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다면 이들처럼!

N포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세대가 포기한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결혼이다. 금전적 부담과 육아, 그리고 서로 맞지 않는 성격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강선, 김지영 부부도 멋지게 만나 결혼했으나 신혼부터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그런데 둘은 어떻게 그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웃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행복한 부부가 된 이들이, 결혼하고 싶지만 자신 없는 청년들을 위해 그 자세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홍강선, 김지영 부부
홍강선, 김지영 부부

“이 옷 뭐야? 왜 아침이랑 다르게 입고 왔어?”
“그래? 나는 모르겠는데.”
“혹시 나 몰래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지?”
“늦게까지 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한테 왜 이래?”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야근이 잦은 남편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아내의 불안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믿을 수 없는 남편에게 신경질을 내거나 토라지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내에게 화가 나 더 이상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오해와 불신이 쌓이고 쌓여, 두 사람은 가정법원 앞에 섰다.

서로 그렇게 오해하고 살았는데 솔직하게 대화해 볼 생각은 없었나요?

강선: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누군가가 저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당시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 때문에 아내가 무얼 해도 미워 보였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지영: 저는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결론을 지었어요. 나는 이런 사람, 남편은 이런 사람. 이해해보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남편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자꾸 상상을 하게 되고요. 그래서 말이 아닌 몸으로 치열한 대화를 많이 했어요. 매일 육탄전이 벌어졌죠.

그 상태로 법원까지 갔지만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선: 싸우는 동안 여러 사람과 상담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휴가를 내고 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했죠. 그때 끝내는 것은 끝내더라도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던 목사님께 말씀은 드리고 끝내자고 하고 찾아갔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더 이상 함께할 수가 없다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이 “너희 부부 참 좋다. 하늘이 맺어준 잉꼬부부네.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어!” 하시면서 웃으시는 거예요. 정작 우리는 심각한데 말이죠.

지영: 서로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고, 또 제가 너무 솔직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셨어요. 솔직히 남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남편 얼굴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이 보일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첫눈에 반한 거죠. 다정하고 섬세한 성격도 좋았고요. 그런데 살다 보니 자꾸 남편이 이상하게 보이고 저 몰래 나쁜 짓을 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상담을 받으면서 제가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의부증 증세를 보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강선: 계속해서 상담을 받다 보니, 제가 하는 생각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게 보이기 시작하더라요.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에 관심이 생겼고 마인드학과 강사가 되는 훈련도 받았어요. 저는 1차적으로 솟구치는 감정에 의해 행동하지, 그 너머에 있는 아내의 속마음은 전혀 볼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랑해서 싸운다는 말이 정말 맞아요. 사랑해서 작은 것에도 질투가 났고, 사랑하는 아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니까 화가 난 거예요. 제가 잘못해서 결혼생활이 깨어질 위기에 있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죠. 그래서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고 그 일은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팽팽한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볼 수 있었나요?

강선: 원래 제 성격대로라면 진작에 아내와 헤어지고 다른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인생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제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충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교육자, 유엔 기관 종사자, 해외 사업가 등 다양한 꿈을 꾸었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주저하기도 했지만 줄곧 도전하면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어린 시절, 지구본을 보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꿈을 꾸었던 홍강선 씨. 꿈꾼 대로 그는 30여개국을 여행했으며 인도와 네팔 에서는 봉사활동과 국토 종단, 히말라야 등정까지 해냈다.
어린 시절, 지구본을 보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꿈을 꾸었던 홍강선 씨. 꿈꾼 대로 그는 30여개국을 여행했으며 인도와 네팔 에서는 봉사활동과 국토 종단, 히말라야 등정까지 해냈다.

대학생 시절에는 제 자신을 변화시켜 보려고 3년간 휴학하고 전 세계 30개국을 여행하고 탐방했습니다. 항공권 한 장만 손에 쥐고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 그곳에서 청소, 인테리어 보조, 접시닦이 등 밑바닥부터 시작해 영어를 배우고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낮에는 현지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보조로 근무하며 글로벌 감각을 키웠고 인도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인도와 네팔을 두 달 동안 종단하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도 등정했습니다.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다 보면 나도 환골탈태해서 완전히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했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면 여지없이 김치와 자장면을 찾고 있는 저를 보니 당황스러운 거예요.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먹고 싶은 욕구 하나도 참을 수 없는 약한 인간이 바로 나구나.’ 거울 속 제 모습에서 초라함이 보였어요. ‘이런 모습으로 앞으로 내가 원하는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번다 해도 내가 그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허무해지기 시작했어요.

방황하던 마음을 어떻게 다잡을 수 있었나요?

