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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차 외교관이 전하는 훌륭한 외교관의 조건주한 스리랑카 대사 마니샤 구나세이카라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06.14 23:49

물 흐르듯 막힘없는 외국어 실력, 역사·법률·경제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 위기대처 능력…. 훌륭한 외교관의 요건을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항목이다. 마니샤 구나세이카라 주한 스리랑카 대사는 말한다, “그 모든 역량은 ‘애정’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고. 22년차 외교관인 그가 말하는 ‘애정’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인도 델리대학교 졸업, 프랑스 파리정치대 유럽학 석사, 1996년 스리랑카 외교부 입부, 주프랑스 스리랑카 대사관 2등 서기관, 주일본 스리랑카 대사관 참사관, 스리랑카 경제개발부 국장, 유엔 제네바사무소 스리랑카 대표부 차석, 2015년 9월 주한 스리랑카 대사 부임.’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마니샤 구나세이카라 대사의 약력을 간추린 내용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문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그가 근무한 프랑스와 일본, 스위스(제네바)는 모두 외교관이라면 한번쯤은 근무를 희망하는 지역들이다. 그런 곳을 세 군데나 연이어 거쳤으니, 외교관으로 비범한 경력인 것은 분명하다. ‘혹시 어려서부터 외교관이란 직업에 뜻을 두고 꾸준히 역량을 쌓아온 덕에 요직을 거친 것은 아닐까?’ 기자의 질문에 구나세이카라 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저는 원래 기자나 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글쓰기를 좋아했거든요.”

마니샤 구나세이카라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지는 비빔밥을 즐기며, 드라마 ‘대장금’을 즐겨 보기도 했던 지한파 외교관이다. 올 9월이면 한국 부임 3년을 맞는 그녀는, 두 나라의 우호와 협력을 잇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성실히 대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외교관이 될 생각을 하셨습니까?
굳이 계기를 찾자면, 삼촌들 중 한 분이 외교정책비서관으로 일하셨습니다. 가까운 친척이라 자주 만나다 보니 저도 어려서부터 삼촌이 하시는 일이나 어려운 외교용어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어요. 사촌들 중에도 외교관이 하나 있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직장에서 일하다, 좀 더 경력을 쌓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외교부에 들어갔는데 어느덧 20년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났네요.

글쓰기를 좋아하셨다니,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 아니셨나싶은데요.
하하, 물론 공부는 제 학창시절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책도 열심히 읽었고.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어떤 면으로는 참 순진했어요. 그렇다고 공부만 한 건 아니고, 친구들도 많았어요. 학창시절 친구들과는 지금도 SNS로 연락하고 있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체육을 못했던 거예요. 체육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뿐 아니라, 체육을 못하는 학생들도 도와주는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야기가 한창 펼쳐질 무렵, 대사관 직원이 쟁반에 홍차와 우유, 설탕을 담아 내왔다. ‘세계 최고의 차茶 명산지인 스리랑카 차 맛은 어떨까?’ 기대감과 함께 차를 한 모금 들이키니 봄날 오후의 졸음을 확 내쫓을 만큼 향기로운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지금까지 마셔왔던 홍차는 과연 무엇이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문득 몇 달 전 만난 파라과이의 루고 국회의장이 인삼차를 마시며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삼차는 달콤쌉싸래한 것이 인생을 닮았네요.” 적절한 비유였다. 그동안 기자는 10여 명의 주한 대사들을 인터뷰했다. 그 대사들이 살아온 인생의 맛은 저마다 달랐다.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상큼한 매실차처럼 만나는 사람에게 활기를 주는 대사,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이로운 녹차처럼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강한 정신력을 체득한 대사. 구나세이카라 대사의 인생은 어떤 맛일까?

지금까지 인생에서 큰 도전이나 어려움을 경험한 적은 없으셨나요?
제 기억에 남을 만큼 큰 문제나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어요. 저희 집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공부를 많이 하셨고 저희 3남매를 잘 돌봐주신 덕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지요. 인도 델리에서 유학할 때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어요. 언젠가 아버지가 델리까지 절 보러 오셨습니다. 내심 ‘안 오셔도 되는데…’ 싶었어요.(웃음) 혼자서 대학 등록도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굳이 오겠다고 하셨어요. 그게 부모의 마음이었겠죠.

