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다
2016년 12월, 인터넷 바둑 사이트 두 곳에 magister와 master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등장했다. 이 둘은 한·중·일 랭킹 1위 3명을 포함한 세계최고 프로기사들을 연파하고 60승 무패를 기록한 뒤 사라졌다. 얼마 뒤, 구글이 ‘magister와 master는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발표하며 알파고 등장 이후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랭킹 1위 커제는 알파고와의 대국 후 이런 소감을 남겼다.

“인공지능의 바둑을 보건대, 어쩌면 인간은 그 누구도 바둑의 진리 그 가장자리에조차 닿아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두렵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까지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인간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바둑을 둘 때 나오는 수는 너무 복잡해서 슈퍼컴퓨터 몇 대로 계산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왜 이렇게 갑자기 강력해진 것일까? 컴퓨터가 더 이상 바둑의 수만 읽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가지고 바둑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이제 감각을 가지게 되어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 대본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사람의 감정을 읽고 도덕심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인공지능, 적인가 친구인가?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 이전에 1, 2, 3차 산업혁명이 있었다. 18세기에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는데 인력거나 마차로 몇 명밖에 나르지 못하던 손님을, 기차가 수백 명씩 태우고 다니게 되었다. 힘센 사람이 대접받던 시대가 가고 정교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게 되었다.

2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전기에너지를 통해 기계의 움직임은 훨씬 정교해졌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점점 육체노동보다는 계산에 뛰어나고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을 또 한번 탈바꿈시켰다. 사람이 하기 힘든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는 불과 몇 초 만에 풀어내고, 지식들은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넘쳐나게 되었다. 뛰어난 계산실력과 많은 지식도 더 이상 대단한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인간은 기계 앞에 자만심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직관이나 감각만큼은 기계가 따라오기 힘들 것 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마저도 기계가 자리를 넘보고 있다. 기계가 복잡한 현상을 직관적으로 분석하고, 많은 정보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감각적으로 찾아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직관이나 감각의 영역에서도 인간은 기계에게 많은 부분을 침범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어쩌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도 있다.

지식 암기보다 생각하는 힘이 먼저!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인공지능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과거의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이 생각하는 겉모습을 흉내 냈다면, 최근 각광받는 뉴럴 네트워크 인공지능(artificial neural network, 인공신경망)은 인간의 뇌신경(뉴런, neuron) 구조 자체를 모방하고 있다. 이를 다른 이름으로 딥러닝deep learning이라고 부른다. 왜 ‘러닝learning(학습)’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사람이나 동물이 뇌를 사용해 학습하며 똑똑해지는 것처럼, 뉴럴 네트워크 인공지능도 학습을 하면서 점점 더 똑똑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신경 세포는 아래 그림처럼 생겼다. 축색돌기axon에서 전기신호를 내어 보내고 수상돌기 dentrites에서 다른 뇌세포의 신호를 받아들인다.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는 공간을 시냅스synapse라고 한다. 시냅스를 통과하여 수상돌기로 들어오는 여러 전기신호가 세포의 핵cell body에서 더해진 다음, 그 값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축색돌기를 통해 내보내는 방식으로 뇌세포가 작동한다. 요약하면, 수상돌기로 들어온 신호가 어느 정도 양이 쌓이면 축색돌기로 뿜어져 나가는 것이다.

뇌세포 하나의 작동 구조는 이처럼 단순하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뇌세포가 많이 모이고 연결되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을 만드는 놀라운 작용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머리가 똑똑하다’는 것은 뇌세포 그물망의 신호 흐름이 원활하도록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 인해 뇌세포의 연결이 원활치 않은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생각을 깊게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은, 결국 뇌세포 그물망의 연결을 더욱 촘촘하고 원활하게 만드는 훈련인 것이다.