강선: 당시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코스를 밟으며 현지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합격을 해둔 상태였어요. 한국에서 대학 과정 1년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조기 졸업을 하려고 잠시 귀국했는데, 그때 학교에서 해외봉사단 모집 포스터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한 번쯤은 아프리카에 가서 젊음을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해외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아프리카행을 선택했습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봉사하던 시절. 그곳에서의 1년은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봉사하던 시절. 그곳에서의 1년은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제가 간 곳은 아프리카 서부의 감비아라는 나라였습니다. 그곳에서 나 자신을 비우는 훈련을 받을 수 있었죠. 그동안 살면서 뭔가를 이루어 보려는 욕심도 많았고 그에 따른 좌절도 맛보았어요. 하지만 아프리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해하며 지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봉사단 감비아 지부장님이조언해주셨던 이야기를 제 일기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각오만으로 달라질 수 없어. 나보다 지혜롭고 강한 마인드를 가진 누군가와 연결이 돼야 하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자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야. 혼자 완벽하게 해내려 하고 성공하려고 애쓰다보면 결국 마음이 공허해지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게 결점이 많다는 걸 인정하고 마음을 비운 뒤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알아야 해.”

이후 감비아에서 태권도 국가대표로 출전할 청소년 대표팀을 가르치면서 부상을 입었다가 회복했어요. 그리고 세네갈, 말리, 부르키나파소, 가나를 거쳐 토고까지 다녀오는 10여 일간 9천 킬로미터의 여정 중에 생각지 못한 난관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죠. 힘들어서 한계를 만나는 시간들 속에서 동료 봉사단원들과 지부장님과 함께 진한 마음의 교류하면서 그 고비들을 넘겼어요. 그때 ‘아, 이런 게 진짜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삶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죠.
결혼한 뒤에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혼이라는 고비 앞에서, 나는 스스로 달라질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와 교류해야 된다는 것을 기억했죠. 신기하게도 마음을 비우고 상담을 받으면 받을 수록 제 마음 속에 전혀 새로운 마음이 생겨나더라고요.

지영 씨에게도 남편 못지않은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요.

지영: 저는 외동딸로 태어나서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클라리넷을 전공했고요. 좋아하는 걸 하면서 힘든 일은 뭐든지 엄마에게 미루고 살았는데 철이 들고 보니 제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이런 나 자신이 싫어서 고생도 겪고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처럼 저도 해외봉사단에 지원해서 체코 프라하로 갔어요.

김지영 씨가 봉사하러 갔던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체코 프라하에서.도시만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김지영 씨가 봉사하러 갔던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체코 프라하에서.도시만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체코 말은 굉장히 어려워서 체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배운 말들을 종이에 적어 매일 공원에 갔죠.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체코 사람들이 내 말에 귀 기울여 줄까?’ 걱정도 됐고 동양인이 더듬거리며 말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종이에 적어 간 자기소개를 읽어 내려갔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잘 들어주었어요. 틀린 단어는 고쳐주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조금씩 대화를 언어도 차츰 늘어갔어요.
독일, 영국, 폴란드 등 유럽 여러 국가를 다니며 활동할 때는 함께 간 봉사단원들과 같이 지내면서 갈등을 많이 겪었어요. 외동딸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 자신이 싫었는데 여러 사람들과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적응하면서 마음이 단련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과 교류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고요.

체코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며 가끔씩 소규모 연주회도 가졌다.
체코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며 가끔씩 소규모 연주회도 가졌다.

 지금은 그 시절의 기억을 많이 잊었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한 가지는 ‘나는 계속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혼을 앞두고 제 잘못 때문에 가정이 깨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척 슬펐어요. 하지만 상담하면서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확실한 상상들을 버릴 수 있었어요. 그제서야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있었고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의 오해를 풀 수 있었어요.

각자 자라난 환경은 너무 다른데 해외에서 봉사했던 공통점이 있네요. 또 서로 비슷하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강선: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계획한 대로 실행에 옮기는 행동 방식이 같아요. 저는 아내와의 불화를 경험하면서 인간 관계에서 모든 문제들은 마음가짐과 인성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깊이 사고하는 마음의 세계에 대해 가르치는 ‘마인드학’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교수가 되어서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마음의 세계를 교육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고 아내 역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인드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의 부부 학장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영: 남편이 꿈을 가지니까 저도 함께 꿈꿀 수 있어서 좋아요. 남편을 보면서 저도 자극을 받거든요. 어떻게 보면 허황된 꿈 같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일 수 있지만,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남편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어요.

반대로 ‘이럴 땐 정말 나와 다르다’ 하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강선: 다른 점은 너무 많죠.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정리정돈이에요. 정리정돈이 돼야 어떤 일이나 집중할 수 있거든요. 정리가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사용했던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두면 되는데 아내는 무엇이든지 사용하고 아무 데나 두더라고요. 처음에 그것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지영: 저는 성격이 까다롭지 않고 소탈한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정리정돈에 굉장히 약한 편이에요. 그런데 남편은 모든 걸 딱딱 정리해야 해서 잔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집안 정리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폴더정리 등 사소한 것까지 남편에게 보고 배운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은 저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저를 보고 아주 사람 됐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남편하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남편은 좀 복잡하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뭐든지 치밀하게 생각하고 계획해서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죠. 하지만 저는 계획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보다 남편이 기획하고 행동하는 데에 시간이 좀 더 걸리죠.