스리랑카 최대의 도시인 콜롬보의 전경. 지금은 더 이상 수도가 아니지만 대통령과 총리 관저,대법원, 중앙은행 등 주요기관은 아직 콜롬보에 있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었지만 델리 생활에 적응하기란 어렵지 않았어요. 독자 여러분도 해외에 가고 싶다면 젊었을 때 가시길 권합니다. 나이가 들면 적응하기가 쉽지않거든요.(웃음) 그때 같이 유학했던 스리랑카 유학생이 모두 15명 정도인데, 모두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인도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죠.

그래도 인생에서 ‘도전’이라 할 만한 게 하나쯤은 있을 텐데요.
제 인생에 가장 큰 도전이라면 주한 스리랑카 대사를 맡고 있는 지금일 겁니다. 한국은 경제대국이고, 스리랑카는 앞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을 도모해갈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이번이 첫 대사직입니다. 일본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고, 외교부에서도 동아시아-태평양국局 국장을 맡은 적이 있어 동북아시아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합니다. 막상 와서 보니 한국은 자연이 아름답고,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참 친절하더군요.

이런 나라에 부임한 것은 제게는 굉장히 큰 영광이고,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한국에는 스리랑카에서 건너와 일하는 근로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나이는 22~40세 정도인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일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스리랑카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책임지는 것도 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입니다.

구나세이카라 대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스리랑카인은 약 3만 명 정도다. 매년 6천 명 정도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흘려 묵묵히 일하며 한국 경제를 위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산 전자제품에 대한 스리랑카 현지의 인기와 관심도 높다. 2012년부터는 ‘대장금’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K-팝이 소개되며 한바탕 한류 열풍이 일기도 했다. 멀게만 여겨지던 스리랑카가 가까운 이웃처럼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관광지 시리기야 궁전. 5세기에 싱할라 왕조의 카샤파 1세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뒤 바위산에 지은 궁전이다.

오는 9월이면 한국에 부임하신 지 만 3년이 됩니다. 이제는 한국의 역사나 문화, 경제 등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셨을 텐데요.
저는 외교관을 ‘끊임없이 숙제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료가 있으면 찾아서 읽고,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고 배우는 게 업業이죠. 어느 나라든 외교부에는 각국의 실정과 현황을 파악한 보고서가 있고, 매년 새롭게 갱신됩니다. 어느 나라로 부임할지 결정되면 그 나라에 대한 보고서를 읽는 것이 필수입니다. 다음으로는 <뉴스위크>나 <이코노미스트> 같은 잡지도 훌륭한 교과서가 되지요.

또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선배 외교관들께 묻는 겁니다. 저 역시 한국에 부임하기 전, 전임 대사님을 만나서 그분이 한국에 대해 가진 시각 등 많은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부임국 주변 나라들의 대사님을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스리랑카 대사로 오게 된다면 인도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대사님을 만나시길 권합니다. 그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양하고 총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죠.

선배 외교관들이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인 셈이군요.
그렇죠. 저는 지금까지 네 분의 대사님을 모셨습니다. 처음 모셨던 대사님은 직업외교관이 아니라 영화감독이셨어요. 스리랑카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두 번째 대사님 역시 유명한 대학 교수 출신이셨고, 세 번째 대사님은 아주 노련한 고참 외교관이셨어요. 그분께 외교 실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델리대를 다닐 때 저를 가르친 교수님들도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안이 있으면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하는 자세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렇게 영감을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저는 제가 쌓아온 경력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 1월 밀레니엄 서울 힐튼에서 열린 스리랑카 음식축제에서 인사말 하는 구나세이카라 대사.

