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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파리를 간다유럽의 향취를 책으로 펴낸 이상훈
전진영 기자 | 승인 2018.03.13 15:15

코코넛컴퍼니 이상훈 실장이 글과 사진, 편집 디자인까지 직접 해서 출간한 여행입문 서적 <처음 유럽 어디부터 갈까?>.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본 유럽 16개국 35개 도시를 추천 순서를 정해 소개하고 있다. 그가 본 유럽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얼핏 보고 지나칠 만한 건축물에서 디자이너만의 감성으로 미적 특장점을 찾아내고, 해당 국가나 도시에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펼쳐내며 도시 전체의 디자인 성격을 감성적으로 보여주는 칼럼을 쓴다.
‘유럽이 왜 디자인학도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인지’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이 책은 6년 간 준비한 끝에 <처음 유럽 어디부터 갈까?>라는 제목으로 완성되었다. 이 책을 읽던 기자는, 마음이 어느덧 유럽의 멋진 거리를 걷고 있음을 발견했다.

책에서 유럽여행의 시작을 왜 프랑스 파리부터 하고 있나요?
여행을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양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큰 가치를 두고 여행했죠. 책에서도 제가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처음 유럽에 가는 친구에게 권하는 추천 1순위로 파리를 골랐죠.

유럽 하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고풍스런 건물이에요. 그 우아하고 화려한 느낌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도시가 파리죠. 파리는 구석구석 볼수록 멋져요. 어느 도시보다 세련되고 화려해요. 저는 파리만의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곳이 오페라 가르니에의 대연회장 <그랑푸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완벽해요. 베르사유의 궁전 이후 시기에 만들어져서 더 화려하고 섬세하죠.

그 다음에는 로마죠. 아주 깊은 역사를 지닌 고대 유적이 있고 짙은 역사의 자취가 가득합니다. 그러고는 런던의 현대적인 디자인과 고풍스러운 것들의 조화를 보러 가야죠. 여왕이 살고 있는 도시에 타워 브리지, 영국근위대 등 근사한 것들이 많아요.

이 정도 봤으면 이제 대자연을 봐야겠죠. 바로 알프스에 가는 거예요. 빙하가 아름답게 깎아 놓은 산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나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 베네치아입니다. 베네치아가 갖고 있는 아주 독특한 낭만적인 풍경은 앞에서 본 유럽에는 없는 것이지요. 다음에는 유럽의 농가하면 떠오르는 낙농업과 풍차, 목가적 풍경이 있는 네덜란드죠.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잔세스칸스 전통가옥은 정말 예쁘고 아름다워요. 그 다음에는 밀라노, 잘츠부르크 이런 순서로 제 여행이 이어집니다. 어디까지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순위를 정하느라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한정된 페이지에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담기에 책 한 권이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파리에서는 걷는 곳곳이 디자인이고 런던의 타워브리지 계단 아래 새겨진 문장, 우연히 포착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까지 무엇 하나 놓칠 수가 없었죠.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넘겨보며 그때를 떠올리면서 원고를 쓰기 시작합니다. 구글 어스를 뒤지면서 제가 다녔던 곳을 온라인으로 다시 찾아가보고, 그 도시에 관련된 유명한 음악가나 미술관 등에 관한 역사들을 찾으면서 공부했죠.

그렇게 썼던 원고와 블로그 글이 책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됐죠. 제가 수집했던 정보들의 양도 상당했기 때문에 책을 만들려고 했을 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줄여야 할지 정해야 했죠.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해당 국가나 도시에 있는 특징을 살리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특징은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겉보기에는 외관의 모양과 형태, 색채 등이 중요해 보였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일들과 이념들이 도시의 성격을 결정했고 디자인도 그대로 나타났죠. 그래서 각 도시마다 가진 사람들의 특징을 주목했죠.

독일은 도시 분위기가 굉장히 당당합니다. 대표 아이콘인 프로이센의 개선문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동서 분단의 비극이 있었지만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독일이 된 역사와 함께 굉장히 밝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에 반해 체코 프라하는 뭔가 우울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침략을 많이 받아서인지, 공산체제를 겪어서인지, 프라하 시민들은 내성적이고 표정이 다소 침울해 보였죠. 이탈리아는 찬란한 햇빛이 많은 곳이라 사람들이 무척 유쾌했다면, 오스트리아는 사람들의 성격이 반영돼서인지 모든 건물에서 수줍음이 느껴졌죠.

