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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배려가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모잠비크 법무부 차관 아르린두 알베르토 랑가
김민영 기자 | 승인 2018.05.04 14:45

현실의 쳇바퀴에 매이다 보면 미지를 향해 새롭게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하루 스케줄에 더욱 매이기 쉽다. 그래서 새로운 미지를 향해 책상을 박차고 나갈 용기가 있는 이들만이 ‘기회’를 만나고, 낯설지만 멋진 인연을 만들어가는 법이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고, 그것이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기회를 만들었다.

우연히 찾아온 한국 방문의 기회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동안 그는 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잠비아, 남아공, 모리셔스, 케냐, 보츠와나, 미국과 중국,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가 직면한 모잠비크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고심해왔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했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이 세계관광기구UNWTO 총회의 국장으로 활동할 당시 처음 한국을 방문할 때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모잠비크로 돌아갔다. 다시 한국에 온다면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한국인 가정집에서 3일간 민박을 하며 오완수 씨 부부와 딸 최수현 씨와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한국 사람의 인사법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두 번째 방문한 한국에서 그를 맞이한 한국인들의 인사법에 크게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저를 맞으러 나온 분이,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하며 맞이해 주시는데 상당히 놀랐습니다. 한국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어요. 이런 인사법이 참 보기 좋고 매우 아름답게 느꼈습니다. 이 인사법이 한국의 전통문화라면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에 방문해서 정말 좋았던 것은 한국 가정집에서 3일간 홈스테이를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만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지, 이분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게 인사치레가 아니라 마음으로 섬기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희가 방문한 곳이 다른 가정처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만족하고 사는 모습에서, 새삼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우쳐 주더군요. 지금도 그때를 잊을 수 없어요.”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마인드교육 강국인 한국 사람들의 작은 배려와 인사 한마디가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교정 교육에서도 재소자들이 이런 인사법과 타인에 대한 예의를 배운다면 훨씬 범죄율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모잠비크 차관과의 인연으로 김기성 마인드 강사(오른쪽 네 번째)와 IYF 최정환 지부장(왼쪽 네 번째)과 최수현 씨(가운데)가 아씨뽈 경찰, 교도관을 대상으로 하는 마인드 강연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잠비크 교도소에 마인드 강연이 열풍
법무부 차관으로서 그는 가장 시급한 현안 또한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모잠비크 국민에게 해를 입혀서 교도소에 들어간 재소자들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이런 시스템을 바꿔서, 재소자들이 형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재소자가 스스로 생산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재소자들이 생산에 쓸 장비들도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모잠비크 교도소에는 생산 시설이 열악한 상태이다. 간단한 농사일이나 공예품 만드는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전문성도 낮은 편이다. 그래서 법무부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소도 재소자 마인드 교육이다. 재소자들이 교도소에서 나오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육을 서두르고 있다. 재범을 막기 위해서는 재소자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바뀔 수 있는 교육과 이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인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마인드 강연의 취지다. 사람의 욕구와 자제력을 분석한 마음의 세계를 아는 것과 그것을 접목한 교육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그는 이런 시점에 한국에 직접 방문해서 ‘마음으로 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고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직감했다.

“차관이라는 직책이 사무적인 일만 하기 쉽기 때문에, 해외를 방문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저에게 그 기회가 왔고, 한국의 문화를 보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재소자들의 마음의 세계가 바뀌면 행동 역시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정의를 위해 재소자들에게 생산적인 일을 시키고,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고자 한다.

모잠비크에 도착한 오완수 씨와 딸 최수현 씨가 모잠비크 전통 의상을 입었다. 최수현 씨는 젊은이들 앞에서 어떻게 병에서 극복했는지 마인드 강연을 펼쳤다.

한국에서 만난 ‘편안한 인연’
아르린두 랑가 차관이 한국에서 만나 민박했던 집의 안주인은 오완수 씨이다. 그녀 또한 모잠비크 차관과의 만남을 잊지 못했다. 그녀는 척수염과 여러 암에 걸려 수년간 생사를 오갔지만 결국 극복해낸 최수현 씨와 함께 차관을 맞이했다.

