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가는 길_두 번째 이야기

<투머로우>가 창간 기념 이벤트로 ‘마케도니아 여행하기’를 진행했습니다. 조민지 씨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반전의 묘미가 흐르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요. 지난 호에 카타르 도하에 불시착(?)한 사연을 소개한 데 이어 중세시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한 두 번째 여행기를 펼쳐보려고 합니다. 동유럽 사람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만나 더욱 즐거웠던 마케도니아 여행, 시작할까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오흐리드 마을의 풍경.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오흐리드 마을의 풍경.

다시, 설레는 첫날 스코페
착륙의 기쁨도 잠시, 바가지를 쓰고 탄 택시와 썰렁한 숙소에 지친 몸 상태까지 더해져 스코페의 첫날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다시 마음을 잡아주는 것이 있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있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사실! 앞선 여정이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여전히 엄마가 계신다. 차가운 생각들을 훌훌 털어 내고 설레는 마음만 남긴 채 엄마와 나는 스코페 여행을 시작했다.

EPISODE 1 세 소녀와 함께 떠난 시간 여행
스코페 여행이 더욱 설렜던 것은 이곳에서 만나게 될 세 여학생 때문이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마케도니아 지부장님의 소개로 현지인 자원봉사자의 가이드를 받게 된 것이다. 고등학생 두명과 대학생 한 명. 방탄소년단과 빅뱅을 좋아해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귀여운 세 소녀가 우리를 반기며 스코페 곳곳을 꼼꼼히 안내해 주었다.

스코페 관광을 안내해 준 학생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참 순수하고 따뜻한 소녀들이었다.
스코페 관광을 안내해 준 학생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참 순수하고 따뜻한 소녀들이었다.

알렉산더 대왕 광장 Alexander The Great Statue
스코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더 대왕 광장’에는 큼지막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과 역사적 주요 인물들의 동상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 광장 옆으로 바르다 강이 흐르고 강 위로 오랜 역사의 흔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고풍스런 돌다리가 지나는데,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그 다리를 건너면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다우트 파샤 목욕탕 Daut Pasha Hamam
다리를 건너 재래시장에 들어서기 전, 육중한 느낌의 이슬람 건축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1466년에 지어진 공중목욕탕으로, 지금은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5세기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을 당시 먼 길을 온 오스만제국 상인들이 이곳에서 여독을 풀었다고 한다. 중세 이슬람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래시장 곳곳에서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볼 수있다. 우산으로 꾸며 놓은 식당이 예쁘다.
재래시장 곳곳에서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볼 수있다. 우산으로 꾸며 놓은 식당이 예쁘다.
15세기에 지어진 터키 식 돌다리를 통해 바르다강을 건널수 있다. 스코페 시민들은 매일 역사 위를 걷는다
15세기에 지어진 터키 식 돌다리를 통해 바르다강을 건널수 있다. 스코페 시민들은 매일 역사 위를 걷는다

재래시장 Old Bazaar
조금 걸으니 옛 시장 골목이 펼쳐진다. 오밀조밀 다정하게 붙어 있는 1~2층 정도의 앙증맞은 상점들이 반질반질한 돌길을 사이에 두고 쭉 이어진다. 건물 너머로 모스크가, 좀 더 멀리엔 성벽도 보인다. 과거로 가는 다리를 건너 중세 유럽의 한 마을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시간 여행을 하는 듯 기분이 묘하다. 이 시장은 오스만제국 당시부터 있었다는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득하고 예쁜, 그래서 계속 구경하며 찬찬히 거닐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돌길을 쭉 걸어서 빠져나가면, 현지인들이 ‘비트 바자Bit Bazaar’라고 부르는 또 다른 재래시장이 있다. 채소, 고기 등 식자재와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데, 알바니아식 전통 결혼 의복과 장신구를 파는 가게도 많이 보인다. 마케도니아에는 알바니아인과 터키인이 많다. 이들은 이슬람 유적지가 있는 구시가지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고 한다. 두 나라 관련 물품까지 더해져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과거 마케도니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칼레요새.
과거 마케도니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칼레요새.

칼레요새 Kale Fortress
스코페 시내를 끌어 안고 있는 듯 한 이 요새는 고대 로마 도시 스쿠피의 유적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11세기 즈음 완성되었다고 한다. 유적지 치고는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듯했지만,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 단단하게 지어진 요새 곳곳의 모습은 과거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곳 칼레요새를 중심으로 벌어 졌을 고대의 치열한 전투, 그리고 요새를 중심으로 삶을 이어 갔을 사람들…. 높이 나부끼는 빨간색 국기와 쓸쓸한 요새, 그 뒤로 보이는 스코페 시내의 소박한 겨울 풍경이 멋스러웠다.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Делфина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Делфина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Mustafa Pasha Mosque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로 꼽히는 사원으로, 재래시장에서 칼레요새로 이어지는 언덕에 위치한다. 매일 5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이곳의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 퍼진다. 모스크 내부 벽면을 장식한 이슬람 무늬는 주로 푸른색 염료로 그려져 있고, 수수한 느낌을 준다.

