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컬쳐 리뷰
뜻밖의 여정, 카타르 도하
김소리 기자 | 승인 2018.03.05 14:15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매력적인 볼거리가 가득한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는 꿈을 꾸어보셨나요? <투머로우>가 창간 기념 이벤트로 제안한 마케도니아 여행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 주셨는데요. 그중 소녀 시절의 꿈을 못다 이룬 어머니와 꼭 여행하고 싶다며 알찬 여행계획서를 첨부해 준 조민지 씨가 행운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요즘 어머니와 함께 가는 여행이 트렌드라죠? 카타르,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에서 드라마틱한 일주일을 보낸 모녀의 여행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민지 덕에 유럽을 다 가네!”
언니의 결혼 준비를 하다가 발견한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 그 한 장의 사진에서 이번 여행은 시작되었다. 수줍음과 꿈이 많았던 소녀. 지금은 꽃가게 사장님이 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기를 즐기는 그 소녀와 함께 낯선 땅으로 가보고 싶었다. 서로 의지하며 도전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언니의 결혼을 치르며 내가 엄마와 오롯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느꼈기에 더욱 이번 여행이 간절했다. 그때부터 일주일 간 퇴근 후 곧장집에 와서 자정이 넘도록 사연을 적고, 마케도니아를 조사하고, 여행 일정을 짰다. 몸은 고단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이미 엄마와 함께 그 나라에 있는 듯 두근거렸다.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여행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고, 엄마는 “민지 덕에 유럽을 다 가네.” 하시며 좋아하셨다. 직장 일로 바쁜 와중에 주말에 서점에 가서 동유럽 여행 서적을 사서 읽고 커플 보조백과 필요한 옷 등을 샀다. 엄마와 가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무척 빠듯했지만 그 분주함마저 즐거웠다.

도하행 카타르항공 QR859 여객기 이륙
드디어 12월 24일 밤, 우리는 카타르항공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약 11시간을 날아 환승지 카타르 도하하마드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5시 30분. 도하-스코페행 비행기는 오전 7시 이륙이었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우리는 여행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화장실에 들렀다 나왔다. 처음 와보는 중동의 고급스런 공항, 낯선 아랍어 문구와 황금빛 조명, 대리석 바닥 등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엄마와 나는 무빙워크를 타고 환승하는 곳으로 향했다.

도하 공항 면세점의 명물로 꼽히는 대형 테디베어
도하 공항 인테리어 공항 내부의 독특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igor-ovsyannykov

비행기를 놓치다
환승장에서 우리 티켓을 보여주자 직원 표정이 좀 이상했다. 문득 그의 손목시계가 보였다. 6시, 그리고 40분을 향해 있는 분침. ‘뭐?!’ 깜짝 놀랐다. 한 시간 정도만 머무니까 굳이 손목시계를 바꿔 놓지 않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들뜬 마음 때문이었을까. 환승장까지 가는 동안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줄 몰랐다. 부랴부랴 우리가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도록 돕던 직원은, 무전 연락을 받더니 멈춰 섰다. 게이트가 닫혔다는 것이다. 6시 45분, 이미 이륙 준비를 마쳐서 지금 가도 탈 수가 없다고 했다. 여러 번 묻고 요청했지만 안 된다는 대답뿐.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니 까매졌다.

도하-스코페행 비행기는 이틀에 한번씩 있었다. 주변국을 경유할 경우 더 늦어서, 27일 오전 7시 스코페행 비행기가 가장 빠른 최선의 선택이었다. 내가 이것저것 알아보고 연락을 하며 다니는 동안 엄마는 휴대폰을 충전하며 구석에 앉아 계셨다. 말할 수 없이 죄송했고, 힘들었다. 엄마는 “내가 같이 잘못했다”며 차분히 기다려 주셨는데, 엄마가 있어 속상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엄마의 존재 자체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휴대폰을 충전하느라 바닥에 앉아 계신 엄마. 비행기를 놓친 것을 원망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려 주셨다. 엄마의 존재 그 자체가 큰 힘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경유하려던 카타르로 입국했다. 도하에서 1박을 하고 26일 밤 공항에 돌아와 최종 결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겪어본 그 어떤 순간들보다도 가장 어두운 감정들로 가득했던 여덟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의 추측과 반대로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환상적인 1박 2일이 우리 모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긴 하루! 엄마와 나는 서로를 위로하고 또 함께 웃으며 계획에 없던 도하 호텔에서 잠이 들었다.

