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2회 투머로우 1500자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 수상작
차하 김명진
사람들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아버지는 ‘슈퍼맨’이었다. 아버지는 못 하는 게 없었고, 누구보다 가정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면 반드시 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의 모습은 변치 않았고, 아버지를 친구처럼 생각한 나는 누구에게나 ‘우리 아버지는 최고’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마음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점점 작아지고 귀찮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사춘기였던 탓인지 아버지 말씀이 잔소리로 들렸고,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하는 게 더 좋았다. 심지어 나중에는 집에서 가족끼리 밥 먹는 것조차 꺼려졌다.
하루는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데 아버지가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아버지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명진아, 저 분 너희 아버지 아니셔?”라고 물었고 아버지도 나를 아는 체하셨지만, 나는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우기며 다른 길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염없이 울었다. 우는 동안 아버지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긴 내 모습도 싫었지만,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두터운 벽이 있는 것 같아 더 답답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교다보니 직접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고, 친구들과 생활리듬도 맞춰야 했다.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집 생각이 간절했던 나는 결국 새벽에 학교를 탈출해 집으로 갔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한숨만 푹푹 내쉴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나름 힘들었는데 위로 한마디 안 해 주시는 걸 보며 속으로 섭섭하고 화가 났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서 생활하던 중 담배를 피다가 걸려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 오시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닌, ‘청소년기에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했다. 학교로 오신 아버지는 당신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제가 자식을 잘못 키웠습니다”라고 하셨다. 내 마음은 빵조각 부스러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자식 때문에 하시던 일도 미뤄놓고 오셔서 용서를 비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눈물만 흘렸고, 아버지는 “나는 할 일이 있으니 집에 오면 이야기하자”고 하시며 돌아가셨다. 너무 죄송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버지께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나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 교장선생님께 상담을 부탁드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 설 수 없어. 네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이야기를 아버지께 말씀드려 봐. 서로 마음이 통하면 행복해지고, 세상의 어려움을 이길 힘이 생길 거야!”
며칠 뒤 집으로 정기외박을 간 나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이란 곳은 참 솔직한 공간 같다. 서로 말없이 묘한 기운이 아버지와 나 사이를 맴돌았지만, 아버지께 내 마음을 표현할 기회였다. 그동안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아버지께 감사했던 일, 서운했던 일, 죄송했던 일 모두를 말씀드렸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내게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이 못난 아버지가 더 마음을 표현하고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네가 어떻든 아버지는 너를 사랑해. 넌 내 보물 1호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버지는 내 모습과 상관없이 날 사랑한다는 것을. 요즘은 아버지랑 너무 친해서 탈일 정도가 됐다. 아버지가 ‘이제 그만하라’고 하실 정도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정기 외박 때 집에 가면 아버지랑 침대에서 레슬링도 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마음을 꺼내놓고 이야기한다는 게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직접 해 보니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젠 누구를 만나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혹, 아들들 가운데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목욕탕에 가길 권한다. 갈등해결에는 직방이다. 가리는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남자로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 등을 너무 세게 밀어드린다면 자칫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수상소감
이 글을 쓰는 동안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소중함, 그리고 참사랑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늘 아버지의 속을 썩이지만, 아버지는 그런 모습도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잘못했으니 아버지는 날 미워하실 거야! 관심도 없으실 거야!’ 하는 오해와 불신이 제 마음에 큰 벽을 쌓고, 눈치를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버지께 표현하니 마음과 마음이 만나 그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쓰는 내내 아버지의 미소가 생각났습니다. 하루라도 더 많이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