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전 세계가 몸살을 하고 있는 가운데, 대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아프리카는 이상기후 피해가 크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그 사실을 절실히 보여준다.

킬리만자로 산에 흐르는 눈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산 중 하나인 킬리만자로. 사방이 탁 트인 사바나 초원 한가운데 갑자기 불뚝 솟은 해발 5,895미터의 아프리카 최고봉. 구름도 오르기를 포기한 높은 정상에는 그 유명한 만년설이 자리 잡고 있다. 장구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눈은 50미터가 넘는 거대한 빙벽이 되어 아프리카의 지붕을 장식했다.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뜨거운 적도 아래에서 빛나는 하얀 봉우리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는 아랍과 서양의 옛 기록에 널리 소개되었고, 조선에서 편찬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도 발견된다. 근래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인용되고 재창조되며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하얀 킬리만자로 산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거의 잃고 말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계속되고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며 증가하며 온난화가 심각해졌고, 지구는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온난화 현상은 양극지방의 얼음과 세계 여러 고봉의 만년설을 녹이고 있다. 특히 킬리만자로는 적도에 위치해 온난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부통령을 지냈던 앨 고어는 2006년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 만년설을 잃어버린 킬리만자로를 온난화의 상징으로 소개했다. 사람들은 황량하게 변한 킬리만자로의 모습에 경악했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오하이오 주립대의 논문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07년까지 킬리만자로 만년설의 85%가 이미 녹아내렸다고 한다. 남아있는 부분 역시 십 수 년 내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S.W Kim
ⓒS.W Kim

2016년, 필자는 케냐와 탄자니아의 접경지 ‘올로이토키톡’에서 킬리만자로 산을 마주한 적이 있다. 먼동이 트는 이른 시간이 아니면 산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지역민의 말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떠오르는 아침 해가 보내는 부드러운 빛이 산 사면의 은회색 화산토양에 반사됐다. 킬리만자로는 신비한 빛에 휘감겨 거대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산은 한 시간 정도 모습을 드러낸 후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감췄다. 평상시엔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킬리만자로의 완전한 자태를 보는 건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산은 예전의 킬리만자로가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과 만나는 동안 나는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일으킨 재앙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상처 받은 산을. 고대부터 아름다움을 칭송받아온 남국의 하얀산은 우리의 기억과 다른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만년설은 대부분 녹아내렸고 정상 끄트머리에 작은 눈 무더기 일부만 간신히 남아있었다. 학자들은 지금 같은 온난화 속도라면 얼마 안 남은 만년설 역시 모조리 녹아버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눈이 녹으며 생긴 물을 눈물雪水이라고 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은 물은 마치 산이 흘린 눈물淚처럼 느껴진다. 지구온난화에 고통받으며 슬퍼하는 아프리카의 눈물 말이다.