감춰진 진주, 도하를 발견하다
숙소가 있는 올드도하 쪽에서 뉴도하가 있는 해변 쪽을 향해 걸었다. 새까만 차도르를 입은 여자들과 하얀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들이 보인다. 흰색, 회색, 베이지색 등 단조로운 색감과 네모 반듯한 모양의 건물도 중동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국왕의 그림과 사진도 이색적이다. 상점, 자동차, 고층 건물 외벽 등 곳곳 에 국왕의 얼굴이 붙어 있다.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특징을 잘 살린 진주 조각상. 조명 장치가 있는 걸 보니 저녁에 봐도 멋질 것 같다.

수크 와키프 아트센터 Souq Waqif Art Center
큰 길 옆으로 돌 바닥의 골목길이 보여 들어섰다. 길을 사이에 두고 중동 특유의 건축 형식을 살린 2-3층 건물들이 쭉 이어진다. 야외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이 많다. 세련된 길거리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수크와키프 아트센터’라는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도하시의 지원을 받아 작가들이 공방으로 사용하는 문화공간이다. 천장이 높은 2층 건물로, 길쭉한 내부 양 옆 쪽에 긴 회랑이 마주한 형태다. 현재 도하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관람하고 사진촬영 및 구입도 할 수 있다. 국왕, 낙타, 꽃, 일상생활 등 다양한 주제의 유화들과 도자기, 조각, 자수 공예 등 여러 분야의 작품이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작가와 직원 모두 무척 친절했다. 카타르의 현대 미술 및 다국적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이곳에 들를 것을 추천한다.

골목길을 걷다 운 좋게 승마 행렬과 마주쳤다. 새하얀 아랍 전통 의상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던 도하 길거리.
도하의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Tamim binHamad Al-Thani는 1980년생의 젊은 왕이다. 도하 곳곳에서 왕의 권위와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전통 골목에 자리한 핸디크래프트 센터 Handicraft Center
근처에 ‘핸디크래프트 센터’라고 적힌 곳이 있다. 약간 굽어져 있는 전통 재래식 실내 골목에 아담한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상점 문 앞마다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사람들. 무엇을 물어보든 200%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발까지 길게 떨어지는 흰색 전통복에 대해서도 이곳 한 아저씨에게 자세히 들었다. 카타르 남자들의 유니폼 같은 이 옷은 일상복처럼 언제든 입는다고 한다. 전통복, 신발, 검 등 도하 수공예 물품과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골목은 금과 금장신구를 파는 ‘골드 수크Gold Souq’ 와도 연결된다.

시리아에서 도하에 온 지 4년이 됐다는 ‘나자’는 카타르시민권을 가진 ‘카타리’가 아니어도 예술 활동을 하는데 제약이 없다고 했다. 1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는 우리에게 커피를 대접해 주었다.
그림 속에 카타르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나타나 있다. 여성들의 다양한 표정과 생기 넘치는 생활 모습을 볼수 있어 좋았다.

