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학교 총장 원윤희

계절의 여왕 5월. 하지만 대학생들은 캠퍼스에 완연한 봄기운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갓 스무 살 성인이 된 새내기들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움츠러든 모습이다. 그런 대학생들에게 인생선배의 조언은 특효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시립대 18학번 최원태 씨가 그 특효약을 처방받고자 학교에서 가장 어른인 원윤희 총장을 찾아갔다.

 

총장님도 저처럼 대학 신입생 시절이 있으셨을 텐데요. 20대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글쎄요, 돌아보니 대학 입학, 군 입대, 대학원 진학, 결혼 등 10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 중 대학시절은 뭔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또 열심히 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니고. 그래서인지 ‘보람 있게 대학시절을 보냈다’는 기분은 안 드네요.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참 중요한 시기였는데 말이죠. 한편으로는 ‘20대를 조금 더 열심히, 보람있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드는군요. 개인적으로 큰 변화와 준비의 시간이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 시절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대학생활을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군 입대나 취업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도 듭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다 실패를 만나면 어쩌지?’ 하고요.
그렇지요? 제 인생도 마냥 평탄치만은 않았어요. 저희 때는 중학교도 입학시험이 있었는데, 저는 중학 입시에서 떨어졌었어요. 고교 입시도 떨어진 적이 있고요.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어요. ‘대학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 여러가지 큰 어려움이나 실패를 겪으면서도 좌절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느리지만 차분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서울시립대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저렴한 등록금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102만 원(인문사회계열 기준)이란 사실을 알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의 질이나 학교시설이 다른 대학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0년 기준으로 전임교원 확보율은 87.2%,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는 27.5명으로 대한민국 어느 대학에도 뒤지지않는 교육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시립대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저렴한 등록금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102만 원(인문사회계열 기준)이란 사실을 알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의 질이나 학교시설이 다른 대학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0년 기준으로 전임교원 확보율은 87.2%,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는 27.5명으로 대한민국 어느 대학에도 뒤지지않는 교육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분명한 목표를 잡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목표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생각하니 좀 막연해 지네요.
저는 등산을 좋아해요. 그래서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도 인생을 등산에 비유해서 자주 설명하곤 합니다. ‘인생’이란 산을 오를 때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우선 설악산에 갈지, 북한산에 갈지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제가 에베레스트산을 목표로 삼는다면 굉장히 무모한 목표라고 할 수 있겠죠. 반대로 우리 시립대 캠퍼스 뒤에 있는 높이 108미터의 배봉산을 목표로 한다면, 별로 도전적이지 못한 목표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도전적이면서도 무모하지는 않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 목표에는 잘 알려진 목표와 잘 알려지지 않은 목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수라는 직업은 잘 알려져 있고, 도달하기까지 어느 정도 정해진 코스가 있기에, 그 길을 따라 성실히 걷다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누구도 가보지 않은 목표를 향해 갈 때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럴 때는 내가 가고 있는 목표를 자주 쳐다보며,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도 들어야 하겠죠.

등산할 때 자꾸 꼭대기만 쳐다보고 산을 오르면 아주 힘들어요. 길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위를 쳐다보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언젠가는 도달해 있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해서 가다보면 도중에 지칠 수도 있고, 너무 천천히 올라가면 다 올랐을 때 이미 날이 새서 내려올 때 위험할 수도 있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뚜벅뚜벅 가다보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총장님의 답변에서 따스함과 연륜이 묻어났다.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목표’라는 단어가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목표란 단순히 내가 지향하는 도착점을 넘어, 그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갈 의욕을 일으키는 원동력도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문득 학교 홈페이지에서 본 총장님의 약력이 떠올랐다. 경제학, 정책학, 행정학을 두루 공부한 총장님은 왜 하필 교수가 될 목표를 세우신 걸까.

경제학, 정책학, 행정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교수가 될 꿈을 품은 이유가 있습니까?
집에서는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길 바라셨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편이어서 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뭔가 연구하고 스스로 새로운 걸 발견하는 교수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또 대학원에 가기 전에 1~2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었어요. 틀에 짜인 직장생활보다는, 창의적이고 후세에 뭔가를 남기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도 교수가 된 이유입니다. 교수는 흔히 교육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자라고 하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총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지만, 교수생활을 하던 중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총장직에도 도전했지요.