“저희 집을 방문한 차관님께 ‘누추한 집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어요. 물론 진심을 담아서 한 인사였어요. 비록 차관님이지만 낯선 나라에 와서, 낯선 가정에서 갑작스럽게 잠을 자야 한다면 참 부담스러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관님이 집에서 지내는 것처럼 마음만은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저희 같은 서민이 이런 분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지요. 처음 만나 뵌 차관님이 상당히 겸손하셨어요. ‘우리를 초대해주어 굉장히 기쁩니다.’ 하고 환한 얼굴로 답해주셨어요. ‘저희 집이 좁아요.’ ‘아니요. 반갑게 맞아주어서 제 마음이 따뜻합니다.’ 이런 말이 서로 오갔는데 정말 즐거웠어요.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출출하실 것 같아서 급히 어묵국을 한 그릇 준비했는데, 그분이 ‘맛있다’며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화장실에서 수건을 써야 하는지도 잘 몰라서 젖은 채로 옷을 입고 나온 차관님을 보고 아들이 입는 반바지 하나를 건넸는데 아이처럼 좋아하셨어요. 그 광경도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어요. 딸 수현이가 어떻게 병을 이겨냈는지 그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차관님은 정말 진지하게 경청해주셨어요. 매운 음식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짬뽕을 먹었는데 맛있게 드시는 거예요. 사흘 후 차관님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셨어요.”

한국 가정집에서 민박을 하는 동안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사흘간 오완수 씨는 한국 가정에서는 가족이 어떻게 마음을 나누는지, 한국 교육은 어떠한지, 딸 수현이가 갑작스럽게 척수염과 암에 걸렸던 이야기, 암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생활했는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오완수 씨 부부와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며 살아가는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국에 대해 깊이 알아가며 어느덧 한국이 편안한 곳이 되었다.

마음의 행복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서울에 도착해서 민박집으로 이동한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다음 일정을 위해 바쁘게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그는 대도시와 떨어진 지역까지 꽤 높은 건물들이 연이어 즐비하게 들어선 것을 목격했다. 그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거주지가 있고, 건물들이 연결된 풍경을 보면서 현재 모잠비크의 거주지와 도시화 문제점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도시와 많이 떨어진 곳에도 20~30층의 빌딩들이 들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건물들보다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거주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 모잠비크에 사는 시민들의 집이 대부분 식민지 개척자였던 포르투갈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잠비크 정부가 전략적으로 도시가 발전되기를 신경 쓰고, 국민들이 아무 곳에나 건물을 짓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고 있어요. 정부가 도시개발에 더욱 힘을 써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모잠비크 정부의 요청으로 오완수 씨는 김기성 마인드 강사, 딸 수현 씨와 함께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방문했다. 딸 수현 씨는 모잠비크 아이들 앞에서 암에 걸린 지난 날 어떻게 병을 이겨냈는지 강연했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한국에서 만나 인연이 된 두 사람에 대해 아내 앞에서도 자랑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완수 씨는 아프리카에서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차관님을 위해 라면으로 즉석 짬뽕을 흉내내서 만들어 내자 차관 부부는 “따봉!” 하고 외치며 즐거워했다.

인연이란 실 한 오라기로 매듭을 엮는 것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막상 잘 매듭지어진 인연은 두고두고 마음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 사람은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행복한 법인데, 아르린두 랑가 차관이 한국에서 인연을 맺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으며 행복한 미소를 얻었다.

1986년 오스트리아에서 관광부 홍보정보부 부장으로 전임된 그는 국가관광기금을 조성했다. 1995년에서 2000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5년간 검사, 프로젝트 승인, 관광 통계에 관한 일을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은행에서 1년간 일할 수 있었다. 지난 2002년부터 2009년에는 대법원에서 대법원장 보좌관과 연구계획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당시 그는 법무부 구성 전략 계획에 참여해 관리가 잘 안 된 곳에는 관리자를 세워 정부 운영 정신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2015년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문화창조사업부 국장으로 일했다. 그가 관광국장이었을 때는 모잠비크 모든 호텔의 프로젝트에 관여하며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 또 거주지에 대한 논문도 많이 써서 발표했는데, 이는 여러 나라를 경험하며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관찰해온 덕분이었다. 2017년 법무부 차관이 된 그는 현재 교도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모잠비크의 까오라 바싸 Cahora Bassa 댐.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댐으로 수력발전소가 있다.

