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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로 달려간 유럽여행기
문혜진 객원기자 | 승인 2018.04.04 20:07

‘여행’이란 단어에 즐겁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단조롭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과 ‘낯설음’에 대한 설렘, 그 기대감이 우리를 흥분하게 한다. 휠체어를 다리 삼아 살아가는 나에게 세상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부딪쳐야 하는 곳이다.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닌 더 가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을 때, ‘청춘, 유럽을 품다’ 자원봉사단의 유럽투어를 만났다. 휠체어로 달려간 나의 유럽 여행기를 소개한다.

체코 프라하 광장. 한국 문화를 전하고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알리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하러 가는 길.

긴장의 연속이지만 행복한 여행의 시작
‘청춘, 유럽을 품다’ 유럽여행은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현지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내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나의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체크하며 소원하던 유럽여행이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보는 여행’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보는 여행’을 기대한 만큼 내 마음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했다.

휠체어를 타고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은 꽤 긴장되는 일이다. 여행할 때 헛걸음하지 않기 위해 평소에는 그곳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를 꼼꼼히 알아보고 다닌다. 하지만 유럽여행은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다녀야만 한다. 그런 느낌이 오랜만이어서일까? 자유로운 느낌과 흥분감에 긴장감조차도 즐거웠다.

인천공항에서 경유지인 카타르공항까지 7시간, 카타르에서 3시간을 경유한 뒤 첫 번째 행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까지 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다. 유럽이 정말 먼 나라인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까지 합치면 24시간이 넘도록 오랜 시간, 나는 같은 자세로 눕지도 못하고 계속 앉아 있어서인지 허리통증이 말도 못했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 시간조차 맞추는 게 어려웠다. 심지어 다리가 계속 부어서 신발을 벗으면 다시 신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참 행복했다. 몸이 고되고 피곤한 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1월 27일부터 2월 9일까지, 네덜란드,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5개국을 순방하며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이동하는 ‘변화의 배Ship of Change’ 에 승선한 서른 명의 단원들과 나의 유럽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 찢어진 바퀴 때문에 임시 방편으로 테이프를 감았지만몇 걸음 못 가서 다시 새로 감아야 했다. 가까이에서 나의 수족이 되어준 팀원들과 믿음직스러운 완선이.
네덜란드 풍차마을에서의 관광. 여행에서 휠체어를 밀어준 소룡이와 다니는 길은 내게 좌절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비단길같이 아름다웠던 돌길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유럽은 특히 신지역, 구지역이 확연하게 나누어져 있다.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건물과 거리, 돌길까지 유지하고 있는 구시가지와 평평한 아스팔트로 포장된 신지역이 있었다.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휠체어로 다니는 길이 불편하지 않았다. 넘어야 할 턱이 있다거나 혼자서 갈 수 없는 길이 가끔 있었지만 그 정도는 늘 감수하고 다녔기에 대수롭지 않았는데, 체코와 헝가리에서는 많은 난관을 만나야만 했다.

먼저 체코의 프라하 광장의 카를교를 건너는 길. 바퀴로 굴러가기에는 최악의 조건인 돌길을 ‘와다다다’ 하고 엉덩이 마사지를 제대로 받으며 다녔다. 놀이동산의 기구도 이렇게 스릴있고 재미있을까? 턱이 높고 크고작은 돌들이 튀어나온 곳이 많아서 거의 뒤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유럽여행 내내 이동버스로 옮겨 탈 때도 나의 휠체어 끌기를 담당했던 소룡이는 내게 꼭 필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사실 휠체어를 민다는 게 멀리서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이 쉬워 보이지만 이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 힘으로 무작정 밀다 보면 휠체어에 탄 사람이 튕겨 나가거나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살짝 앞바퀴를 들어주고, 올려주며 조절해 줘야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소룡이는 특유의 여유로운 성격 때문인지 꽤 섬세하게 휠체어를 밀어줬다. 그 기술을 금방 터득해서 길이 험해도 안정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가끔 “누나! 저 초급에서 중급 됐죠? 지금은 어때요?” 하며 자신의 레벨을 확인받기도 하고,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뿌듯해 하기도 했다.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부다 성.