지난 5월 1일은 서울시립대 설립 100주년이었습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지난 2015년부터 우리 시립대는 ‘배움과 나눔의 100년, 서울의 자부심’을 비전으로 설정해 왔습니다. 이 말대로 우리 재학생들은 서울시립대 학생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수님들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직원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인 만큼, 크든 작든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겠죠.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 등 엄청나게 큰 변화의 시점에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점에서 대학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지, 또 서울시립대가 서울의 공립대학교라는 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죠. 이런 점을 좀 더 집약·발전시킨 향후 100년의 목표를 개교기념일인 5월 1일에 발표하려고 합니다. ‘우리 목표는 이것’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시립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 친구들은 시립대는 등록금이 저렴하다고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시민들의 세금 덕분에 누리는 혜택이라고 생각하니 공부할 때도 뭔가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네, 그렇다고 재학생 여러분이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감은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학생이니까 학생으로서 할 일이 있잖아요. 열심히 자기 미래를 준비하며 꿈도 키우고, 열심히 놀기도 하고, 사회에 진출할 준비도 하며 친구들도 사귀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시립대생들이 여느 대학생들보다 훨씬 특혜를 받고 있는 만큼 어떻게 해야 사회에 기여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자세입니다.

대학생이란 사회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이니, 어떻게 해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라는 것이죠. 하지만 너무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실현하는 대학생으로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보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꿈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가지라’는 말은 굉장히 평범한 말 같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고 인생을 살다보면 이 말을 해요. 그만큼 꿈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젊을 때 하루하루 허덕이면서 살기 보다는 좀 더 큰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과연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이를 준비하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월딩거 박사 ⓒTED.com
로버트 월딩거 박사 ⓒTED.com

두 번째로는 ‘항상 관계를 중요시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버드대의 로버트 월딩거Robert Waldinger 박사가 진행한 ‘행복의 조건’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에 대해 연구한 프로젝트인데, 그 결론은 바로 ‘좋은 관계Good Relationship’였습니다. 연구결과로도 입증됐지만 저도 굉장히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종교가 있다면 종교활동에서든, 사회에서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학생들이 굉장히 우수하고 성실한 건 큰 장점이에요. 그런데 요즘이 워낙 힘든 시기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종일 도서관에 혼자 자리잡고 앉아 공부나 취업준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자주 봐요. 모든 시간을 공부에만 투자하지 말고 쉬는시간에라도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도 하고, 같이 땀도 흘리며 스트레스도 풀고 해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그래야 또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죠.

‘혼자 놀지 말라’는 이야기는 개개인은 열심히 하되 친구들과의 관계, 집에서는 부모님과 형제들과의 관계, 또 사회관계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에게 뭔가를 배우고 하면서 학생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총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동안 날 움츠러들게 하던 학업으로 인한 부담,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스펙과 학점 등 경쟁에 시달리느라 우리는 어쩌면 진정 소중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며 사는 행복을 잊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열린 단기 해외탐방 프로그램 발대식에 함께한 원윤희 총장. 재학생들이 글로벌 감각과 외국어 능력을 갖춘 리더로 성장하도록 미국,프랑스, 중국 등으로 단기연수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해 열린 단기 해외탐방 프로그램 발대식에 함께한 원윤희 총장. 재학생들이 글로벌 감각과 외국어 능력을 갖춘 리더로 성장하도록 미국,프랑스, 중국 등으로 단기연수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다.

대학생활을 하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꼭 해외 경험을 해보라고 강조하고 싶네요. 좁은 세상 안에서만 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거잖아요. 가급적이면 바깥 세상을 많이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넓은 세상을 본 사람은 자기가 목표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다른 좋은 선택지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좌절하지 않아요. 그래서 작년부터 시립대에서도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해외로 학생들을 보내고 있어요. 아직 해외에 가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죠. 다른 나라에 가서 넓은 세상을 봐야 꿈도 생각도 넓어지죠.

그리고 스포츠활동, 동아리활동을 폭넓게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저는 키도 작고 체격이 좋은 편이 아닌데, 언제나 운동을 강조해요.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항상 본인 주변의 친구들이 최고의 친구들이라는 생각으로 주변사람 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길 바랍니다.

원 총장이 시립대에서 열린 도시과학 공동작품전을 둘러보고 있다.
원 총장이 시립대에서 열린 도시과학 공동작품전을 둘러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투머로우>의 대학생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학생은 중고등학생 시절에서 벗어나 성인의 삶으로 접어드는 단계잖아요. 대학 4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목표를 확실하게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아, 내가 대학시절을 정말 보람 있게 보냈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네요. 저도 학생들을 많이 만나 상담해 보면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낙담할 수도 있는데, 너무 절망하지 말고더 나을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갔으면 합니다. 후회 없는 대학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목표의 필요성’ ‘좋은 관계의 중요성’ ‘해외경험’… 짧다면 짧은 1시간의 인터뷰 동안 총장님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계속해서 말씀해 주셨다. 덕분에 메모하던 내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해 주시려는 총장님의 애정과 배려가 엿보여 절로 힘이 났다.

어렸을 때 고난이 있었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으셨다는 총장님. 총장님이 해 주신 말씀은 앞으로 우리가 대학생활을 하며 만날 문제들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캠퍼스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오늘 총장님이 해 주신 이야기들을 꼭 전해주고 싶어졌다.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원윤희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오하이오Ohio 주립대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세행정개혁위원회와 지방재정위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시립대 8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