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학살 추모 기간, 올해는 4월 7일부터 13일까지

4월, 많은 나라가 봄 축제니 부활절이니 하며 떠들썩할 동안 아프리카 르완다는 1년 중 어느 달보다 침울한 한 달을 보낸다. 4월 7일부터 시작하는 ‘인종학살 추모 기간’이 13일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르완다 인종학살이 자행된 지 24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르완다에서 일어난 인종학살은 약 8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아프리카의 어떤 내전보다도 잔혹한 역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 사건으로 대부분의 르완다 국민이 부모, 형제, 자식, 친척 등 가족 중 적어도 한 명을 잃었다. 남은 자들에게 더없는 슬픔과 두려움,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이 날을 르완다 국민들은 매년 엄숙히 기념하고 있다.

추모기간 중 마을주민들이 인종학살을 추모하기 위한 모임을 가지고 있다.ⓒ권시온 글로벌리포터
추모기간 중 마을주민들이 인종학살을 추모하기 위한 모임을 가지고 있다.ⓒ권시온 글로벌리포터

인종학살 추모기간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춤을 추거나 게임, 파티 등 윤락행위가 금지된다. 또 8일 오후에는 마을 별로 인종학살을 추모하는 모임에 참석해야 하고, 큰소리를 내서도 안 되며 스포츠, 코미디 프로그램의 방영이 중지된다. 차를 타고 다닐 때 크락션을 울리는 것도 금물이다.

9년째 르완다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르완다에서 처음 맞는 인종학살 추모일에 소름 돋을 정도로 고요했던 거리를 기억한다. 끔찍한 과거를 기억하며 길가에서 실신한 아주머니,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울부짖던 과부들... 9년 전에 비해 지금은 르완다 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밝아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에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당시 6살이었던 한 여성은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 부모를 죽인 사람을 찾아서 죽이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30, 미켈라)

“아무 생각 없이, 하루종일 TV를 보며 그때 기억을 잊으려고 해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보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0, 줄리아나)

르완다 인종학살 추모일의 슬로건 'Kwibuka'는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르완다 국민들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장 잊고 싶은 그날의 사건을 기억한다.ⓒyoutube_theoisback
르완다 인종학살 추모일의 슬로건 'Kwibuka'는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르완다 국민들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장 잊고 싶은 그날의 사건을 기억한다.ⓒyoutube_theoisback

르완다는 외세가 유입하기 전부터 목축과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투치’족과 르완다 토착민이자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후투’족이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벨기에가 처음 르완다에 들어오면서 이들의 사회·경제적 간극이 점점 커졌으며, 그 결과 두 종족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투치족 일부는 반군을 형성해 우간다에 주둔해있었고 후투족 강경파는 투치를 몰아내기 위한 폭동을 종종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대부분의 후투와 투치는 함께 살아가고 있었고 그들은 이웃이고 가족이었다.

1994년 4월 6일, 당시 후투족이었던 ‘하바아리마나’ 대통령은 두 종족의 평화를 위해 부룬디의 대통령과 함께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평화협정서’를 쓰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날 늦은 밤, 비행기의 폭발소리와 함께 르완다의 평화는 무너져 내렸다.

대통령의 비행기가 격추당하고, 마치 기다렸다는듯 라디오와 TV 방송은 사태를 투치의 반란으로 몰아갔다. 다음날인 4월 7일 대통령 경호원들을 중심으로 한 후투 강경파가 투치족인 당시 르완다 총리 3명과 그 가족, 벨기에 연합군 등 11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오랫동안 언론을 장악하면서 전쟁을 대비했던 후투 강경파는 라디오를 방송을 통해 투치족의 학살을 지시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집에서 잔디나 나무를 자를 때 쓰는 ‘탕가’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 신분증에 ‘투치’라고 적혀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4월 9일부터 11일까지 단 3일간 약 2만 명이 살해되었다. 100일 동안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길가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시체들로 가득했다. 학살을 피하기 위해 많은 투치족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투치족의 보복을 두려워한 일부 후투족 역시 르완다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주변국인 콩고와 우간다에서도 여전히 차별과 학대에 시달려야했다.

백일이 지나고, 르완다와 우간다 국경에서 머무르던 투치족 반군이 르완다로 들어오면서 후투족의 학살은 드디어 끝이 났다. 그 후로 르완다는 정부를 다시 수립하고 후투족과 투치족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지금까지도 신분증에는 종족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범 국가적인 노력으로 당시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지만, 매년 4월 7일이 되면 르완다 국민들은 어김없이 그 날을 기억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아마호로 스타디움에 모인다. 모두들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르완다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추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 그때의 아픔을 이겨나가고 있다.

‘Kwibuka : 기억하라’ 인종학살추모 슬로건이다. 오직 역사를 기억하는 자만이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에게 말한다. ‘잊고 싶은 이 날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르완다
르완다

*르완다 (rwanda)
정식명칭은 르완다공화국(Republic of Rwanda)으로, 탄자니아·콩고민주공화국·우간다·부룬디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이다. 면적 2만 6338㎢, 인구 1266만 1733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키갈리(Kigali)이다.

키갈리(르완다)=권시온 글로벌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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