어딜 가더라도 그 도시의 핵심 되는 특징을 잡아내고 분석하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에 관해서는 한 화가의 미술 작품들이 그렇게 인기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그의 일대기를 심층적으로 적었고, 핀란드에서는 대표 캐릭터 무민을 주로 소개했죠. 캐릭터 자체가 무척 평화스러웠고 한 국가를 나타내는 대표 캐릭터가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책에 실린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숨 가쁘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도시의 인물과 역사, 디자인을 설명하고 관련된 사진까지 막힘없이 흘러가며 어느새 다음 도시가 기다린다. 해당 도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아쉬움이 남을 때, 마지막에 달아둔 명소추천 순위를 보면 직접 여행하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오페라 가르니에의 대연회장 <그랑푸르>

이 책만 봐도 유럽 대륙을 한번 훑고 오는 것 같은데, 굳이 발로 걸어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책의 여정 자체가 빠듯하고 약간 급하게 넘어가는 것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여행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주길 원했습니다. 제가 정한 순위대로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선택할 때 어디를 가면 유럽 최고의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유럽은 넓은 땅에 많은 민족들이 섞여 살았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가 학습되고 학습되면서 문명이 빠른 속도로 수준 높게 발전해왔죠. 발전한 문명이 나라마다 여러 형태로 표현되어 있기에 디자인과 미술, 음악 등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 바로 유럽입니다.

잠깐 다녀오더라도 그 장소의 하늘과 건물, 사람, 색, 날씨 등 직접 현장에 가서 느끼고 본 것은 다녀오지 않은 것과 천지 차이입니다. 그 공간 안에 내가 있으며, 하나가 아닌 전체를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브뤼셀의 경우도,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것은 책이나 인터넷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건물과 거리에는 평화롭고 원만한 그들의 민족성이 우아하고 공격적이지 않은 깔끔한 디자인으로 담겨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가서 느끼고 보고 온 것들을 마음에는 가득 품고 있지만 이것을 그대로 표현하기에 글이나 사진으로는 아주 부족하죠. 마치 256종류의 색을 표현하는 옛날 컴퓨터가 자연의 수만 가지 색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가 느낀 것을 이 책에 표현하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부분입니다. 그래서 한 문장의 도시 설명을 쓸 때도, 도시를 대표하는 사진을 고를 때에도 가장 좋은 표현을 위해 고민하고 선택했죠.

페라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인디애나 폴리스 500마일 레이스 페라리
독일 베를린국제의회 의사당 옥상의 유리돔

책 표지 상단에 ‘거르고 걸러 뽑아내 향기는 더 풍성한 유럽 여행기의 에스프레소’라는 소개 글이 있다. 책에 실린 글이나 사진, 그림 등 모두 거품 하나 없는 최고의 재료들을 줄이고 줄여서 압축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다섯 차례의 가제본을 거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글과 사진의 배치도 스토리에 맞아 떨어지도록 세밀하게 조정하면서 하나의 완전체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에게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유럽 여행 이후 디자인 작업에는 변화가 있었습니까?
지난 여름, 해운대에서 해변 콘서트의 무대디자인을 할 때였습니다. 사회자 뒤 면에 패턴을 넣은 배경을 넣어야 했는데, 여기에 적용시킨 것이 파리에서 봤던 청색 바탕의 백합 무늬 패턴이었어요. 그 패턴의 느낌을 적용시키니, 깊이있는 고급스러움을 연출할 수 있었죠. 책을 만들 때는 책의 앞과 뒤에 들어가는 면지에 어떤 패턴을 넣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베르사유 궁전 한쪽 구석에 있던 벽면 장식의 패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것이 바로 세련되고 고급스럽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디자인이거든요. 디자인은 그처럼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바라본 아이거봉
반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배경 앞에서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주세페 모모가 설계한 나선형 계단

보고 경험한 것을 영양분과 에너지로 삼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인간은 완전한 창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어디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는 거죠. 디자인할 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 파리의 우수한 디자인들 등 제 마음속에 담겨 있던 것들이 소화되어 하나씩 나오게 되더라고요.

20년 간 디자이너로 일해 오면서 어떻게 보면 안주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유럽 여행 이후 책을 만들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유럽 디자인의 정수가 제 머리와 마음에 새겨지면서 디자인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훌륭한 것을 모아서 하나의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집대성’이라고 말하죠. 책을 내는 것이 바로 그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유럽에서 얻은 많은 디자인 자료들을 모아서 추려내고 정리하고 수정하면서,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집대성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이 나왔다는 자체로 즐겁습니다. 책을 언제든지 열어서 다시 찾아볼 수 있고, 다량 생산이 돼서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요. 그래서 책을 내보라고 제안했던 그 독자를 지금도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동경하는 유럽여행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들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서 간 여행에서 최고의 추억과 감흥을 느끼길 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유럽의 매력을 분석하여 책으로 옮긴 <처음 유럽 어디부터 갈까?>를 읽는다면, 유익하고 감동적이면서 효율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이상훈
아이덴티티와 공연홍보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그래픽 디자이너다. 유럽 여행을 시작하면서 각 나라의 다양한 시각적 표현과 민족성을 정리했고, 본지에 유럽기행문을 2011년부터 4년간 연재했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감성과 남다른 분석력으로 생생한 여행의 가치를 전달하는 책 <처음 유럽 어디부터 갈까?>를 최근에 출간했다. 그의 블로그에는 계속해서 디자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연재되고 있다.

전진영 기자  gugong81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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