밤낮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러 갔을 때는 정말 큰 변수가 찾아왔다. 우리는 모두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부다 성을 보자마자 “대박!”을 외칠 만큼 황홀하고 웅장해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내가 올라가기엔 무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소룡이가 나섰다. “누나! 제가 안아서 옮기는 게 빠를 것 같아요!” 패기있게 나를 번쩍 들어안았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들 때문에 중간도 못 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휠체어를 탄 후 장정 네 명이 휠체어 앞뒤를 잡고 꽃가마 옮기듯 들어줘서 부다 성 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 차오른 숨을 고르며 금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황홀해했다.

계속되는 난코스의 여파로 마지막 목적지인 오스트리아에서는 휠체어 앞바퀴가 다 찢어지고 말았다.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감아서 “달달달달” 빗소리를 내며 다녔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날 만큼 당황스러운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다 떨어진 바퀴에 테이프를 감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나는 행사 사회를 맡았기 때문에 무대 앞에 나갈 때마다 분위기를 깨는 테이프 소리 때문에 얼마나 간 졸였는지 모른다. 팀원들 중 가장 맏형이었던 완선이는 늘 테이프를 왼쪽 손목에 걸고 대기하며 테이프가 닳기 무섭게 와서 갈아주는 A/S맨을 자처해줬다.

수많은 인파들을 지나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만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도 나와 인연이 되어 함께 도와주고 챙겨주는 유럽 팀원들, 그들이 있었기에 시간마다 행복할 수 있었다.

체코 프라하 광장에서 유럽투어 팀원들의 깜짝 공연, 아카펠라와 댄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독일 재활병원에서의 북콘서트. 병원 관계자 분이 따뜻한 콘서트를 열어준 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주셨다.

‘마음이 예쁜’ 대학생 민철이와의 만남
‘청춘, 유럽을 품다’ 자원봉사 팀원들은 유럽으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각 나라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코리아데이 행사’를 위해 아카데미와 공연을 준비했다. 사실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물품을 갖추고 태권무, 부채춤 같은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멤버들 중 다수가 친근한 사이가 아닌 초면인데도 불평하며 군말하는 이 하나 없이 모두가 하나같이 한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준비했다는 점이다. 그중 학교에서 우연히 유럽투어 포스터를 보고 찾아온 강민철이란 학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합숙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태권무와 K-pop아카데미를 맡아 준비하면서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뻤다.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코리아데이 행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면서 민철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날따라 유독 큰 보름달이 떠 있었는데, “누나, 저 달이 꼭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하면서 즐거워하는 민철이에게 “민철아, 준비 기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게 뭐야?” 하고 물어보았다. 민철이는 “함께하는 거요!”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누구나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데 여행경비에 대한 부담감이나 언어의 장벽,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여러 명이 모여 같은 목적으로 함께 준비하고 한마음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우리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낯설지만 신선한 자극이 되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는 어떤 지식으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배우고 느끼고 있었던 민철이가 참 대견하고 행복해 보였다.

독일 재활병원에서의 북콘서트. 병원 관계자 분이 따뜻한 콘서트를 열어준 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주셨다.
오르막을 만날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같이 휠체어를 밀어주던 고마운 팀원들.

