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미국 시장 의존도 낮춰 한숨 돌렸지만 중견 기업 타격 불가피

정부, 통상무역 대응 내부 인력 부족 등 풀어야 할 숙제 산재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재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혀 국내 산업 타격이 불가피한 가운데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철강업계 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처음으로 보호를 받을 것”이라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오랜 기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철강재 관세 일괄 부과의 근거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앞세우고 있으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은 이르면 다음주중 미 대통령의 서명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에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4월 철강 수입안보 영향조사를 실시해 백악관에 올해 1월 보고서를 제출했다. 제출된 보고서에는 총 3가지 안이 권고됐다. 1안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최소 24%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었으며, 2안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포함한 12개국을 대상으로 최소 53%의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는 17년 수출규모로 쿼터를 부여하는 안이었다. 이와 함께 모든 국가에 17년도 대미 수출의 63% 쿼터를 설정하는 안도 제시됐지만, 트럼프 정부는 1안으로 가닥을 잡은 것.

이에 우리나라는 최소 53% 관세 폭탄이 부과되는 최악의 사태를 면했지만 대미 수출에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산 철강재의 미국 수출량은 2014년 이후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에 전체 수출량 중 미국비중은 11.2%이며 전체 생산량 대비 대미 수출량은 4.6%에 해당한다.

국내 한 철강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미국 관세 폭탄 역시 대기업에 비해 국내 중견 강관업체나 철강업체 등 대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 중견 기업에서 부담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수출지역 다변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정부와 함께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지난달 1일 19:30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에서 서울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개정협상」결과와 관련하여, 취재 기자단에게 스탠딩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지난달 1일 19:30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에서 서울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개정협상」결과와 관련하여, 취재 기자단에게 스탠딩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현재 방미중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Gary Cohn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 Wilbur Ross 美 상무부 장관 및 의회 주요 인사 등을 접촉해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하고,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채택되도록 미국 측에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미국이 최종 결정을 하기 전까지 대미 외부 접촉활동(아웃리치 활동)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마이클 비먼(Michael Beeman)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수석대표)를 비롯한 한미 양국 정부대표단 30여명이 지난 1월 31일 가진 「한미 FTA 제2차 개정협상」 회의 당시 모습.(사진 산업통상자원부)
마이클 비먼(Michael Beeman)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수석대표)를 비롯한 한미 양국 정부대표단 30여명이 지난 1월 31일 가진 「한미 FTA 제2차 개정협상」 회의 당시 모습.(사진 산업통상자원부)

대기업에서는 이미 미국 시장에서 다른 국가로 수출 시장을 바꾼 상태라 이번 관세 조치에도 대처할 여력이 있지만, 미국 틈새시장을 노려왔던 국내 중소 강관업체들의 타격이 예고된 가운데, 갈수록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는게 업계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는 2일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한 WTO제소 검토에 나섰다. 하지만 WTO제소 실효성을 두고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관세 적용이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방안이 채택되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수입 품목에 무역 제재를 가하는 무역확장법 232조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21조의 ‘안보 예외’ 조항에 해당된다는 해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설사 WTO에 제소해 승소하더라도 미국이 시간을 끌면 한국 기업의 피해는 지속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부 경제, 기업인들은 그동안의 미국 통상 압박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앞서 2월 20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서울 매경미디어센터에서 가진 초청강연에서 "미국이 (모든 국가의 철강 수입에 대해) 쿼터를 할당하거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채택하면 WTO 제소를 해도 다툼 요소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이어 백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한미동맹은 동맹대로, 경제는 또 다르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분리해서 가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라며 "무엇보다도 국익을 우선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경제, 기업인들은 미국 통상 압박에 대한 이러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과 외교안보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정부 방침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통상과 외교안보를 분리해 대응한다고 하면 통상 측에서는 WTO 제소 수단밖에 없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큰 효과가 없을 것 같다"면서 "오히려 산업부 장관이 통상 압력이 외교안보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국무회의 때 얘기하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과 함께 전방위로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오는 11월 있을 미국의 중간선거까지 갈수록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發) 보호무역주의 파고에, 우리 정부가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인력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국내 통상정책 라인을 어떻게 재정비할지 등 중장기적 대책 마련을 어떻게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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