테레사 수녀 기념관 Mother Teresa Memorial House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 중 하나다. 스코페의 알바니아 계 가정에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의 생가를 복원해 두었으며, 그녀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EPISODE 2 보석함에 담아 놓은 중세, 오흐리드
스코페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오흐리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고풍스러운 곳이자, 유럽 청년들의 자유 여행지로 사랑 받는 지역이다.

키릴 형제의 동상. 이들은 오흐리드에서 키릴문자를 만들었다. 키릴문자는 오흐리드 수도원을 중심으로 슬라브 문화권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키릴 형제의 동상. 이들은 오흐리드에서 키릴문자를 만들었다. 키릴문자는 오흐리드 수도원을 중심으로 슬라브 문화권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예상치 못한 연말의 위기
호숫가를 따라 아침 산책을 한 후 이날 밤 묵기로 한 숙소로 이동했다. 카운터 직원에게 다음날 일찍 스코페를 거쳐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려는 우리의 일정을 설명 했더니, 연말이라 교통편이 없을 수 있다고 했다. 카타르에서 비행기를 놓쳤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덜컥 겁이 났다.

숙소 주인은 여러 번 전화 통화를 하며 교통편을 알아봐 주었다. 마케도니아에는 주변국에서 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연말이면 터미널이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이튿날 소피아행 티켓이 매진될 상황인데, 이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티켓을 미리 사두지 않았었다. ‘출국날인 1일까지도 소피아 공항에 못 가면 어쩌지!’ 마음껏 즐기려던 차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도움을 구할 곳은 스코페의 자원봉사자 학생들뿐이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상황을 설명했는데, 고맙게도 한 학생이 티켓을 구해주겠노라고 했다.

스코페 시청을 방문해 시장 비서를 만나 마케도니아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한국과 <투머로우>를 소개했는데,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스코페 시청을 방문해 시장 비서를 만나 마케도니아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한국과 <투머로우>를 소개했는데,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중세의 재현, 그림 같은 마을
소피아행 티켓 문제를 일단락 지은 후, 엄마와 나는 택시를 타고 즐겁게 오흐리드 곳곳으로 향했다. 짧아진 일정에 아쉽기도 했지만, 위기를 또 한 번 넘어간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흐리드는 작은 도시다. 올드타운 지역에 사무엘 요새, 고대 원형극장, 성 보고로디차페리브렙타교회 등 유적지가 밀집해 있다.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인데 교회 앞뜰에 서니 동네 모습이 눈앞에 가득히 펼쳐졌다.

주황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어느 집에선가 밥을 짓는지, 온 마을로 불 떼는 냄새가 퍼져갔다. 그 아늑한 냄새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중세 마을에 와 있는 듯했다.

아름다운 마음이 흐르는 곳, 마케도니아
스코페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자원봉사 학생이 우리에게 티켓을 주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와 있었다. 당황한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며 자기 일처럼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마케도니아를 ‘아름다운 나라’로 이름짓게 했다.

EPISODE 3 5월에 다시 찾고 싶은 불가리아
친절한 마케도니아 사람들 덕분에 12월 31일 아침, 무사히 불가리아 소피아에 도착했다. 반나절 정도 도시를 다녔는데, 국립문화전당 주변 공원을 둘러본 후 각종 상점과 카페가 즐비한 비토샤 거리를 따라 걸었다.

이후 무료 소피아 투어에 참여했다. 두 시간 동안 소피아 시내를 돌며 가이드로부터 소피아 관광명소에 대해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인데,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어 굉장히 새롭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바로 옆 나라이지만 불가리아 소피아는 마케도니아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마케도니아에 비해 높고 거대한 건물들이 많았고, 유적지도 관리가 잘 된 느낌이었다. 동방 정교, 이슬람, 가톨릭 세 종교의 건물이 모두 도심에 모여 있어 이색적이었다.

여러 역사 유적 및 건축물이 도심에 밀집해 있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불가리아는 장미가 유명한 나라여서 5월에 오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성 보고로디차페리브렙타교회.
성 보고로디차페리브렙타교회.
불가리아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
불가리아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
무료 소피아 투어는 자원봉사단체에 의해운영된다. 청년들이 자신의 나라를 알리고자 즐겁게 봉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료 소피아 투어는 자원봉사단체에 의해운영된다. 청년들이 자신의 나라를 알리고자 즐겁게 봉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집으로 가는 길
여행의 마지막 날, 1월 1일을 소피아에서 맞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소피아 공항으로 향하던 길,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일주일을 경험하게 될 줄 출발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기도, 감동도 많았던 잊지 못할 여러 추억들이 아로새겨 졌다. 그리고 항상 내 곁에는 엄마가 계셨다.

엄마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어 시작한 이번 여행에 다소 험난하고 긴장되는 일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더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의지하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라서 더없이 행복한 여행! 내가 몰랐던 엄마를 알게 됐고, 좀 더 깊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았다. 여행의 만족과 추억은 얼마나 멋진 광경을 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님을. 그곳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극복,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 주고 받는 마음이 더 중요함을 말이다. 앞으로도 자주,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앗!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오며 가며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매우 편안해 하셨다. 안락한 의자, 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는데, 엄마는 카타르항공 때문에 자주색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하셨다. 설레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카타르항공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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