오스트리아 여학생 메리사의 눈물
5개국을 순방하면서 매일 오전 오후로 나누어 아카데미와 북콘서트 행사를 열었다. 나라마다 사람들이 받는 감동의 크기와 모양새가 다 달랐다. 특히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났던 한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구역 되블링 연회장에서 이틀간 코리아데이와 북콘서트 행사를 진행했을 때, 방학에도 불구하고 SNS 홍보를 통해 소식을 듣고 온 70여 명의 학생과 교사,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기본적으로 한국문화에 관해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모였던 터라 반응이 굉장히 뜨겁고 활기찼다. 특히 마인드강연 시간과 소감발표 시간에는 참석자들이 매우 진지하게 듣고 답하며 소통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감동 영상을 보고, 마인드강연을 들은 학생들 중 계속 눈물을 훔치던 ‘메리사’라는 학생은 문화 행사에 자주 찾아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연결된 느낌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봉사단의 에너지도 느껴지고 단원 한 명 한 명의 기쁨과 감사함이 자기에게도 느껴졌단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외롭지 않고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행사 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자신은 아버지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챙겨주고 보호해주던 마음이 생각나고, 아버지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사랑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게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이런 행사를 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울음을 삼키며 진심으로 마음을 표현해주는 그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유럽에서 나의 편견이 가장 많이 깨진 시간은 단연 현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문화와 생활 습관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느끼는 것이 다 같고, 고민하는 것은 그들과 우리가 비슷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젊은이들 역시 아픔과 어려움을 내놓고 토로할 곳을 찾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게 정말 다똑같았다. 서로 문화 차이로 교류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 뿐, 오히려 그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쇤부른 궁전 앞에서.
독일 마인강 근처 시내에서.
헝가리 구청 산하 문화 회관에서의 북콘서트. 초등학생부터 20대 청년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과 마음의 상태를 진단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10년이 지나면서, 나는 성장해 있었다
나에게 독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10년 전,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활동 중 큰 사고를 당해 긴급하게 이송되었던 프랑크푸르트대학 병원. 이곳에서 수술하고 한 달을 입원해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인생에 변화를 겪게 된 시점이기도 한 독일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잠을 설칠 만큼 설레었다. 10년 전에는 들것에 누워서 고통스러운 상태로 수술을 받으러 왔던 곳에, 지금은 건강해져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으로 다시 오게 되다니…. 그리고 희망을 퍼트리는 마인드강사가 되어서 오다니….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심장이 쿵쾅거리고 감회가 새로웠다.

입원 당시 옆에서 나를 돌봐주셨던 해외봉사단 정영원 지부장님과 함께 병원을 돌아봤다. 병실에 누워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과 그 바깥의 풍경과 바람, 냄새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12시 35분만 되면 나무 위로 올라와 뭘 맛있게 까먹고 가던 다람쥐는 볼 수 없었지만, 창가에서 바람을 쐬니 지난 날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눈물이 차올랐다.

평생 걷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던 절망의 순간을 선물받은 곳, 큰 아픔을 겪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늘 그리워하고 회상했던 그 병실에 다시 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튿날에는 나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선생님 리홀트 박사님을 만났다.

수소문 끝에 의사선생님을 찾았더니, 지금은 독립해서 척추전문병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10년 전의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다는 소식에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설레면서도 걱정도 많이 했다.

유럽여행 중 진행한 ‘코리아데이 행사’에서아프리카 아카펠라 공연과 태권무, 부채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유럽 시민들이 큰 관심을 갖고 참석했다. 한국문화 체험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기 만점이었고, 공연에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팀원들 모두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전히 멋있는 의사선생님. 맑고 파란 눈동자에, 배려 담긴 매너, 깊은 목소리까지. 정말 반가웠던 나머지 손을 덥석 잡았다. 의사선생님도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수술 상처는 잘 아물었냐? 많이 아프지는 않았냐?’며 물어오셨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휠체어를 타는 몸이 되면서 불행하다 여기고, 그로 인해 죽음까지 떠올렸던 마음의 과정들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휠체어 때문에 겪는다고 여겼던 억울한 일화며 나를 분노케 만들던 세상, 하지만 불행하다 여기는 나의 관념들이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발견하고 나서야 ‘휠체어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된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휠체어 위에서 내 인생이 어떻게 행복하게 바뀌었는지 얘기하는 동안 나는 의사선생님의 눈이 나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특별공연으로 준비한 아카펠라를 했는데 병원 직원들과 그곳에 있는 모두가 행복해했다. 의사선생님은 나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어떤 원칙을 통해 당신을 위해서만 고통을 견뎌낸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밝게 살 수 있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어떤 원칙과 타인을 향한 따뜻함이 우리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데, 나는 당신의 믿음 속에서 이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 너무 기쁩니다. 당신이 찾아와줘서 정말 기뻤습니다.”

