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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프로라는 것, 비운다는 것'러시아 월드컵 SBS 해설위원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06.07 14:49

4년마다 이맘때면 축구팬들의 마음은, 아니 국민들의 마음은 모두가 하나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던 2002년 여름으로 달려간다. 축구 변방 한국이 4강에 오르던 그해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선수가 있다. 박지성이다. 이후 그는 두 차례 더 월드컵에 참가해 골까지 터뜨리며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우뚝 섰다. 우리는 왜 그에게 열광하는가? 그리고 왜 그의 플레이를 지금도 그리워하는가?

5천만 국민들 중 박지성 이름 석 자 한 번 안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벌써 은퇴한 지 4년이 넘었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재단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 친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홍보대사 등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그의 행보는 뉴스와 인터넷 등에서 늘 화제가 되곤 한다.

축구라는 종목에 대한 대중의 관심, 그리고 그의 현역시절 활약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국가대표로는 100경기에 출전해 13골을 넣으며 2002 한일 월드컵 4강,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프로선수로는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2003년 일왕배 축구 선수권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에 우승을 선사했다. 같은 해 네덜란드 리그 PSV 아인트호벤(PSV)으로 이적해 유럽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유로 옮겨 생애 최고의 선수시절을 보낸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준우승, 리그 우승, UEFA 슈퍼컵 준우승, FIFA 클럽월드컵 우승까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는 이력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가 이처럼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사진제공 | SBS

‘축구 교도소’에 자신을 가둔 박지성의 삶
박지성은 별명이 많다. 흔히 알려진 산소탱크 외에도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 맨체스터의 은둔자, 숨은 영웅Unsung Hero, 유령까지 다양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별명에 그의 축구인생과 평소 플레이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박지성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뜨는 단어 중 하나가 ‘박지성 발’이다. 축구팬이라면 박지성의 발을 찍은 흑백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파이크에 찍힌 상처, 군데군데 박인 굳은살과 빨갛게 부은 발가락 마디마디를 보노라면 축구를 모르는 사람도 숙연해질 정도다. 결정적으로 그는 평발이다. 평발은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해 쉽게 피로해질 뿐 아니라 무릎과 허리에도 무리가 간다. 그런 발을 이끌고 박지성은 매 경기마다 운동장 곳곳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별 이동거리를 측정하면 그는 늘 팀내 1,2위에 올랐다. 그렇게 기를 쓰고 악착같이 경기장을 뛰어다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박지성의 목표는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대학 1학년 때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며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1999년 8월, 올림픽팀의 일원으로 유럽 원정을 다녀오며 그는 새 목표를 세웠다. 뜨거운 유럽의 축구열기와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나도 언젠가 꼭 유럽에서 뛰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재능이 50이라면 내 재능은 10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가 축구를 대하는 자세였다. 게다가 평발이라는 선천적인 핸디캡까지 커버하려면 남들보다 몇 배로 뛰는 것 외에 요행은 기대할 수 없었다.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란 별명은 그래서 생겼다.

‘맨체스터의 은둔자’는 박지성이 하루 24시간을 축구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시즌 중 경기 없는 날 그의 하루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아침에 기상해서 식사를 하고 훈련장으로 출근. 오전 훈련을 마친 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3시. 이후 저녁 5시까지 외국어 과외 공부. 저녁을 차려 먹고 책을 읽거나 TV를 보며 쉬다가 취침.’ 축구 경기난 훈련 외에 마음을 흐트러트리는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를 보며 어느 기자는 “마치 축구 교도소에 사는 것 같다”고 쓰기도 했다.

