 군사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특히 공공치안 부분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국회가 수여하는 민주주의 공헌 훈장을 받았다. 일간신문 ‘엘 티엠포El Tiempo’와 국방부 잡지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페드로 로하스 대령. 콜롬비아 국방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사정보학과 공공행정 분야의 전문가이자 국방부 교수로 강의하며 군사프로젝트 지침서 제작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25개 이상의 군사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특히 공공치안 부분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국회가 수여하는 민주주의 공헌 훈장을 받았다. 일간신문 ‘엘 티엠포El Tiempo’와 국방부 잡지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 중국에서 국방무관으로 일하시다가 임기를 마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중국 주재 콜롬비아 대사관에서 올해 2월까지 일했습니다. 군인 외교관으로 콜롬비아군을 대표해서 중국에 갔는데 저는 육군이었지만 육해공군의 일을 모두 담당했습니다. 중국과 콜롬비아 양국이 군사적인 면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고요. 중국의 군사 기술을 콜롬비아에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연구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나요?

군인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군인이 된 데는 어머니 영향이 큰데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빈둥거리며 지내다 유급이 됐는데 어머니가 저를 군사학교에 보낼 거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그냥 듣기가 싫었어요. 군인에 관한 것도 전부 다 싫었고요. 하지만 부모님이 보내셔서 어쩔 수 없이 열여섯 살 때 군사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 가서 군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는데요. 군인의 삶은 제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명감이 필요했고 그 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군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1등을 해서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4년 동안 공부했고, 1989년에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군인으로 3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여러 보직을 거쳤어요. 중위 때까지는 보병이었고 대위 때부터는 정훈병과로 바뀌었습니다. 군인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직업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 평화를 위해 싸우고 전쟁도 불사해야 하는 게 군인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명령에 따라 전진해야 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바람들은 버려야 하고 어려움에 놓이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네. 군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어려움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는데요. 감사하게도 이들이 제가 군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군인 가족으로서 사는 삶을 소중히 여깁니다.
군인은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전쟁터로 달려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싸운 결과로 사람들이 자유를 얻지요. 그래서 아내와 딸들이 저를 존경합니다. 한국도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점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군인의 역할을 알고 인정해 줄 때 긍지를 느끼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얻습니다.

지난해 12월, 중국 주재 중남미국가 무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페드로 로하스 대령(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네 번째).
지난해 12월, 중국 주재 중남미국가 무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페드로 로하스 대령(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네 번째).

- 한국에는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장병들이 많습니다. 부하들 중에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병사들도 있나요?

네.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장교와 병사들도 있고요. 제가 중위였을 때 어느 날 부하 한 명이 사라졌습니다. 저희는 그가 총을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얼마 후에 가까운 부대에서 그 부하를 찾았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했냐고 소리치며 강하게 꾸짖었더니 갑자기 총을 꺼내 저를 겨누는 거예요. 순간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서 있었습니다. 부하는 저에게 총을 쏘려고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는데 어떻게든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덮쳐 몸싸움을 벌였어요. 부하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 상태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훈련소에서 상대의 기관지를 가격하라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나 팔과 팔꿈치에 모든 힘을 실어 그의 목을 눌렀습니다.

부하가 힘을 잃은 뒤 제가 일어났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상급자와 눈이 마주쳤어요. 안타까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죠. 부하는 사실 저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제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거죠. 실제로 저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상급자는 저를 데려가며 “자네는 큰 잘못을 저질렀네. 처벌은 하지 않겠지만 지휘관의 직위는 박탈하겠네. 다른 부대에 보낼 테니 가서 리더십에 대해 더 배우고 오게”라고 했어요.

굉장히 힘든 순간이었는데 이 일은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존중하고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행동할지는 잘 몰랐어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줄도 모르고 거칠게 했던 기억들도 떠올랐고요. 겸손하지 못했던 거죠.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군대 안에서는 과격한 일들도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생각합니다.

페드로 로하스 대령.
페드로 로하스 대령.

- 이후 부하들과 소통하시는 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의 이야기든 귀담아들으려 합니다. 말할 때 부정적인 시각을 전달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군인들은 거칠게 말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사기도 하지요. 서로 진심을 담아 말하도록 조언해주곤 합니다.

군인은 특히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잘 듣기가 쉽지 않아요.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때가 많지요.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다보면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군인이라고 강한 건 아닙니다. 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약하고 문제도 많아요. 이혼이나 폭력 문제로 고민하는 군인들도 많고요. 그럴수록 말을 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해주고요. 우리가 하는 한마디 말이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 한국에서도 군대 내 자살과 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콜롬비아 군대 내에서 군인과 그 가족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해서 군 당국이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부대마다 심리상담사가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사람이나 부서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한국의 마인드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마인드교육에 대해 자세히 소개받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중요시하는 마인드교육을 콜롬비아 군과 청소년 교육에 적용하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콜롬비아에 돌아가서 군 관련자들에게 마인드교육을 소개하고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

한국의 마인드교육 프로그램이 콜롬비아 반군 피해자 교육과 군인 및 군인가족 교육, 청소년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호응을 얻고 있다. 2018년 1월, 보고타 시청 종교부국장 마르도리 쟈노스Mardory Llanos 씨와 반군 피해자 국회의원 클라라 로하스Clara Rojas 씨는 콜롬비아 반군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교육을 한국의 IYF에 위탁하며 마인드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3월에는 대통령 직속 인권자문위원회 주관으로 반군 피해 전담부서 담당자들을 위한 마인드교육 워크숍이 개최됐다. 또 같은 달 쿤디나마르카 주 시장들과 교육관계자 1백 명을 대상으로 마인드교육 시범수업도 실시했는데, 이는 콜롬비아 군을 비롯한 학교 현장에서 마인드교육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콜롬비아 육군사관학교 장성과 장교들이 ‘마음을 연결하는 소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마인드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콜롬비아 육군사관학교 장성과 장교들이 ‘마음을 연결하는 소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마인드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콜롬비아는 50년 이상 내전이 지속되어 온 나라입니다. 내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시는 부분도 있으신지요?

콜롬비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입니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고요. 내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8백만 명이었습니다. 2016년 8월에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간의 52년의 내전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는데요. 2012년 쿠바에서 협상을 시작한 이래, 4년 가까이 협상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정부 인사들과 반군 지도자들이 평화협정에 기대를 걸고 있기는 하지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지요.
반군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폭력과 살해의 위협 속에서 지냈고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증언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피해 상황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내전의 고통 속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꿈이 짓밟힌 이들의 상처를 치료해줄 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 오랜 기간 콜롬비아 군에서 리더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디에나 리더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영향력 있는 리더들을 필요로 하지요. 참된 리더가 있어서 그들을 본받으면 우리 삶도 달라집니다. 저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기 전에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요. 리더라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한 후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6월 콜롬비아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요. 리더가 어떤 꿈과 비전을 가졌느냐에 따라 국가와 사회, 가정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나타나는 현상이나 결과물들은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이 현재 이런 모습인 이유도 지도자들이 이런 한국을 꿈꿔왔기 때문이죠. 현재 여러분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저는 콜롬비아 군인들과 젊은이들이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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