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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마을 외교관 가족 ‘함께라서 더 행복합니다’주한 알제리 대사 모함메드 엘 아민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05.09 14:26

가정의 달인 5월호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공교롭게도 주한 알제리 대사관으로부터 “관저에서 대사님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사무실이나 공식행사에서는 접하기 힘든, 외교관의 가정을 직접 탐방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조국 알제리와 한국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부부가 한마음으로 바쁘게 뛰는 데라기 대사 부부는, 5월에 걸맞은 최고의 인터뷰이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로벌’한 곳은 과연 어디일까?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제주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열에 일곱은 꼭 들른다는 이태원? 송도국제도시?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지만, 기자라면 서울의 성북동이라고 답할 것 같다. 어림잡아 마흔 곳 넘는 주한 대사관저가 이곳에 모여 있다. 대사 외에 부대사나 영사 등 여기 터를 잡고 사는 다른 외교관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유독 이곳에 대사관저가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외교 초창기에 한국으로 발령받은 독일이나 일본 대사들이 이곳에 관저를 마련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청와대와 정부청사, 언론사, 대사관 등이 밀집한 광화문과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주변에 북악산이 있어 생활환경이 쾌적한 것도 큰 장점이다.

주한 알제리 대사관저 역시 성북동에 자리하고 있다. 큰길을 지나 차를 몰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좌우로는 대사관저임을 알리는 간판들이 휙휙 지나갔다. 카자흐스탄, 핀란드, 방글라데시, 폴란드…. 이밖에도 호주, 포르투갈, 캐나다, 탄자니아 등의 대사관저들까지 있다니 그야말로 작은 지구촌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집사의 안내를 받아 관저로 들어갔다. 손님을 맞는데 익숙한 듯 내부는 알제리를 소개하는 사진과 그림액자, 가구, 살림살이 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응접실에서 모함메드 엘 아멘 데라기 대사와 샤피카 데라기 대사부인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국어에는 ‘내조內助’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돕는다는 의미인데요. 대사부인께서도 남편과 함께 외교사절로 많은 활동을 해오셨을 듯합니다.
저는 스물두 살되던 1977년에 외교부에 입부했습니다. 1982년에 결혼하면서 인도의 알제리 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발령받았으니, 올해까지 36년째 함께 외교관 생활을 해 온 셈이지요. 대사부인은 주부를 넘어 남편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외교관입니다.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든 조국을 알리는 한편, 주재국의 다른 대사부인이나 여성외교관들과 부지런히 소통하며 인맥을 구축하고 도움을 주고받죠. 기타 외교행사에도 남편과 함께 참석합니다.

모함메드 엘 아민 데라기
알제리 수도 알제의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부인도 알제리 대사관과 주유고슬라비아 알제리 대사관에서 대사 비서 겸 고문으로 근무했으며, 알제리 외교부 아시아·오세아니아 국장을 역임했다. 대사로서는 우간다와 이란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 근무지다.

또 하나의 외교관이라지만, 사실 대사부인의 생활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예산이 부족하고 생활환경이 열악한 나라로 발령받을 경우 요리사, 미용사, 의전 및 국제매너 전문가, 이삿짐 전문가 등 크고 작은 궂은일을 감당해 내야 한다. 외국손님을 맞느라 불고기 백 근, 군만두 천 개, 빈대떡 5백 장을 한꺼번에 준비했다는 외교관 부인도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오스트리아 대사 시절,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댄스교습소에 등록해 춤을 배운 것은 지금도 외교부 내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왈츠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외교 만찬 때마다 왈츠가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7년 동안 열두 번이나 근무지를 옮긴 외교관도 있습니다. 그간 저희가 취재한 대사들께서는 모두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족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계시더군요.
그럴 겁니다. 부인은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접고, 가족과 친구를 떠나 해외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아이들도 그동안 사귀었던 정든 친구를 뒤로하고 새나라, 새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희생이라기보다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하나를 손에 넣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려놔야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게 외교관이 할 일이고요. 더구나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그런 것쯤은 감수해야죠. 또 새로운 근무지로 옮기는 것이 반드시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면서 삶이 풍성해지는 장점도 있지요.

행정학교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외교관이 되셨는데요.
20대의 대부분을 공직자로 나라를 위해 일하느라 바쁘게 보냈습니다. <투머로우> 독자들은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 자기가 진정 관심과 흥미를 가질 만한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저희 때는 정보를 얻는 통로라고는 신문이나 라디오 정도가 고작이었고, TV도 아무나 볼 수 없었거든요. 지금은 인터넷 등 통신기술이 발달했고 정보도 풍부해서 훨씬 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교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교관은 조국의 창구 노릇을 하는 만큼 일반적인 교양과 상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분야를 깊이 있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불필요한 일입니다. 대신 모든 분야를 조금씩이라도 알면 도움이 됩니다. 만약 경제학도인데 외교관이 되고 싶다면, 경제학 공부를 마치고 역사나 국제관계 등으로 관심분야를 넓혀가길 바랍니다. 교양과 상식을 갖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입니다. 저도 외교관이 되니 규칙적으로 독서를 하거나 신간을 읽을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데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 각국에서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알제리하면 ’14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팀에 충격적인 패배를 안긴 기억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한 나라는 아니지만, 알제리는 앞으로 우리나라와 많은 교류와 협력이 기대되는 나라다. 국토는 238만 1,741평방킬로미터로 세계 10위, 아프리카 내 1위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망간, 코발트, 납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약 20여 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다. 지리적으로도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부터 카르타고, 로마, 오스만제국 등이 번갈아 이 지역을 지배했다. 1830년부터는 프랑스군이 진주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것이 1962년이니, 1955년생인 데라기 대사도 식민지배를 겪어야 했다.

