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은의 영화 속 인문학③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혼족’, ‘혼밥’, ‘혼술’과 같이 혼자 무엇을 한다는 의미의 신조어가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개인은 철저히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립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이왕 함께 살아야 한다면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환경,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살면서 갈등, 자격지심, 열등감 따위는 잊고 살고 싶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맞지 않으면 맞춰 가면 되니까.

여기 살아온 환경도, 사회적 지위도, 성격도, 인종도 전혀 다른, 비슷한 것이 없어도 너무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상위 1% 백만장자인 필립과 돈 한 푼 없는 백수 드리스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의 두 주인공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토리는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포스터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포스터

프랑스의 상위 1% 최상류층에 속하는 백만장자 필립은 평소 즐기던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전신불구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루 24시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필립은 도우미를 뽑기 위한 공고를 내고, 그 자리에 건강한 신체가 전부인 하위 1%의 무일푼 백수 드리스가 지원한다.

드리스와 필립의 첫 만남.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모습에 필립은 호기심을 느낀다. 영화 스틸컷
드리스와 필립의 첫 만남.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모습에 필립은 호기심을 느낀다. 영화 스틸컷

거침없고 자유로운 성격의 드리스에게 필립은 왠지 모를 호기심을 느끼고, 2주 동안 자신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간호하며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며 내기를 제안한다. 참을성 없는 드리스는 오기가 발동해 엉겁결에 내기를 수락한다.

초반부터 티격태격 하던 두 사람. 드리스는 필립의 휠체어가 너무 느리다며 빨리 달리도록 개조하기도 하고, 고상한 클래식 밖에 모르던 필립에게 신나는 팝의 매력에 흠뻑 빠지도록 한다.

필립의 휠체어를 개조해 신나게 달리는 드리스와 즐거워하는 필립. 영화 스틸컷
필립의 휠체어를 개조해 신나게 달리는 드리스와 즐거워하는 필립. 영화 스틸컷

또 엘레노어라는 여인과 6개월 간 편지만을 주고 받아온 필립에게 그녀와 직접 만날 것을 적극 권유하기도 한다. 필립은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 자신을 대하는 드리스를 향해 마음을 열고, 둘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대방의 삶의 방식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필립은 드리스의 전과기록과 그가 빈민층 출신이라는 점을 폭로하며 그와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경고하는 친구에게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대하는 드리스 덕분에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재회한 필립과 드리스. 영화 스틸컷
재회한 필립과 드리스. 영화 스틸컷

드리스가 집안 문제로 일을 그만두자 필립은 또다시 고립되어 가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드리스는 단걸음에 필립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드리스는 필립이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가슴 깊이 사랑하는 여인 엘레노어를 초대해 필립과 만나게 하고 그곳을 떠난다.

부와 사회적 지위는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외적인 조건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갈 때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필립을 '보통사람'으로 대했던 드리스 덕분에 필립은 진짜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영화 스틸컷
부와 사회적 지위는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외적인 조건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갈 때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필립을 '보통사람'으로 대했던 드리스 덕분에 필립은 진짜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영화 스틸컷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막대한 부와 권력 앞에 적어도 얕보이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또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나 약자들을 자신보다 불쌍한 존재로 여기며 동정한다. 하지만 드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백만장자인 필립 앞에서 그는 전혀 가식적으로 굴거나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고 장애인인 필립을 형식적으로 연민하거나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성격, 말투, 행동 그대로의 모습으로 필립을 대하는데 드리스의 이 솔직한 모습은 신기하게도 굳게 닫혀있던 필립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 간다.

드리스 이전에 필립이 채용했던 돌보미들은 드리스보다 훨씬 화려한 스펙과 충분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었지만 모두가 부와 권력이라는 힘에 눌려 그를 형식적으로 대했을 뿐, 마음으로 대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극중에서 필립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드리스는 산송장 같은 나를 장애인이 아닌 보통사람으로 대했어.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

영화 스틸컷
영화 스틸컷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대하는 드리스와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필립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저 남들과 다름없는 ‘보통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사람은 그런 모습을 가진 존재로 변해간다.

몸도 마음도 불구였던 필립을 '보통사람'으로 대했던 드리스처럼, 상대방에게 문제나 결점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대할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모습대로 상대방이 바뀌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따뜻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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