사하라 사막에 내린 눈, 기침하는 지구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현상은 킬리만자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지난 1월 7일,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 북 아프리카 알제리 ‘아인 세프라’의 사막지역에 하루 사이 40센티미터에 달하는 눈이 쏟아진 것이다. 사하라 사막의 관문인 이곳은 지난 2016년에도 눈이 내린 적이 있다. 덥고 건조해야 할 사막에 쏟아진 폭설 소식은 세계에 알려졌고 예사롭지 않은 자연의 징후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네바다 주에 위치한 사막연구소DRI·Desert Research Institute의 대기 과학자 마이크 카플란은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리게 된 원인으로 지구 북반구 전체에 걸친 대기 패턴의 변화를 지목했다. 겨울이 되면 북반구에는 북쪽에서 온 차가운 공기와 남쪽에서 온 따뜻한 공기가 대치하게 된다. 이때 북극의 찬 공기는 극지방에만 머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틀이 깨지면 차가운 북극 공기가 중위도 지방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에서 내려온 한파는 북반구에 극심한 추위를 몰고 오고, 그 공기가 아프리카까지 밀려나며 사막에 눈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 내렸던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였던 킬리만자로(앞쪽 사진)가 눈이 녹으면서 민낯을 드러냈다. 산꼭대기에 극히 일부분만덮여 있는 만년설도 십 수 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겨울에 내렸던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였던 킬리만자로(앞쪽 사진)가 눈이 녹으면서 민낯을 드러냈다. 산꼭대기에 극히 일부분만덮여 있는 만년설도 십 수 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환경연구소Atmospheric and Environmental Research 유다 코언 연구진의 발표는 이러한 주장에 근거를 제시했다. 북반구의 이례적인 한파가 늘어난 것과 1990년대 이후 북극 기온의 가파른 상승이 일치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기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북극 고위도 지역은 지구 평균보다 두 배나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여름에 북극 일부지역은 평년보다 20도나 더 기온이 올랐다고 한다. 빠른 온도 상승은 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균형을 깨트리고, 마침내 영하 50~60도나 되는 북극 한파가 남쪽으로 밀려 내려와 매서운 추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 내린 눈은 물론 북미에 불어 닥친 살인 추위, 그리고 어느 때보다 매서웠던 우리나라의 지난해 겨울 역시 같은 원리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감염균의 침입을 받거나 급격한 체온 변화, 과로나 스트레스 등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면 자연적으로 면역체계를 가동시킨다. 열을 내거나 기침을 하고, 코를 훌쩍인다. 사하라 사막에 내린 눈은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기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온난화로 괴로워하는 지구의 기침 바람이 북극과 유럽을 지나 아프리카까지 도달한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는 건 그저 신기한 이야기로 그쳐야 할 게 아니라 콜록거리는 지구가 보내는 아픔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를 힘들게 하는 지구온난화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날씨가 따뜻해지는 현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대자연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추워야 할 때 춥지 않고 더워야 할 때 덥지 않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할 계절에 폭우가 내리고 비가 필요한 계절에는 가뭄이 오기도 한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지면서 농부들은 언제 파종해야 할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겨우 싹이 오르더라도 가뭄이나 한파가 몰아쳐 수확은 형편없다. 야생 동식물 역시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죽게 되고 생태계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제2, 제3의 부작용을 만들어내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킨다. 오랫동안 조화를 이뤄왔던 자연의 균형이 기후변화로 뿌리 채 흔들리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유독 아프리카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관개시설이나 농업의 기계화가 이미 잘되어 있는 선진국은 기후변화가 오더라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천수답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아프리카 빈농들은 온난화라는 거대한 재앙을 넘어설 방법이 없다. 케냐 코피아KOPIA 센터 김충회 소장은 “케냐의 관개농지 면적이 전체의 0.03%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기에 맞춰서 파종시기를 결정하는 게 아주 중요한데, 기후변화로 그게 어려워지고 있다”며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에는 보통 일 년에 두 차례의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찾아온다. 그런데 기후 변화는 그러한 사이클을 없애 버렸다. 몇 달씩 비가 오지 않기도 하고 건기에 비가 내리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급기야 지난해엔 주식인 옥수수 가격이 폭등했고 정부는 외국에서 옥수수를 급하게 수입해 성난 민심을 달래야했다. 뿐만 아니라 케냐의 주요 수출품인 커피 수확량도 감소했고, 목축업자들은 소와 염소에게 먹일 풀을 찾지 못해 가축 수백만 마리가 폐사했다. 수백만의 아프리카 사람들 역시 황량해진 농토에서 더 이상 식량을 구하지 못해 아사 위기에 놓여있다. 주기적으로 내리던 비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서 수자원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현재 케냐 국토의 75% 이상이 물 부족 지역으로 분류된다. 갈수록 물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아프리카와 지구를 위한 관심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 가스의 주요 배출국은 대부분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산업 국가들이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온실가스 배출국 중 하나다.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한 보응을 엉뚱하게도 아프리카인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난화로 인해 아프리카인들이 겪는 아픔을 그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전 지구가 함께 나서서 해결하고 넘어서야 할 과제다.

지구가 고통 받으면 그 어깨에 올라서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킬리만자로의 눈물이 인간의 눈물이 되고, 지구의 기침에 사람도 함께 몸살을 앓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후대에 넘겨주기 위해서, 더 심각하게는 인류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프리카는 지금 울고 있다. 산과 사막과 초원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그 비명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킬리만자로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될지 모른다. 자연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경각심을 갖고 지구를 위해 관심을 갖고 나아간다면 분명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송태진
YTN 아프리카 해외 리포터 및 케냐 현지 TV 방송국 GBS의 제작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아프리카 부룬디로에서 해외봉사한 이후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꾸고 케냐로 갔다. 아프리카의 각양각색 모습을 취재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머나먼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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