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와의 우정 스토리

평소 친구 관계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한주은 씨는 지난 한 해 아르헨티나에서 봉사하면서 단맛, 짠맛, 쓴맛까지 경험하며 우정의 진정한 맛을 발견했다. 새콤달콤 파인애플 맛이라고.

대학 신입생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가 바로 ‘인간관계’라고 한다. 친구를 사귀는 것을 인간관계라는 무거운 단어로 표현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원만한 대학생활을 위한 친구’는 사귀어야 하다보니 어느새 우정이라는 단어가 멀어지고 있다.

이번 표지 주인공인 한주은 씨는 아르헨티나에서 ‘미카엘라’라는 잊지 못할 친구를 만났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표지사진 속 두 사람 표정에는 작별의 아쉬움과 그동안 즐거웠던 추억이 똑같이 담겨 있다.

“이 사진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몇 주 전 미카엘라와 ‘라 보카’라는 거리에 가서 찍었어요. 바쁘게 지내다 보니 미카엘라와 함께 추억을 남긴 적이 없더라고요. 미카엘라와 아르헨티나 친구들 덕분에 철없던 제 자신이 많이 성장했고 진솔하게 사람을 사귀는 것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친구들과 헤어져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표지촬영을 했던 장소 ‘라 보카’는 아르헨티나를 찾은 관광객들이 꼭가보는 탱고의 발상지이다. 한주은 씨가 귀국하기 이틀 전에친구들과 이곳을 방문했다. 유럽에서 이민 온 이주민들, 노동자들이 살던 곳으로 보헤미안과 같은 이국적 정서가 넘 친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배를 만들고 난 후에 남은 철판과 페인트로 집을 지었는데, 보카 항구이용이 줄면서 쓰레기장이 되어 가던 거리를 마르틴이란 화가가 주민들과노 력하여 알록달록 화려한 원색 거리로 바꾸어 놓았다.
표지촬영을 했던 장소 ‘라 보카’는 아르헨티나를 찾은 관광객들이 꼭가보는 탱고의 발상지이다. 한주은 씨가 귀국하기 이틀 전에친구들과 이곳을 방문했다. 유럽에서 이민 온 이주민들, 노동자들이 살던 곳으로 보헤미안과 같은 이국적 정서가 넘 친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배를 만들고 난 후에 남은 철판과 페인트로 집을 지었는데, 보카 항구이용이 줄면서 쓰레기장이 되어 가던 거리를 마르틴이란 화가가 주민들과노 력하여 알록달록 화려한 원색 거리로 바꾸어 놓았다.

친구 사이에 회의를 느끼고
한국에서 주은 씨는 누구보다도 활달한 여대생이었다. 어딜 가도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에, 먹는 것 좋아하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았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처럼 가깝고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그의 사소한 잘못으로 친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친구 사이가 금세 멀어지는 것이었다.

“저를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쉽게 마음을 내주고 다 믿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허무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쟤는 저래서 그래, 얘는 이렇고. 같이 놀면 좋지 않아’ 하고 마음에 벽을 쌓으면서, 어느 누구한테도 쉽게 마음을 못 열게 됐어요. 대학에서는 수업을 같이 듣고 밥은 같이 먹어도 진정한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마냥 즐거웠던 대학생활이 조금씩 힘들어지더라고요.”

친구 사이는 공감을 전제로 하며 자신의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것 자체로 힘이 되는 관계인데, 주은 씨는 더 이상 그런 친구는 사귈 수 없다고 생각하니 혼자서 고민하고 한숨 쉬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렇게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해외봉사를 갔다. 해외로 나가서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하며 안 좋은 기억들을 훌훌 날려버리고자, 지구 반대편 남미대륙의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파멜라와 함께. “나 같은 이기적인 봉사자는 없었지?” 하고 물었을 때 파멜라는 “내 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 너 같은 봉사자는 없었어. 정말 고마워”라고 말해줬다.
파멜라와 함께. “나 같은 이기적인 봉사자는 없었지?” 하고 물었을 때 파멜라는 “내 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 너 같은 봉사자는 없었어. 정말 고마워”라고 말해줬다.

나를 남기겠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과거 전성기를 보여주는 멋지고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활기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밝고 즐거운 도시였다. 하지만 첫날부터 먹었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앞으로 일 년을 어떻게 지낼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봉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는 것을 보고 주은 씨의 마음이 홀딱 반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말을 걸고 밝게 인사하고, 무슨 일이든지 즐겁게 웃어주고 활발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줄 것 같고 나중에 잊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현지 친구들과 아줌마들이 그를 ‘주시따(조그마한 주은)’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많은 현지인 친구들과 이모들이 그를 사랑하고 아껴줬고, 주시따라고 불러줄 때마다 행복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항상 수월하게 풀리지는 않는 법. 그의 의견에 맞지 않은 일들이 조금씩 일어났고, 평소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해 싫으면 싫은 기색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성격이 문제가 됐다. 자연스럽게 말다툼이 일어났고 원하지 않는 감정싸움도 빈번했다.

“사실 제 별명이 쌈닭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제 주관이 너무 뚜렷하다 보니 친구들과 다투는 일들이 많았는데,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런 제 자신이 너무 많이 도드라지는 거예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웃어 보이려고 해도 제 마음은 지쳐버렸고 다 내려놓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건이 발생했어요.”

