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라면 옷과 음식, 집衣食住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이 점차 풍족해지면서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는가?’는 단순히 생존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옷은 어떨까요? ‘유행’ 하면 패션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옷은 생활필수품을 넘어 때와 장소, 상황Time, Place, Occasion·TPO에 맞게 갖춰야하는 문화상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음식은요? 과거처럼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닌, 음식점의 독특한 분위기 등과 맞물려 삶에 보다 큰 즐거움을 주는 역할까지 담당합니다. 집 역시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쉼터shelter의 개념을 넘어 ‘저 사람은 어떤 집에 사는가?’를 통해 그 사람의 취향이나 소득, 계층 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Less is more’ 철학이 담긴 건축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Less is more’ 철학이 담긴 건축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전 세계 건축물의 99퍼센트는 왜 콘크리트일까?
지금과 같은 생활양식이 정립되기까지 인류는 많은 변화과정을 거쳤습니다. 특히 19세기 말은 시대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전통적인 사고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등장한 새로운 가치가 만나 갈등을 겪으면서 건축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것과 같은 주택 형태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바로 20세기 이후입니다. 20세기 이후 세워진 전 세계 건축물의 99퍼센트는 철근 콘크리트 또는 철골 콘크리트 구조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택과 상가가 철근 콘트리트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이처럼 20세기 들어 전 세계 도시건축물의 표준이 된 철근 콘크리트 양식을 완성한 건축가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와 독일의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입니다. 이들 외에도 여러 독창적인 건축가들이 규격화된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를 주재료로 쓰는 건축양식을 만들었는데, 이를 ‘국제주의 양식’ 또는 ‘모더니즘 건축’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등장을 계기로 조화와 형식 위주의 전통적인 유럽 건축은 점점 쇠퇴하고, 기능 위주의 건축이 주류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모더니즘 건축은 세계 어딜 가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은 쭉쭉 뻗은 직선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전까지 건물을 뒤덮었던 현란한 장식물은 사라지고, 날렵하고 매끄러운 실용적인 건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오늘날 전 세계 도시건축물의 표준이 된 철근 콘크리트 양식을 완성한 인물이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오늘날 전 세계 도시건축물의 표준이 된 철근 콘크리트 양식을 완성한 인물이다.

단순하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적 명소가 된 크라운홀
국제주의 양식이 20세기 들어 건축계에 급속도로 확산된 데에는 다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첫째, 공업기술의 발달로 철, 유리, 콘크리트 등의 재료가 대량생산되면서 기존 건축자재의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건축기술이 등장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건물들이 지어졌습니다. 둘째,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집안에서 주거와 생산 등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사무실, 상업용, 공공기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용도에 걸맞은 건물들이 생겨났는데, 그 건물을 짓는데 적합한 양식이 국제주의였습니다. 셋째, 그동안 건축가들은 실제 건물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여러 시대의 건축양식들이 섞인 건물들이 계속 지어지는 데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실용적인 국제주의 양식을 적극 도입했던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국제주의 양식을 확립한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자신의 건축철학을 ‘Less is more적을수록 풍요롭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기능=디자인’이라는, 모더니즘 건축의 철학과 특징을 한마디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간 미스는 이듬해 아머공과대(현 일리노이공과대) 건축대학 학장을 맡습니다. 학장을 맡는 대신 캠퍼스에 새로 지어질 건물들의 설계를 맡는다는 조건이 붙었는데요. 이때 그가 설계한 건물이 현재 일리노이공과대의 크라운홀S. R. Crown Hall입니다. 가로 약 67미터, 세로 약 36미터, 높이 약 5.5미터의 이 홀을 지탱하는 기둥의 개수는 단 여덟 개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내부 공간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습니다. 강철·유리·벽돌 등 재료의 질감과 특성을 잘 살린 배치, 정확한 비례와 극도의 단순미가 돋보이는 크라운홀은 건축학도라면 꼭 한번쯤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히지요.

미국 일리노이 공대의 크라운홀. 단 여덟 개의 기둥이 730여 평이나 되는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 공대의 크라운홀. 단 여덟 개의 기둥이 730여 평이나 되는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애플도 한 수 배운 ‘단순함의 철학’
미스의 건축물을 몇 점 더 살펴봅시다. 스페인에 있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1929년 바르셀로나 엑스포 독일관으로 쓰려고 설계된 건축물입니다. 이 역시 직사각형의 단순한 외부형태에 벽을 최소화함으로써 내부공간을 최대한 살리고, 대리석·석회석·적마노

赤瑪瑙 등 값비싼 건축자재를 잘 활용한 수작秀作입니다. 엑스포가 끝나고 1930년 철거되었지만, 과거의 사진기록을 토대로 1986년 복원되었습니다. 흑백사진만이 남은 관계로 현재 파빌리온의 건물색은 처음 지어진 파빌리온의 색과 다르다고 합니다.

의사였던 에딧 판스워스의 의뢰를 받아 1951년 완성한 ‘판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 역시 미스의 작품입니다. 테라스와 바닥, 지붕이 평행선을 이루며, 집 전체를 여덟 개의 H빔이 떠받치는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집이 마치 잔디 위에 살짝 떠 있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재미있는 건축물입니다.

미스는 한때 뉴욕의 명물이었던 시그램 빌딩도 설계했습니다. 높이 159.6미터, 38층 규모의 이 빌딩은 요즘 시각에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유리와 철로 지어진, 전형적인 고층빌딩의 외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스는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광장을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27미터나 물러난 곳에 건물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이곳에 조성된 광장은 ‘빽빽한 고층건물로 가득한 도심 속의 오아시스’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건축가 김중업 씨는 이 같은 미스의 건축철학에 영감을 얻어 청계천 변에 삼일빌딩(110미터)을 설계하기에 이릅니다. 1971년 완공된 이 건물은 1978년 롯데호텔 본관이 세워질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이처럼 불필요한 구시대적 디자인을 들어내고 단순함을 추구한 ‘Less is more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철학은 건축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적극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 철학을 가장 잘 수용하고 실천한 기업으로는 애플이 있습니다. 애플은 불필요한 기능이나 디자인요소는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사용자 편의를 극대화한 제품들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풍요로운 삶은 정리된 마음에서 비롯된다
여러분은 혹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미니멀 라이프란 우리 주변의 물건, 공간, 인간관계 등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자는 운동입니다. 마치 건물에서 불필요한 장식이나 겉치레를 제거하고, 입주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본질적기능에 집중했던 ‘모더니즘’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사놓았지만 쓸 일이 별로 없는 물건들, 누가 누군지 모를 만큼 빽빽한 스마트폰 메신저 친구들…. 이렇게 삶이 복잡하다 보니 우리 마음 역시 쉴 여유를 찾지 못하고 점점 더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생활환경을 복잡하지 않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마음속 생각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온갖 장식물과 군더더기로 건축물을 어지럽게 꾸몄던 19세기 말의 건축가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을 버리거나 정리하지 않은 채 얼기설기 엮어놓고 삽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에는 한 시간에 약 2천 가지가 넘는 생각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 그야말로 5만 가지 잡생각이 우리의 마음속을 드나드는 셈입니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생각들입니다. 그런 생각들을 방치한 채 살다보면 우리 마음은 혼돈되고 분산되어 힘을 잃게 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마음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하는 삶,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Less is more’라는 말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은 단순하고 정리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김연아
실내디자인과 건축계획을 전공한 공학박사.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 디자인실에서 실무를 담당했다. 현재 대안학교 링컨하우스대구스쿨 교장으로 있으면서, 경북대학교 건축공학부 외래교수, 대구예술대학교 겸임교수, 경상북도 건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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