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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라서 부럽다고요? 전 여러분의 젊음이 부러워요”카자흐스탄 테크노돔 CEO, 에두아르드 김
홍순석 특파원 | 승인 2018.04.09 22:43

입사한 지 4년 만에 CEO가 되고, 7년 만에 독립해 지금은 카자흐스탄 가전업계를 평정한 경영인이 있다. 고려인 3세 에두아르드 김이다. 그의 성공스토리는 운도 기적도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 마음의 발길을 옮기는 데서 희열을 느낀, 한 리더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숫자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손쉽고 객관적인 척도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보면 ‘테크노돔Technodom’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기업 중 하나일 것이다. 2002년 창립한 테크노돔은 현재 카자흐스탄 전자제품 유통업계 점유율 37%를 기록하며 몇 년째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매장 수는 이웃나라 키르기즈스탄의 두 곳을 포함해 총 예순네 곳, 직원 수는 6천 명에 이른다. 테크노돔의 창업주이자 CEO(회장)인 에두아르드 김은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17위, ‘카자흐스탄 50대 부호’ 29위에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테크노돔은 위기를 거뜬히 넘기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이쯤 되면 그 리더십과 성공비결이 궁금해진다.

회장님이 사업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 지질학연구소에 기술자로 취직했습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좋은 직장이었고, 처음에는 저도 자부심을 갖고 근무했습니다. 기술자에서 진급하면 하급직원, 하급직원에서 진급하면 연구원, 상급직원이 될 수 있었어요. 저희 사무실에는 책상이 네 개 있었는데, 15년 동안 착실히 일하면 창문옆에 있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15년 동안 일한 결과가 고작 자리가 바뀌는 것이라 생각하니 몹시 서글펐습니다.

그런데 80년대 말, 소련의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카자흐스탄에도 엄청난 변화가 들이닥쳤습니다. 경제상황과 질서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죠. 덕분에 국영기업에서 퇴사해 개인사업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로 가전제품 유통업에 뛰어들었습니까?
아니요. 집을 팔아서 마련한 2만 달러로 터키산 초콜릿을 수입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나름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는데, 물가가 하도 많이 오르는 바람에 손해만 보고 손을 털었습니다. 그러다 1995년부터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가전제품 판매점인 ‘술팍Sulpak’에서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술팍에서 근무하며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에두아르드 김은 불과 4년 만에 최고경영자CEO가 되었다. 단순히 경영만 맡는 것이 아니라 지분의 51%를 소유한, 어엿한 사주이기도 했다. 술팍은 해가 지날수록 성장을 계속했지만, 당시 술팍이 보유한 매장은 단 두 곳이었다. 그는 매장을 늘려 회사를 더 키우고 싶었지만, 다른 주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그는 독립을 결심하고 회사를 나와 2002년 9월 테크노돔을 설립했다.

안정적인 환경을 박차고 나와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제가 가진 돈에 은행에서 빌린 돈까지 3만 달러를 투자해 알마티 번화가에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온통 부족한 것투성이였어요. 자금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훌륭한 매니저와 직원들도 부족하고. 은행에서 돈을 더 빌리고 싶었지만 담보도 없었고, 은행에서도 제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저는 어느 정도 사업에 성공하리라 확신했어요. 그전까지 카자흐스탄에는 저희 같은 전자제품 매장이 없었거든요. 물론 저도 무작정 사업을 벌인 건 아니고, 러시아의 유명한 전자제품 유통업체들을 벤치마킹했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전자제품 매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한 가지 원칙을 깨달았어요. ‘제품 진열대가 텅 비는 순간 망한다’는 겁니다. 진열대가 비어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의 재고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물건을 팔았는데 대금을 받지 못했거나, 비용이 수익보다 많거나…. 그래서 초기에는 물건을 안정적으로 대주는 한국 업체들 제품을 집중적으로 밀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웬만한 전자업체들의 제품을 모두 취급하고 있지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전자업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또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도 터졌고요. 이어진 변화와 위기에도 테크노돔은 끊임없이 성장한 점이 놀랍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어려움이 닥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회사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테크노돔은 최신기술이 집약된 제품을 팔기 때문에 위기에서 살아남을 기회가 더 많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고객들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저희 제품을 사지 않았고,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매달 많은 임대료와 직원 임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익을 못 내는 매장들은 바로바로 문을 닫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또 은행과 투자자들에게는 제가 회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대출금을 갚지 않고 도피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집과 회사의 모든 자산을 은행에 담보로 맡겨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이러다 우리 집 넘어가는 거 아니예요?”라고 물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테크노돔에는 6천 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저에게 가족이 있듯, 그 6천 명에게도 각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요. 그들을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대개 기업인들은 자기 회사를 크게 키우기 위해 뭔가 큰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저는 대단한 일을 하기보다 ‘직원들과 가족의 미래가 나한테 달려 있다’는 데 집중했습니다. 위기를 넘기기란 굉장히 고통스런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싸워 이겨야 했습니다. 덕분에 위기상황에서도 저희는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부富를 추구하기보다 직원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먼저였군요.
회사가 잘되느냐 안되느냐에 직원과 직원 가족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까, 일주일이나 한 달 뒤를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1년이나 몇 년 뒤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삼성전자 같은 큰 회사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회사들은 혁신을 꾀하며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늘 더 큰 계획을 세웁니다. 파트너인 그들이 더 큰 계획을 세우면, 우리도 그에 걸맞게 커져야 합니다. 결국 직원들과 우리, 파트너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테크노돔의 생산성은 유럽이나 미국의 전자제품 유통업체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러시아 업체인 M.video의 평방미터당 월간 매출은 558달러, 미국 업체 베스트바이는 640달러다. 반면 테크노돔은 885달러다. 그럼에도 에두아르드 김 회장은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한다. ‘앞으로 시장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 회사에서 더 개선할 점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더 재미있고도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 보면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카자흐스탄의 청년들 중에는 회장님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들의 젊음이 부럽습니다. 젊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쌓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사람을 채용할 때도, 경험이 많지만 나이 든 사람보다 경험이 부족해도 젊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믿다 보면 현실에 지나치게 매이게 되거든요. 저도 회사에서 젊은이들과 계속 대화하며 의견을 교환합니다. 테크노돔 매장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23세입니다.