사람이 학습을 하는 것은 뇌세포 간 신호 흐름에 의해 뇌세포 그물망이 파도물결처럼 연이어 반응하며 다양한 환경이나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련의 과정이다. 공부할 때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의문을 갖고 토론하는 것은, 뇌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고 반응하게 하여 뇌세포 그물망이 효과적으로 구성되도록 하는 좋은 훈련법이다. 좋은 뇌세포 그물망을 가졌다 해도 실생활 속 다양한 경험에 반응하는 훈련을 하지 못하면 현실에서 오작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와 다양한 경험은 좋은 뇌세포 그물망을 만드는 데 상호 보완적이면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것보다는 뇌세포를 자극하여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는 뒤에서 다시 언급할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토론과 소통에 바탕을 둔 하브루타 학습법으로 공부하는 유대인 학생들. ⓒGeshmakster
토론과 소통에 바탕을 둔 하브루타 학습법으로 공부하는 유대인 학생들. ⓒGeshmakster
얼핏 렘브란트의 작품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이 그려낸 그림이다.
얼핏 렘브란트의 작품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이 그려낸 그림이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는 알파고와 인공지능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는 알파고와 인공지능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창의성의 출발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지적 겸손
인공지능은 뇌신경 세포 그물망의 모습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다. 즉,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물망을 효과적으로 구성한 후 신호가 적절히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공지능 내부를 들여다보면 ‘연결’을 통해 강력한 힘을 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벽돌을 쌓아 큰 집을 만들 듯, 작은 지식들을 모아 큰 지식을 만드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연결된 객체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동작하는 것이다.

인간도 연결하는 기능을 갖고 있고, 연결이 잘되면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연결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뤄지지만, 인간과 인간의 연결은 소통으로 이뤄진다. 과거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몇몇 뛰어난 인재가 조직이나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주의가 효과적이었지만, 엘리트주의는 경직된 위계질서와 권위주의를 만들어냄으로써 소통을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아 왔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소통에 드는 비용이 감소함에 따라, 수평적 조직문화와 탈권위주의를 통해 조직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소통이 자유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많은 지식을 머리에 주입시키는 교육으로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암기식 교육보다 창의성 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했을 뿐만 아니라 IT, 경제, 예술, 문화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유대인은 창의성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런데 유대인의 IQ는 그다지 높지 않다. 유대인들은 타고난 머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강력한 소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은 학생시절에 하브루타havruta라고 해서 나이, 성별, 계급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의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는 후츠파chutzpah 정신이라고 해서 연장자나 권위자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풍토가 정착되어 있다.

‘창의적 인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조직문화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경직된 조직문화에서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모여서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이를 연결시키면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보잘것없는 뉴런들이 연결을 거듭해 신호가 흐르면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인공지능과 참으로 유사하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로 표현되기도 한다. IT기술의 발달로 많은 것들이 연결되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장치의 수가 전 세계 인구보다 많아졌고, 사람의 뇌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과거 인류가 느끼던 것의 100배 이상이 되고 있다. 이제 연결되지 않으면 고립되고, 고립되면 소멸되는 시대다. 자신의 과거 경험에 갇혀 나와 다른 생각을 틀린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연결이 잘 되지 않아 도태될 것이다. 창의성은 ‘내가 그 동안 갖고 있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갖고, 자기 생각과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를 연결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 조직에 많을 때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게 되고 유대인들처럼 신나게 토론을 할 수 있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창의적 조직문화를 만드는 지름길이 된다.

인공지능과 인간은 지배의 관계이기보다는 공생의 관계가 될 것이다. 1, 2, 3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기계, 전기, 컴퓨터도 처음에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가졌지만, 지금은 인간과 공생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을 배척하지 않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공생하듯, 인공지능도 우리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많은 기술들처럼 인공지능도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인데, 이에 대비하여 우리 인간은 창의성이 필요한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창의성도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공지능 역시 점점 창의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기기 위해 창의성을 계발하기보다는, 인공지능과의 건강한 공생을 위해 창의성을 계발해야 한다. 5차 산업혁명에서는 또 어떤 기술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자세히 보면 세상 전체가 하나의 연결체이다. 뇌신경 세포, 개인과 개인, 그리고 기술, 제도, 환경, 이러한 것들이 이어져하나의 큰 연결망을 이룬다. 그리고 이 연결망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해 나갈 것이다. 그 변화에 우리가 적응하려면 과거의 경험에 갇히지 않는 창의성이 요구된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소통하고 토론해야 하며, 그런 능력을 가진 리더들을 키워야 한다. 소통을 통해 지혜를 모은다면 첨단기술과 공존하면서도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민수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KAIST와 삼성중공업 연구소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을 연구한 후 현재는 현대자동차 연구소에서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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