차관에 오르기까지
정부 각 부서에서는 실질적인 업무를 대부분 차관이 담당한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얼핏 보면 서른 중반처럼 앳되어 보이지만 실제 그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쉰일곱이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면 부드러운 그의 얼굴에 세상의 험난함을 이긴 여유가 있었다. 세월이 순간순간 인생에 절망을 던져줄 때 어떤 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인내의 열매로 ‘기회’를 얻기도 한다. 그는 지난 2015년에 차관을 뽑는 시험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그가 당시 최고 점수를 받아 1등을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일은 점수보다 실무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그가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현장 감각이 부족하고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이전 경력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문화창조사업부로 돌아가서 성실하게 일했다. 지난 2017년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면서 차관의 자리에 올랐다.

모잠비크 교도소 내에 재소자를 위한 마인드 교육이 확대 시행되었다.

법무부 아르린두 랑가 차관, 그는 누구인가?
아르린두 랑가 차관의 부모님은 가자 만자까지Gaza Manjacaze에서 태어났다. 그는 모잠비크 마푸토 마파랄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인 가자 만자까지는 아프리카 전통 가옥이 있는 작은 동네이다. 이곳에는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간다. 어디에서나 농촌 사람들의 인심이 도시 사람보다 푸근하고 넉넉한 것처럼 그 역시 겸손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서 성품이 온화했고 부모님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아이였다.

소년 아르린두 랑가는 아버지가 뽈라나 호텔에서 제과점 요리사로 일을 하고 퇴직할 때까지 속 한번 썩인 적이 없는 착실한 아들이었다. 그가 3학년이 되자 학교 선생님이 그에게 ‘방학 동안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 쓰고 모르는 단어는 200번 넘게 써보라’고 숙제를 내 준 적이 있었다. 방학 내내 그는 포르투갈어, 과학 교과서 등을 6번 베껴 쓰고 모르는 단어를 300번 넘게 썼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묵묵히 숙제를 해냈다. 방학이 지난 이후에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전 과목에서 모르는 단어가 없을 정도가 됐다. 소년 아르린두 랑가가 학교에서 톱이 되었고, 그의 학교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1978년 마푸토 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상업 전문대를 거쳐 1988년에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6년에는 영국 런던에 있는 대학에 가서 재정 경제학 석사 공부했다.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그는 온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했다. 차관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국정을 고민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평소 검소한 삶의 패턴대로 그는 가족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청소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일이라며, 이것은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에게 꾸준히 책 읽기를 권했다.

“요즘에 누가 끈기 있게 책을 읽으며 알아가려고 합니까? 대부분의 학생이 아무런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보고 알아갑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고도 어떤 사회를 알아갈 수 있고, 때로는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요즘 대다수의 청소년이 글을 정확하게 쓰고 책을 읽는 능력이 부족해졌다는 거예요. 예전 같았으면 가난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미국을 상상해 보았어요. 저도 청년 때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만화책으로 시작해서 연애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조금 더 커서는 외국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두꺼운 논문부터 시작해서 영국의 추리 소설도 읽었어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눈이 침침해져서인지 안타깝게도 책을 읽기가 많이 힘들어졌네요.”

그의 말처럼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나라와 건축물과 거리, 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거리에 담긴 역사라든지,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됨됨이 같은 이야기를 텔레비전을 통해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독서를 통해서는 미국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 등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통해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용기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나고 싶은 꿈을 갖기도 한다.

아르린두 랑가 차관이 바라는 사회
아르린두 랑가 차관은 계획이 순간순간 바뀌는 것과 누군가에 의해 충분히 틀어질 수 있는 일정에 대해, 시간 관리를 잘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무엇보다 인연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삶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그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꾸준히 돕기를 원한다. 최근에 그는 모잠비크 석사 출신들의 인재들이 화이트칼라 영역에서 갇혀 지내며 능력을 쌓지만, 사회에서는 협력하며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그는 모잠비크의 교육 과정이 다른 분야와 연결되어 협력하고 좀 더 새로운 일들이 창조되기를 바란다.

“모잠비크의 교육 과정이 다른 분야와 연결되어 협력하고 좀 더 새로운 일들이 창조되기를 바랍니다.”

아르린두 알베르토 랑가 모잠비크 법무부 차관
1962년생으로 모잠비크 마푸토 마파랄라에서 태어난 그는 2017년 법무부 차관이 되었다. 한국에서 따뜻한 배려와 인사법, 상대에 대한 관심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모잠비크에서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교도소 재소자들의 마인드 교육과 전문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김민영 기자  press1002@it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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