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패션전문사전에 등재된 단어 중에 ‘TPO’라는 용어가 있다. TPO란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의 머릿글자로, 옷을 입을 때는 반드시 이 3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생긴 말이라고 한다.

필자의 회사만 해도 ‘모든 직원은 출근시 정장full dress을 갖춰 입는다’ 같은 규정은 없다. 하지만 복장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어느 직원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왔다고 생각해보자.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사람이 과연 진지하고 정돈된 자세로 업무에 임할 수 있을까? 또 회사에서는 외부 손님을 만날 일도 자주 생긴다.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자신을 응대하는 직원을 본 손님은, 그 직원 나아가 그 회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품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게 행동한다’는 의미의 TPO는 어쩌면 ‘배려’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고 상황에 맞는 격식을 갖출 때 그에 걸맞은 마음가짐도 함께 생겨나는 법이다.

배려 없는 노력은 무용지물無用之物
배려와 존중은 비단 옷차림이나 몸가짐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필자 회사의 직원 A는 일을 매우 꼼꼼하게,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다. 가령 회의록 작성을 맡기면, A는 회의 때 오간 이야기를 작은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상세히 기록했다. 그렇게 깨알같이 자료를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정리해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만들어 오곤 했다. 하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회의록을 읽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 회의록을 읽거나 보고를 받는 윗사람들은 각종 회의와 외부 미팅 등 일에 쫓겨 살다시피 한다. 두꺼운 자료를 한자리에 앉아 차분히 들여다보고 있을 여유가 없다. 회의록을 작성하는 건 결정권자로 하여금 단박에 회의의 핵심을 파악하게 함으로써 손쉽고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회의의 목적과 안건, 결정내용, 향후계획을 간추려 적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A의 노력은 칭찬 받을 만했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혜안이 부족했던 것이다.

흔히 우리는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쓴다. 따라서 글을 쓰기 전, 읽을 사람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기업에 비유하면, 글을 읽는 독자는 제품을 사 주는 고객과도 같기에 고객의 요구나 눈높이에 맞춰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같은 기본적인 원칙을 망각한 채, 글을 쓰면서도 자기 지식을 자랑하거나 상대가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실수를 범한다.

배려는 기회손실과 시간낭비를 막는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1%의 배려’가 아쉬운 사례를 몇 가지 더 이야기하겠다. 필자의 회사에서 직원들이 작성해 오는 보고서를 보면, 글씨를 작고 빽빽하게 해오는 경우가 있다. 실무자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이기에 눈이 나빠도 안경을 쓰면 잘 보이겠지만, 보고를 받는 사람들은 대개 중장년층이라 가까운 곳의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실무자들이 보고서를 읽을 사람들 입장을 조금만 헤아려서 큰 글씨로 작성해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학교에서 과제나 레포트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과제나 레포트를 읽을 교수님들의 연령대를 생각해 보자. 보고서 대신 메신저나 문자로 보고할 때도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화면이 작은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적을 때는 내용이 길어지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띄어쓰기가 되곤 한다. 보낼 때는 분명히 제대로 작성한 것 같은데, 막상 받아봤을 때는 문맥이 이상하게 뒤바뀌어 있는 경우도 흔하다. 더욱이 작은 글씨로 길게 늘어진 문장을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장이 길어질 것 같으면 중간에 끝을 맺고 간결한 문장 몇 개로 나눠 써보자. 또 메시지의 내용이 중요하거나 길다면, 먼저 자신에게 문자를 보내보자. 상대한테 어떻게 메시지가 전달되는지 미리 볼 수 있다. 간단한 배려 하나로 훨씬 보기 편하게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배려의 원칙은 부모님 심부름을 할 때, 혹은 교수님이나 직장상사의 의뢰를 받아 일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 누군가 시킨 것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시킨 사람이 왜 내게 이 일을 맡겼고, 이 일을 통해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런 배려도 없이 임의로 일을 미루거나 대충 한다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혹은 ‘검토만 해 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사업계획까지 작성하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면, 이는 시간낭비요 기회손실이다. 일을 할 때는 언제까지 어떤 결과를 낼지를 늘 생각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일을 맡긴 사람의 의중을 살피고 거기에 맞게 대응하는 배려의 자세가 필수다.

상대를 고객으로 생각하고 다가서라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라는 뜻의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삶이나 업무에 이를 적용하고 실천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사소한 구두보고나 메시지 작성 같은 일부터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고 처리하는 습관을 들여 보자.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은 물론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왜 하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라면 여러분 중심으로 생각하고 처리해도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여러분이 하는 일의 파급효과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자신의 고객이라 생각하고, 그 고객이 그 상황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의 자세를 통해, 매사에 적극적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기쁨을 맛보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

박천웅
국내 1위의 취업지원 및 채용대행 기업 스탭스(주) 대표이사. 한국장학재단 100인 멘토로 선정되어 대상을수상했으며, (사)한국진로취업 서비스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대기업 근무 및 기업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에게 학업과 취업에 대해 실질적인 조언을 하는 멘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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