마냥 좋기만 하기 보다 한 차례 고비를 겪은 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관계가 더 좋아지는 걸 봅니다. 서로의 다른 점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강선: 가끔 어떤 일을 혼자 추측하고 실제라고 인식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아내에게 “이게 사실이야, 아니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물어보는데 아내가 “착각이야!”라고 콕 집어서 말해주죠. 그러면 제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가 됩니다.

지영: 저는 지구력이 없어서인지 뭔가 조금 하다가 안되면 그냥 머물러 버리는 성향이 있어요. 남편처럼 꿈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남편 옆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은 덕분에 저도 같이 꿈꾸며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그리고 말이 많은 남편에 비해서 저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어요. 남편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저에게 이야해주면 저는 처음에는 듣고만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저도 같이 말하고 있더라고요. 남편 덕분에 제가 변하고 있고 또 함께 꿈꾸고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꿈을 꾸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소한 행동부터 다르죠.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강선: 회사의 모든 일들은 전략 기획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치밀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변수는 늘 존재하고 프로젝트에 성공만 있을 수는 없어요. 계획한 일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힘들 수밖에 없죠. 그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부터 왔고 결국 사람으로 해결되거든요. 조금 고생을 하더라도 난관을 헤쳐나가며 마무리 지었을 때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 마음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마인드교육 전문가로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즐겁게 일하는 회사 ‘포커스 미디어 코리아’ 앞에서.
그가 즐겁게 일하는 회사 ‘포커스 미디어 코리아’ 앞에서.

지영: 수업을 하다 보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끌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어요. 요즘은 혁신학교라고 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난타나 오카리나, 우쿨렐레, 무용 등 다양한 것들을 배워요. 정작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을 하는 곳은 많지 않더라고요. 어린이 인성교육을 하고 싶어서 얼마 전에 마인드전문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앞으로 대학원에도 진학해서 이 분야에 대한 더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아빠는 기타, 엄마는 우쿨렐레. 음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사랑스런 두 딸 앞에서 종종 연주회를 연다. 아빠는 색소폰 연주도 능숙해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엄마와 환상의 콘서트가 가능하다.
아빠는 기타, 엄마는 우쿨렐레. 음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사랑스런 두 딸 앞에서 종종 연주회를 연다. 아빠는 색소폰 연주도 능숙해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엄마와 환상의 콘서트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성격이나 취향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지낼 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편하다고 느끼고, 상대방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다 보니 불화가 일어난다.

최고가 되기 위해 사서 하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홍강선 씨와 온실 속 화초가 싫어 무엇이든 도전했던 김지영 씨는 각자 살아왔던 방식이 너무나 달랐기에, 서로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겪으며 서로의 진짜 모습을 봤고 그것을 인정했다. 부부는 이제 상대방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새로운 모습에 감동하면서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현재 홍강선 씨는 디지털 사이니지 분야 글로벌 전문기업인 ‘포커스 미디어 코리아’의 본사 개발본부에서 일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마인드학과 교수가 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
김지영 씨도 초등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악기수업을 하며 학생들이 따뜻한 감성이 흐르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인터뷰 말미에, 동행했던 여기자가 부부싸움을 했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두 사람은 “아,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더 심각했는데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라고 시원한 답을 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일이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싸움을 하지 않아야 금슬 좋은 부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생각은 다릅니다. 결혼하고 나서 갈등이 없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아요. 감정이 상하고 견디기 힘들 때도 있지만 안 좋은 일을 계기로 부부끼리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되고 더욱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홍강선, 김지영 부부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봉사했던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다. 젊은 시절에 가장 열정적이고 뜨거웠던 감동을 경험하고 싶고, 누구보다도 멋지고 예쁜 인생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부부처럼 살 것을 권한다! 한때 힘들어도 가장 행복해지는 삶을.


홍강선
대학시절 30개국을 여행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다 2009년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봉사하고 온 후 가치관이 바뀌었다. 현재 디지털 사이니지 전문기업의 열정적인 마케터이자, 예쁜 아내와 두 딸이 있는 가정의 가장이다. 또한 아프리카와 전 세계 마인드교육을 위해 일하고 싶어 공부하는, 꿈꾸는 도전가이다.

김지영
클라리넷을 전공하던 아리따운 여대생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도전했다. 2005년에 체코에서 일 년 동안 봉사하며 한결 단단해져 돌아온 후 멋진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가 됐다. 현재 초등학교의 음악강사로 악기연주를 가르치고 있으며 아이들의 인성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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