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인도, 독일, 미얀마에서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이 사진을 몇 장씩 보내주었다. 너무 재미있는 사진들이어서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지치고 피곤했을 텐데 왜 웃고 있지?’ 궁금해서 사연을 읽어보니 즐거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도전정신 쑥쑥! 삐에드라 부에나에서 집 짓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동차를 타고 40시간을 가면 아르헨티나 최남단의 도시 ‘삐에드라 부에나’가 나온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현지인들을 도와 건물 짓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건물 간판을 만들기 위해 작은 돌을 잔뜩 주워와 붙여야 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어서 2층 높이의 장소에 올라가 작업을 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작업을 해야 하는 날, 바람 한 점 없이 날씨가 맑고 좋아서 현지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해낸 우리 봉사단원들! 이후 다양한 고난도 활동들에 담대히 도전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같이 일을 하던 현지인들 중에 술, 마약, 범죄 문제로 한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인생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어 보니 누구보다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봉사단과 교류하면서 하루하루 밝게 변화되는 그들을 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아르헨티나의 더 많은 청소년, 젊은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아르헨티나 김상희

인도
주호가 열심히 나르는 것은?
시멘트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내 모습이 다시 봐도 행복해보인다. 소 천국인 인도. 어딜 가나 소가 가까이에서 정겨운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가난한 오리사 지역에서 봉사를 했는데, 한 현지인 부부가 부모님처럼 따뜻하게 잘해주셨다. 어느 날 새벽 4시쯤 너무 아파서 화장실을 30번 넘게 들락날락하며 앓고 있는 나를 현지인 부부가 보고 오토바이에 태워 가정집 같이 생긴 병원에 데리고 갔다. 너무 시골이라 그런 병원 밖에 없었던 것이다.

병원에 다녀오자 현지인들이 한 명 두 명 나를 찾아와 괜찮냐고, 먹고 싶은 건 없냐고 물었다. 치킨누들과 스프라이트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스프라이트는 바로 사주었고 치킨누들은 다음날 만들어 주었다.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사랑을 받다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인도 윤주호

독일
나는야 소품 담당
미대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는데 전혀 반대인 공대에 들어갔다. 그러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했고 아름다운 독일에서 봉사하게 됐다. 독일에서 내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봉사단이 유럽 여러 나라 시민들을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뮤지컬 공연에서 소품 제작을 담당한 것이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서 정말 보람됐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단원들과 합숙하며 느낀 감동은 유럽의 어느 멋진 도시를 여행하며 경험한 감동보다 진했다. 독일 강소현

미얀마
다 포기하고 싶었던 날
섭씨 39도까지 오르는 미얀마의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짜증도 많이 나고 모든 걸 집어던지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이날은 내 속마음을 더 이상 숨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지인들에게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봉사활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왼쪽 앞이 이창연
왼쪽 앞이 이창연

“사실 나는 미얀마에 그다지 오고 싶지 않았어. 내가 미얀마어를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를 지원해서 온 거야. 남자 단원이 나 혼자인 것도 싫고 미얀마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부담스러워. 무조건 입을 열어야 미얀마 말을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해 주는 것도 압박으로 느껴졌어. 이럴 거면 왜 봉사단에 지원했냐고? 글쎄…. 달라지고 싶고 변화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

내 고백을 들은 현지인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뭐가 문제야? 우리는 한 가족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네 주위에 있는데 왜 너는 혼자 생각에 빠져서 ‘외로워. 힘들어. 재미없어’ 하고만 있어? 우리는 네가 머나 먼 이곳 미얀마까지 와준 게 좋고 감사해.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싶고 너와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어. 네가 마음을 닫으면 우리가 다가가기가 힘들지 않겠어? 미얀마에는 봉사단원으로 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 그래서 한 명 한 명이 더 소중한 거야. 이런 일들이 힘든 것만은 아니야.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거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너무 창피했고, 동시에 그들의 마음이 내게로 흘러들어오는 게 기뻤다. 서툰 미얀마 말로 하는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한국에서 나는 왕자처럼 살았다. 고생을 하거나 힘든 일을 해보지 않아 손도 여자 손처럼 곱고…. 삽질을 비롯해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는 귀하고 행복한 경험을 하게 해준 미얀마를 사랑한다. 미얀마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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