리홀트 박사가 개업해 운영 중인 척추전문 병원.
10년 전 수술을 해 준 닥터 리홀트는 독일 최고의 척추전문의다. ‘혜진 씨는 걸을 수 없다’고 말했던 그와 재회했다. 그는 나의 건강한 모습에 감격스러워했다.

나를 이끌어주셨던 많은 분들,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내게도 그 시간이, 지금을 살게 할 원동력이 될 만큼 값진 시간이 되었다. 의사선생님께 요즘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드리며 어떤 상태인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상처 주변의 근육이 많이 발달해서 움직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 정도 상태면 현대 의학기술의 도움으로 걸을 수 있겠다고 하셨다.

10년 전엔 분명히 평생 못 걷는다고 못박아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걸을 수 있겠다고 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보며, ‘하나님이 이말을 듣게 하려고 나를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세상에서 듣는 말은 “가망이 없어. 넌 안 돼. 평생 못 걸어.”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는데, 내가 만난 하나님은 소망을 바라보게 해 주셨다.

소망으로 옮겨진 마음을 따라 몸의 변화와 함께, 이제 나는 곧 걷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날에 다시 이곳에 와서 선생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고, 더 깊은 이야기들로 세상에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리라. 그 모습을 그려보며 독일에 뜨거운 안녕을 고했다.

Ship of Change 해외봉사 단원들은 리홀트 박사의 병원에서 아름다운 아카펠라를 불렀다. 리홀트 박사와 간호사들, 병원 관계자들은 독일까지 찾아와 노래를 선물해준 팀원들에게 감동받아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해준 유럽여행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데 성공한 사람은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미래를 만든다고 생각해. 또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지만, 완벽하지 않으니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러면 실수를 하더라도 자책하지 않아. 모든 트라우마와 상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든지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 반대로 자신을 파괴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내가 좀 충격을 받은 부분은 ‘시련이라고 여기기로 선택한 네 결정’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혼자 느끼기에 감당할 수 없었고, 갑작스레 찾아온 고통에 ‘시련’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곤 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니 당연히 시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 또한 나의 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시련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상황 탓, 남 탓하는 습관이 배어버린 나의 자아를 깨트려준 대목에서 내가 오래도록 가슴에 새겼던 말이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나의 결정 때문에 이루어진 거라면, 행복을 선택한 사람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내 마음에 정리된 후,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허상에 빠져 주변에 가득한 기적과 행복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진실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당연히 움직이던 몸이 어느 날 갑자기 감옥에 갇힌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기분은, 꼭 몸을 다쳐서 아파봐야 아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인데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의 감정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낮은 자존감과 무력감,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나?’ 하는 죄책감,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거야!’ 하는 분노.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하는 막막함,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두려움까지 더해지면 그 끝은 결국 죽음으로밖에 흘러갈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인 것 같다.

유럽여행은 나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시간이었다. 어떤 난관을 만나도 함께하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고,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누군가와 마음이 연결되면 그보다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원없이 느낀 시간이었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유럽 봉사단원들은 아마도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웃고 즐기며 지냈던 시간을 회상하며 계속 그리워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큰 영향력을 일으키고,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듯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고, 또 그 마음의 힘이 뻗어나간다면 이 세상이 참 따뜻하고 포근해질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소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꿈을 이루고 날개를 펴는 아름다운 그날을 기대해 본다.

문혜진
지난 2007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아프리카 가나에 다녀온 그녀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사고를 계기로 마음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는지 깨달았다. 휠체어를 의지하는 삶 속에서 감사를 느끼면서 그녀는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말하는 습관, 생각하는 방식 등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달라졌다는 그녀는 다시 걷고, 뛸 수 있다는 소망을 잃지 않고 있다. 현재 한양사이버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며, 예루살렘 라디오 ‘문혜진의 아름다운 벗’ 진행자이자 마인드교육 전문강사, <투머로우> 객원 기자로 활동 중이다.

문혜진 객원기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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