외교관으로 일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외교관이 되면 제네바의 유엔사무소처럼 여러 나라 대표들과 함께 일할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외교관의 꽃은 대사겠죠. 두 나라 사이를 잇는 일은 굉장히 만족스럽고 보람된 일입니다. 프랑스에서 근무할 때 스리랑카 기업인 여러 명이 프랑스에 가서 기업을 세웠어요. 그 과정에서 도움도 주고 함께 홍보물도 만들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한번은 아주 재능 있는 스리랑카 소년이 주스리랑카 프랑스 대사관의 주선으로 파리의 영화아카데미에 유학을 왔어요. 프랑스 정부 장학생이었고, 스리랑카의 어느 영화사에서도 학비를 일부 지원했는데 아직 돈을 못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영화사 회장께 직접 전화를 했어요. ‘곧 돈을 보낼테니 대사관에서 조금만 데리고 있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도움을 준 학생이 지금은 프랑스를 무대로 활약하는 유명한 영화 제작자가 되었어요. 그가 처음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는 제게 감사메일을 보냈더군요. 그 일을 잊지 않고 연락 준 게 기뻤고, 작게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국제기구나 글로벌기업에서 일하기를 꿈꾼 적이 있었을 것이다. 국제기구나 글로벌기업에서 일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구나세이카라 대사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상식,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들과 공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소통능력,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리는 분별력, 외교전략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일,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나라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구나세이카라 대사 역시 비빔밥을 좋아하고 드라마 ‘대장금’을 즐겨 보기도 했다. 한국의 다양한 김치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한국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시리세나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의 국빈 방문 때한-스리랑카 의원 친선협회 회원들과 함께.

대사님이 생각하시는 외교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외교는 나라끼리 대화하고 소통하도록 하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외교가 없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논쟁이 오가며 갈등이 고조되고 결국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라는 기술technic이 필요한 겁니다. 말 한마디를 하는 데 있어서도 신중해야 하고, 자신의 입장을 유창한 언어나 글로 정리해 전달하기도 하고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지금은 유엔을 떠나셨지만, 여전히 각국의 고위외교관들이 그를 찾아 조언을 구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반 총장의 외교술 때문입니다. 외교는 결국 상호협력을 도모하는 기술입니다.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즐거웠어요. 스리랑카는 앞으로 한국과 더 긴밀하게 교류하며 더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지난해 한-스리랑카 수교 40주년을 맞아 윤병세 장관이 두 나라간 외교장관 공식방문으로는 31년 만에 스리랑카를 찾았지요. 저희 스리랑카의 시리세나 대통령께서도 한국을 방문하셨고요. 저희 대사관에서도 스리랑카의 문화와 자연을 소개하는 공연이나 영화제, 전시회 등을 더 많이 열 계획입니다. 또한 한국의 기업과 투자자들이 더 많이 스리랑카를 찾을 수 있도록 힘쓰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도 인도나 태국, 베트남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고 관광객도 많이 찾는데요. 스리랑카도 알고보면 불교 등 한국과 문화적인 공통분모가 많습니다. 한국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셔서 아쉬운데, 스리랑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또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아시아는 한가족이잖아요?(웃음)

아시아에서도 인도나 태국, 베트남은 한국에잘 알려져 있고 관광객도 많이 찾는데요. 스리랑카도 알고보면 불교 등 한국과 문화적인 공통분모가 많습니다. 한국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셔서 아쉬운데, 스리랑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아시아는 한가족이잖아요?

인터뷰를 끝내며 구나세이카라 대사에게 물었다. “스리랑카에는 유서 깊은 유적지나 보물도 많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녀는 지난해 열린 수교 40주년 기념 사진전 때 전시되었던 스리랑카의 어린이들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들이 우리 스리랑카의 보물입니다.” 끝까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어린 답변으로 일관한 그녀는 집무실 밖까지 기자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정성스레 포장된 스리랑카 차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사무실로 가져와 타서 마셔보니 대사관에서 먹던 맛과 향이 좀처럼 나질 않았다. 기사가 실린 새 책이 나오면 책도 전할 겸 다시 차 한 잔을 나누러 구나세이카라 대사를 찾아가고 싶어졌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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