너무 이해가 안 되잖아!
어느 날 그의 양말과 라면이 사라진 것이다. 전부터 자신의 물건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파멜라에게 물어봤지만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고 주은 씨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결국 파멜라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줄 수도 있었는데 왜 말도 없이 훔쳤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안 됐어요. 파멜라에게 크게 화를 냈고 그 친구는 여러 번 저에게 사과를 했어요. 파멜라가 저를 계속 도와주고 챙겨줘도 무시했어요. 그때 지부장님께서 저에게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파멜라가 네 물건을 훔쳐서 화날 수 있지만, 너도 그 친구의 사과를 무시할 정도로 잘한 건 없어’라고요. 그리고 파멜라의 아버지는 매일 술을 먹고 폭력을 행사하고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집이 아니라 길에서 잘 때도 많았다는 것을 들었어요. 제가 파멜라에게 뭔가 잘못했다고 느껴졌어요.”

그는 바로 파멜라를 찾아갔고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들었다.

“주시따, 네가 먹는 것을 보며 너무 먹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훔치게 됐어. 너랑 싸우기가 싫어서 자꾸 숨기게 됐는데 너를 더 화나게 할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파멜라의 말에 주은 씨는 점점 작아지는 듯 했다. 현지인 친구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좋은 물건들을 부러워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말없이 물건을 가져간 파멜라가 나빴다고 생각했는데 파멜라는 그를 좋아했고 그래서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주은 씨의 마음에 철없이 막무가내로 굴었던 자신을 탓하는 ‘쓴맛’과 파멜라에게 미안한 눈물의 ‘짠맛’이 느껴졌다.

내 친구, 미카엘라
“이후 마카레나라는 친구와도 오해가 쌓여서 몇 번 다투면서, 제가 쉽게 지나쳐버려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겉으로 보고 제멋대로 추측했던 그 사람의 마음과 진짜 속마음은 정말 달랐어요. 그 속마음을 알아야지 그 사람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표지에 함께 나온 미카엘라는 유독 그에게 많은 것을 주려고 했다. 만날 때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고, 돈이 없을 때는 기억해놨다가 사주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비싸서 잘 못 먹는 한국과자도 아낌없이 사왔다. 주은 씨의 왈가닥 성격을 이해하고 좋아해 주는 미카엘라가 고마워서 생일때 가장 아끼는 마스카라와 편지를 선물로 줬다. 그의 편지를 읽고 미카엘라는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그가 미카엘라와 이렇게 각별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월드캠프 준비로 미카엘라와 보내는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월드캠프 기간에 짬을 내어 햄버거로 점심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미카엘라와 속내를 터놓고 대화했어요.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미카엘라가 왜 이곳에서 같이 봉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미카엘라의 부모님은 자기가 일곱 살 때 이혼을 했대요. 파라과이에 계신 어머니는 정신이 약하셨는데 우리 봉사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미카엘라도 우리를 알게 됐다고 해요.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라고 아버지도 매일 술 마시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았지만, 자기는 여전히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봉사단체에서 봉사하면서 자기 가족도 행복하게 될 것을 믿고 있었죠. 자신의 부끄러운 가족사를 말해주고, 또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마약에 쉽게 노출돼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건전하게 잘 성장한 미카엘라가 정말 대견해보이고 감사했어요.”

미카엘라의 이야기를 듣고 주은 씨 자신의 고민도 꺼내놓으면서 서로를 더 자세히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마음에 기쁨의 ‘단맛’을 느꼈다. 아르헨티나 친구들을 알아가면서 주은 씨 자신의 부족하고 철없던 모습도 발견하면서 때론 눈물을 흘렸다. 또 다투면서 마음 상한 적도 많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우정은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한마음이 돼서야 발전할 수 있는, 정말 혼자서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보고 싶어, 주시따”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는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정말 보고 싶어. 돌아와 주시따’예요. 사람들이 저를 잊을까 봐 불안했었는데, 그렇게 말썽을 피웠어도 사랑을 베풀어주고 이렇게 저를 기억해주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생각만 해도 힘이 나요. 미카엘라는 올여름에 한국에 온다고 하더라고요.”

개강을 맞은 주은 씨는 과제와 수업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전과 같은 일상이지만 이제 떠올리기만 해도 그리운 친구들이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것이 다르다.

“한국 친구들과 관계는 꼭 두부 같아요. 처음에는 부드럽고 잘 대해주고 친한 것 같은데 친하지 않아요. 서로 마음을 나누지 않으니까 진짜 모습을 모르고 쉽게 깨지기 쉬운거죠. 저도 그 방법을 모르다 보니 친구들과 멀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아르헨티나 친구와는 꼭 파인애플 같았어요. 여러 사건이 있긴 했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상큼하고 맛있는 사람의 맛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저도 파인애플 같은 사람이 돼서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만 단정 짓지 말고 친구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고 싶어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친구는 제 2의 ‘나’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말이다. 마음을 나누다 보면 한마음이 되고, 서로 닮게 되는 것이 참된 우정인 것이다. 주은 씨의 미소가 미카엘라의 미소와 닮은 것처럼.

한주은
친구들과 노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뭐든 좋아하는 발랄 여대생. 아르헨티나의 예쁜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과즙미 넘치는 진한 우정을 나누면서 누구와도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화력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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