현재 많은 기업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30년 동안 일한 사람들보다, 재능 있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 회사 내에서 더욱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들은 젊은이들이 설립했고, 기존의 금융기관이나 대형 석유회사보다 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개중에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청년들도 많습니다. 청년들이 어떤 꿈이라도 이룰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어떤 꿈이라도 이룰 수 있는 시대라니,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데요.
저희 세대는 대화가 닫힌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는 책이 가장 유용한 수단이었는데,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하고 정보를 나누는 통로가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인터넷이 세계를 하나로 엮어주면서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원하는 모든 정보를 읽고 배우고, 전문가들로부터도 더 많은 전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돈을 모아 집을 사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유 대신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자유입니다. 여러분도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의 꿈과 목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자라길 바라십니까?
저는 딸이랑 아들 셋이 있습니다. 딸은 서른한 살인데,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딸 아래로 아들들은 각각 스물셋, 스물하나, 열여덟 살인데요. 아이들이 인생에서 좋아하는 목표를 발견하고, 그 일에 평생 종사하길 바랍니다. 물론 공부는 해야 하지만, 자기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 깨닫고 나서 하는 게 더욱 좋다고 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부모 말대로 좋은 대학에 가서 하고 싶지도 않은 전공을 4~5년 공부하고, 그 후에 자기 분야에서 3~4년 일하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하고 다시 꿈을 찾아나간다면 거의 10년을 낭비하게 되는 셈입니다. 한 1~2년 정도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실패도 겪으면서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분야를 찾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라고 봅니다.

세 아들들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 아들은 미국 LA에서 음대를 졸업했고 지금 작곡가입니다. 둘째 아들은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지 배울 1년을 목표로 테크노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가을에 보스턴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그때까지 자기가 뭘 할지 깨닫고 자기의 길을 가기 바랍니다.

막내는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요. “아버지, 제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대학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면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아들들이 원치 않는데 제 사업을 물려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사업은 재능이 30퍼센트, 노력이 70퍼센트’라는 신조로, 남보다 두 배는 일하려고 애쓴다는 에두아르드 김 회장. 그는 경영 못지않게 경영에서 거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다. 우리돈으로 약 7억 5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투입해 다 쓴 배터리나 전구, 가전제품을 수거하는 ‘자연사랑 나라사랑’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2017년 알마티 동계 유니버시아드에도 메인스폰서로 참여해 컴퓨터와 전자제품을 기증했다.

미혼모를 돕는 일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고 계신다고요?
네, 어린 나이에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를 가졌다가 양육을 포기하는 엄마들을 1년 동안 돌봐주는 일을 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서 애정을 갖게 되고, 가족들도 아이 엄마를 용서하고, 떠났던 아이 아빠가 돌아와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외에 알마티 시내에 청소년 운동장을 짓고, 동물원을 리모델링하는 일도 돕고 있습니다.

테크노돔을 앞으로 어떤 기업으로 키워갈 계획이십니까?
어떤 기업이든 이익을 내려면 분명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목표, 그리고 장기적인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향후 120년간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지 마스터플랜을 모두 세워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회사를 안정적으로 오래 이끌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투머로우>의 청년 독자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첫째, 꾸준한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건강은 미래의 성공을 위한 기초입니다. 운동을 하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힘든 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힘든 일은 최대한 많이 해보는 게 좋습니다. 둘째, 자신만의 꿈을 갖길 바랍니다. 남들이 이해 못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좋습니다.

에두아르드 김 회장은 테니스, 스키, 자전거 등 운동이 취미다. 하지만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사업이며, 회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거나 부담스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