‘숨은 영웅Unsung Hero’은 그의 이름 ‘지성Ji-sung’을 살짝 비틀어 만든 별명으로, ‘찬사받지 못한 영웅’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이 별명은 그의 이타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5월 맨체스터의 지역신문인 <맨체스터 이브닝뉴스>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호날두(당시 맨유의 공격수)가 이번 시즌 대부분의 헤드라인을 훔쳐갔지만, 그 모든 것을 호날두 혼자서 이룬 건 아니었다.’ 아울러 이 신문은 박지성을 숨은 영웅이라고 칭하며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영리한 플레이로 팀을 하나로 묶는 선수’로 소개했다. 부지런한 활동량을 앞세워 상대선수의 허를 찌르고 공간을 여는 플레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팀동료 에브라는 그런 그에게 ‘유령’이란 별명을 지어주었다. 에브라의 말을 들어보자.

“훈련할 때 박지성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눈 깜짝할 새 내 뒤에 나타나고, 좀 있으면 또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는 유령 같다.”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지금까지 살펴본 박지성의 마인드는 다음 세 단어로 요약된다. 자신보다 남을 크게 여기는 겸손, 목표 앞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 그리고 자신보다 팀을 앞세우는 헌신.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축구 레전드의 마인드를 설명하기에는 2% 부족해 보인다. 한마디로 ‘열심히 했다’는 의미인데 운동선수치고 피와 땀과 눈물을 쏟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서 박지성의 별명들을 통해 그의 마인드를 더듬어 보았다. 그런데 미처 소개하지 않은 별명이 하나 있다. ‘벤치성’이다. 박지성에게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다. 실제로 영국의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그가 맨유에 입단했을 당시 ‘박 벤치Park Bench’라는 별명을 붙였다. 스타들이 즐비한 맨유에서 결코 주전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란 의미였다.

여기서 박지성의 진가가 드러난다. 2003년 그가 PSV에 입단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전까지 일본 J-리그에서 뛰던 박지성은 PSV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스타플레이어의 산실産室로 불리는 곳이다. 영국이나 스페인 프로리그에 비하면 인기나 인지도에서 뒤지긴 하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은 왕성한 체력과 탄탄한 개인기를 갖춰 유럽의 감독과 스카우터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J-리그에 비하면 선수들의 체격도 월등했고, 경기가 진행되는 속도도 몇 템포는 더 빨랐다. 팀내 분위기마저 달랐다. 훈련을 하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간에도 멱살을 잡고 싸울 만큼 거칠었다.

네덜란드 리그에 적응 못해 애를 먹는 그를 PSV 팬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사실 박지성은 전 소속팀 교토에서 무리한 스케줄을 강행하면서 부상을 입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홈팬들은 경기장에서 그에게 야유를 퍼부었고, 맥주가 든 종이컵을 던졌다. 한껏 목청 높여 응원을 해주어도 부족할 홈팬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좌절감과 야속함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마침 J-리그의 몇몇 팀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잔류냐, J-리그 복귀냐?’를 저울질하던 박지성은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자고. ‘나를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자서전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의 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움켜쥐려 할수록 고립됐지만, 버리면 새로운 공간과 기회가 열렸습니다. 내 안에 변화되지 않는 모습들로 절망하고 있다면 비우고 버리시기를 권합니다. 버리는 것이야말로 더 큰 나를 위해 망설임 없이 달려갈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버린 박지성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도 못하고, 팀이 승리하지도 못했는데도 끝나는 순간 알 수 없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후련한 경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팬들도 야유를 멈추고 그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박지성은 아시아 출신이라고는 믿기 힘든 놀라운 골을 잇달아 넣으며 PSV의 주전 자리를 확보한다. 그를 위한 응원가도 생겼다. 박지성의 팬이라면 다 아는 ‘위숭 빠레’다. 영국에서의 박지성은 어땠을까? 앞서 박지성에게 ‘박 벤치’란 별명을 붙인 <뉴스 오브 더 월드>는 2007년 2월, 박지성의 골 기사를 1면으로 실었다. ‘슈퍼 박Brights Park’이라는 제목과 함께.

