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2회 투머로우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 '마음쓰기' 수상작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투머로우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 마음쓰기가 열렸습니다. 더 크고, 멋지고, 화려한 것을 좇는 삶이 일상이 된 시대,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가치나 중요성은 외면받기 쉬운데요. 마음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보고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응모자들의 한결같은 소감이었습니다. 응모하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장원 이은혜, 차상 백이슬, 차하 강은국 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올해 마음쓰기 콘테스트에도 100명 넘는 독자들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매일매일 한 가지씩, 한 달이면 31가지 맛을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지요? 그보다 훨씬 다채롭고 오묘한 마음의 맛을, 글을 통해 음미하던 편집부 기자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게 하는 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저희 기자들은 어느 글에 어떤 상을 줄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사과와 배 중 어느 쪽이 더 맛있냐?’는 질문에 개인의 취향을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어떤 정답을 내놓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아버지가 창피해 피해 다닌 이야기, 자신이 뛰어난 학생인 줄 알고 우쭐대다 과제물에서 5점을 받고 겸비한 마음을 갖게 된 이야기, 장애인 친구의 손발 노릇을 하며 그 친구와의 우정이 깊어진 이야기.

결국 고민 끝에 수상작을 결정하면서도 저희는 몇 번이나 입맛을 다셨습니다. 독자들의 글 속에 담긴 ‘마음의 맛’이 남긴 여운이 워낙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맛을 여러분께도 전해 드리고 싶어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마음을 맛보게 될까요? 벌써부터 2019 마음쓰기 콘테스트가 기다려집니다.

내 친구의 친구는 오리 세 마리
장원 이은혜

우리 집 근처에는 유엔기념공원이 있다. 이국적인 조경과 한적한 산책로가 멋스러워서 햇볕이 잘 드는 날이면 한 바퀴 산책을 하기 위해 내가 종종 찾는 곳이다. 묘지마저도 주인이 군인이었음을 자랑스러워하듯 한 치의 오차 없이 각이 잡힌 채 정렬되어 있다. 이 공원 산책코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연못이다. 연못에는 거위 가족과 오리 가족이 살고 있는데, 사람이 다니는 곳과 동물 가족이 다니는 곳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같은 잔디밭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점이 이곳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이, 정확히 말하면 이곳의 오리들이 특별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 오리들을 보노라면 한 친구가 떠오른다.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친구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우리 여학생들은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냈는데, 유독 한 친구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어려워했다. 공부는 남녀 통틀어 1등이었는데, 몸이 약하고 말과 생각과 행동도 조금 특이했다. 그 친구가 아플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먼저 다가가 걱정을 해주기도 했지만, 콧대 높은 말투에 한번씩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그래, 얘는 나랑 좀 안 맞아. 가까워지기 힘들겠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를 들어 새벽 1시에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가 화장실에서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행동들 말이다.

이런 생각을 확실하게 굳히게 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오리알 세 개가 담긴 부화기를 침대 구석에 두고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로 그 친구는 우리 학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특이한 학생 톱 3’ 안에 들게 되었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학교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곤란하다’고 상담하셨지만 오리알을 부화시키려는 그 친구의 결의를 꺾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부화예정일, 친구는 하루 종일 오리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우리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과 선생님들까지 모두의 관심은 ‘정말 오리알이 부화할 것인가’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알 하나가 움직이며 부화할 조짐을 보였다. 그 소식을 듣고 전교생과 선생님들 몇 명이 몰려들었다. 나도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그 장면을 직접 보기 위해 뛰어갔다. 친구는 자기가 어미새라도 된 양 불도 끄고 부화하려는 알을 소중히 감싸안고 있었다. 드디어 알 하나에 조금씩 금이 가면서 껍질이 깨지기 시작했고, 부리가 보이고, 눈이 보였다. 동시에 나머지 두 알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세 알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싼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탄성과 소감들을 쏟아냈다. 그때 그 친구가 소리쳤다. “다 저리 가! 가라고! 나만 볼 거야, 나만 봐야 돼!” 절규하는 친구를 보며 우리는 그 친구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소리를 친 이유를 알게 됐지만….

그렇게 태어난 ‘미운 오리새끼’들은 그때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다. 물론 우리의 호기심이 끝나기 전까지는 귀여운 오리새끼들이었다. 오리들에게는 태어난 순서대로 홍삼, 인삼, 산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매일매일 폭풍 성장한 세 삼蔘들은 어느 순간부터 악취와 소음의 근원지가 되었고, 날개가 커지면서 박스 벽을 뛰어넘어 우리 방이나 교실로 뛰어들어오기도 했다. 결국 선생님들의 간곡한 부탁과 상담을 통해 친구는 홍삼, 인삼, 산삼이를 가까운 유엔기념공원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세 삼들은 우리 학교를 떠났다.

그 후 나는 선생님을 통해 그 친구가 왜 오리를 키우게 되었는지 들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오리는 태어날 때 처음 눈이 마주친 존재(보통은 엄마오리)를 엄마로 인지해서 죽을 때까지 따른다는 것을 어디서 듣고, 자신을 절대 떠나지 않을 친구를 만들기 위해 오리알을 부화시켜 가장 먼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려한 것이었다. 그 친구는 외로웠고, 친구가 필요했다.

그 친구가 외로운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인지, 내가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인지는 지금도 확실히 모르겠다.

현재 나는 모교가 된 그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제자들이자 후배들인 학생들을 매일 만나면서, 나는 학생들의 눈에 보이는 말과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보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서투르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애쓰고, 학생들에게 마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세 삼이의 엄마인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그 친구가 온몸으로 처절히 외쳤던 ‘외로워…’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 친구를 생각하면 깊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지금 유엔기념공원 연못에 살고 있는 오리들이 혹시 홍삼이와 인삼이, 또는 산삼이의 후손들은 아닐까? 연못의 오리들을 볼 때마다 지금도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혼자 미소 짓는다.

수상소감
한때 저는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만 반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말과 행동을 만드는 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마음인데 말입니다. 그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익숙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의 존재와 가치를 알기에 그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의 주체를 자주 옮겨봅니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달리 보이고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저는 가장 먼저 글의 주인공인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귀여운 제자이자 후배들에게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너희들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고, 그러니까 누구에게든지 쉽게 마음 닫지 말라고 말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신 <투머로우>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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