타그히트 지역에서 바라본 사하라 사막의 풍경.ⓒMohamed.benguedda

식민치하에서 특별히 차별이나 어려움을 겪으신 적은 없습니까?
차별이야 있었겠지만, 제가 차별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식민통치 시절, 프랑스는 알제리를 영구지배할 계획을 세우고 강력한 프랑스화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모국어인 아랍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프랑스어를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단순히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넘어 프랑스인과 다른 유럽인들까지 이주시켰습니다. 독립하기 직전에는 알제리 인구 10분의 1이 유럽에서 온 이주민이었다는 통계도 있으니까요. 저희는 1830년, 프랑스군이 쳐들어 오자마자 저항을 시작했는데요. 전쟁은 1962년에 알제리가 독립을 이룰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참전했는데, 알제리 국민이라면 가족들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은 이 전쟁에서 희생되었을 정도입니다.

알제리에는 1,200킬로미터에 수백 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이처럼 알제리는 사막과 숲, 바다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하다.

대사님의 부모님도 고생을 많이 하셨겠군요.
부모님은 자녀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으셔서 제가 어떻게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프랑스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는데, 이는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프랑스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전통학교에 보내서 아랍어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프랑스 치하에서는 공식적으로 프랑스어만 가르칠 수 있었거든요.

대사님 역시 부모님의 교육열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듯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교육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어떤 선생님도 부모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 부부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데요. 아이들은 제가 해외에서 근무 할 때는 외국인 학교를, 알제리에서 근무할 때는 알제리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가족 모두 반드시 모국어인 아랍어만 쓰도록 약속했습니다. 언어란 게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외국인 학교에 다닐 때면 영어나 프랑스어를 쓸 기회가 더 많으니까 아랍어를 잊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평생 해외에서 생활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근본을 잊지는 말아야죠. 그래서 저는 알제리의 역사나 문화, 지리 등을 아이들에게 아랍어로 직접 가르쳤습니다.

데라기 대사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대사 부부, 사위와 딸 부부, 아들.
샤피카 대사 부인이 남편의 생일을 기념해 딸이 직접 디자인해 만든 앨범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5월이 가정의 달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주중에 아버지와 대화시간이 1시간이 채 못 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맞벌이 부모가 많고 청소년들도 학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침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깐 얼굴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가족 모두가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일 겁니다. 저는 저녁식사만큼은 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요즘은 집에 와서도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은데,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은 밀어놓으면 좋겠어요.

외교관들이 하는 우스갯소리 가운데 ‘말과 외교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라는 게 있다. 정답은 ‘둘 다서서 밥을 먹을 수 있다’란다. 외교관은 만찬이나 리셉션에 참여할 일이 많아 생긴 말이다. 데라기 대사에게 이 우스갯소리를 들려주니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서서라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요. 아침을 먹고 점심은 거른 뒤 저녁 때까지 시간이 안 날 때도 많아요. 그런 삶에 익숙해지면 큰 문제는 안 됩니다.”

바쁘신데 시간과 체력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요?
특별히 따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닌데, 체력이 달리는것은 못 느껴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니까요. 힘은 거기서 나옵니다. 하지만 일하다 보면 시간은 부족할 때가 많죠.

외교관이라면 두 나라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어와 문화, 생활환경 등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다르니까 오히려 조율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외교관은 주재국의 정부 관계자들과 기업인들, 나아가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자국을 알려 두 나라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해야 하잖아요? 그동안 패션쇼나 문화공연, 전시회 등다양한 행사를 통해 알제리를 한국에 알려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행사와 프로젝트를 준비할 계획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대사부인이 박하차와 알제리 전통과자 ‘그락솃’을 내왔다. 밀가루를 가늘고 얇은 꿀꽈배기처럼 구워 벌꿀와 참깨를 얹은 그락솃은 박하차와 잘 어울렸다. 알제리 과자는 맛있을 뿐 아니라 첨가물이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유기농재료로 만든다는 설명을 들으니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고 먹고 싶은 충동을 붙들기가 힘들었다.

현관을 나서기 전, 대사부인은 방명록을 꼭 기록해 줄 것을 부탁했다. 넘겨보니 기업인, 언론인, 심지어 어린 학생들이 쓰고 간 글이 빼곡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대사 부부의 마음이 엿보였다.

대사의 임기는 통상 4년으로, 데라기 대사도 올해로 임기 4년째를 맞는다. 언제 새로운 곳으로 부임할지 후회없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한다는 데라기 대사, 그리고 그런 남편을 충실히 돕는 대사부인. 한마음 한뜻으로 사는 두 사람이 새삼 잘 어울려 보였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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