자신에게 취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박지성은 골을 넣었을 때의 기쁨을 ‘무더운 여름 쏟아지는 소나기만큼 시원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경기에서 골을 넣는 순간, 그 선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된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환희와 희열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길어야 1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게 박지성의 말이다. 가슴에서 치솟는 뜨거운 기쁨을 맘껏 표출한 뒤에는 다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골을 넣은 기쁨에 취해 있다가는 동점골에 역전골까지 내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기회를 노리다보면 두 골, 세 골도 넣을 수 있다. 이 또한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을 때 가능한 것이다.

축구선수의 가슴에는 골 욕심 외에 한 가지 욕심이 더 있다. 경기출전 욕심이다. 유럽의 클럽팀들은 1년에 60여 경기를 소화한다. 그래서 감독들은 로테이션rotation이란 시스템을 사용한다. 중요한 경기에는 베스트 일레븐을 내보내 총력전을 펼치고, 약체팀와의 경기나 친선경기 등은 2진을 내보내 경기감각을 유지시키고 주전에게 휴식을 준다. 물론 선수들 간에 경쟁의식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축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프로선수들이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혈기왕성한 그들의 가슴 한편에는 여전히 경기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그 욕심을 내려놓고 감독에게 순응해야 팀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맨유의 감독이었던 퍼거슨은 선수들에게 ‘하나의 팀을 위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박지성 역시 퍼거슨을 철저하게 믿고 따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번 로테이션 때문에 눈물을 삼킨 적이 있다. 200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명단에 그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결국 그는 관중석에서 동료들이 우승을 확정짓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시상식에서 우승 메달을 받지 못해 소외감이 배가 되었지만, 그는 결심했다. ‘지금까지의 나를 다시 한 번 버리겠다!’고. 이듬해 다시 열린 챔피언스리그. 박지성은 아스널과의 준결승 2차전에서 선제골을 뽑아내며 팀의 결승 진출을 도왔다. 그리고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올랐다.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서
지난 5월 16일, 서울 목동 SBS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박지성이 러시아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나서게 된 것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였다. 공교롭게도 KBS에서는 이영표를, MBC에서는 안정환을 해설위원으로 기용하기로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끈 3총사가 모두 해설을 맡게 된 것이다.

선수시절 박지성의 장기 중 하나가 간결한 볼터치로 단숨에 상대팀의 압박수비를 따돌리는 이른바 ‘탈압박’이었다. 그 장기는 간담회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해설을 준비하며 아나운서 출신 아내는 어떤 도움을 주었느냐?’ 같은 가십성 섞인 질문에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없이 재치 있는 답변으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든 것.

노련한 답변솜씨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참석자들을 대하는 박지성의 매너였다. 마치 개인인터뷰를 진행하듯 질문을 한 기자와 눈을 맞춰가며 차분하게 답하는가 하면, 간담회가 끝나고 이어진 포토타임 때도 일일이 미소를 지어가며 셀카 촬영에 응해 주었다. 박지성은 이번 월드컵 4강 후보로 브라질, 독일, 프랑스와 이변의 한 팀을 꼽았고, 돌풍을 일으킬 다크호스로는 이집트를 꼽았다. 이영표는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해설이, 안정환은 예능프로그램이나 만담처럼 편안한 화법이 장점으로 꼽힌다. ‘해설위원’ 박지성의 장점은 무엇일까?

“아직 방송에서 해설을 한 적이 없어 내세울 장점은 없습니다. 경험이 쌓이면 저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잡히겠죠. 이영표, 안정환 위원에게 특별히 경쟁의식도 느끼지 않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 만큼 시청자들께 다양한 스타일의 해설을 즐길 기회를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현재 영국에서 거주하며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나설 준비에 한창인 박지성. 현재 그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에 서 있다. TV로 그의 플레이를 보며 새벽잠을 설친 축구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박지성
1981년생. 2000년 일본 교토 상가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PSV 아인트호벤을 거쳐 2005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했다. 국가대표로는 2000년 올림픽 대표팀을 시작으로 2002, 2006, 2010년 월드컵에 3회 연속 출전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홍보대사, JS파운데이션 이사장으로 축구 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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