진주 조각상The Pearl과 이슬람미술 박물관Museum of Islamic Art
골목을 나와 다시 해변을 향해 걸었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건너편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웨스트베이도 보인다. 해변에 대형 진주 조각상이 있다. 페르시아만에서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진주 채집으로 유명했던 카타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닷가에는 작은 유람선들이 항구를 따라 정박해 있고 그 뒤로 ‘이슬람 미술박물관’이 있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배경으로 인공 섬에 세워진 새하얀 박물관, 고풍스런 유람선들이 자아 내는 정취가 몹시 우아하다. 아름다운 외관만큼이나 내부에도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는전통 아랍 시장, 수크 와키프
야외극장
새들을 위한 탑
이슬람 미술박물관 앞에 선 엄마
얼굴 조각상

사라진 휴대폰
12시 체크아웃을 위해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로비에 들어서는데 뭔가 허전했다. 휴대폰이 없었다. 길에 떨구었는지, 택시에 두고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택시회사에 분실물 접수를 했다. 기사의 사진과 이름은 있었지만, 택시 번호 없이는 연락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막막했다. 전날 공항에서의 암흑 같은 시간이 재현된 듯했다. 그냥 휴대폰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택시회사, 경찰서 등 다 찾아가자고 했다. 엄마의 재촉에 다시 움직이게 됐다. 통신사에 연락했다가 구글 GPS 위치추적 기능을 알게 됐고, 엄마 휴대폰으로 내 지메일에 로그인했다. GPS 위치가 잡혔다. 곧바로 호텔 밖에 있던 택시를 탔다. 도하에서 30km쯤 떨어진 산업지역이었다. 좌표를 따라가니 아까 그 택시가 있었다. 택시기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결국 이전 기사를 만났고, 잃어버린 지 두시간 반 만에 휴대폰을 찾았다.

그때의 감동과 기쁨은 그곳까지 달려간 우리 셋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 후 택시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문화 마을 ‘카타라Katara’, 인공 섬 ‘펄 카타르Pearl Qatar’ 등 도하의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관광지를 구경했고, 저녁에 공항으로 왔다. 심장이 터질 듯 감격스럽고 행복한, 꽉 찬 하루였다.

도하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진주.자기 일처럼 나서서 휴대폰을같이 찾아준 방글라데시택시기사 ‘밀론’이다. 휴대폰을찾은 후 공항에 올 때까지,이 분의 택시를 타고 다녔던네시간 동안 우리는 참 행복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엄마 마음은?
“민지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 비행기를 놓치면서 비워지더구나.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자 오히려 편안해졌고 ‘진짜 여행을 시작해보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까지 생겼지. 도하에서 이슬람문화와 사람들을 대할 때 많이 낯설었지만 그들의 미소와 친절함에 모든 우려가 사라졌어. 그러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생명을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다급해졌지. 비행기를 놓쳤을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네’ 하는 정도였는데, 휴대폰 사건 때는 ‘이젠 끝났다’ 하는 마음이 들더구나. 하지만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휴대폰을 찾았지. 민지야,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감사하자. 그러면 감동받을 일이 이어 생기니까 말이야^^.”

고층 빌딩 외벽에 왕의 그림이 있는데, 도하 여행의 인상 깊은 점 중 하나가 어딜 가도 보이는 왕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한 번 놓쳤기 때문인지 카타르 항공 탑승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마케도니아로~
마냥 신나고 설렜던 출발과 달리, 황당한 실수로 인한 예상 못한 위기 상황을 연거푸 맞닥뜨리게 된 엄마와 나. 마케도니아에 가기도 전에 영화 같은 이틀을 보냈다. 우여곡절을 함께 극복 하면서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긴장과 감사를 얻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편견을 벗어 던질 수 있는 마음의 힘도 생겼다. 27일 드디어 우리는 스코페행 카타르항공 여객기에 탑승한다. 6시간을 날아가 덜커덩! 비행기 바퀴가 스코페 공항 착륙장에 닿자, 전 좌석에서 약속이나 한 듯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우리를 환영해주는 것만 같다. 그토록 도착하고 싶었던 마케도니아. 이곳의 첫인상은 소박함과 순수로 다가왔고 우리는 스코페의 감격스런 공기를 마셨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서막부터 심장이 쫄깃했던 이 여행은 과연 마지막까지 잘 이어질 수 있을까? 그 후에도 다이나믹한 순간들과 고마운 인연이 함께한다. 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에서 펼쳐진 엄마와 나의 여행기는 다음 호에 이어진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소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