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강연

우리는 살면서 어떤 일 앞에서는 사실 여부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일 앞에서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감정은 사실과 달라서,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이 있으면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잘못을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화를 냅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하는 일들을 다 좋게 받아들입니다. 마음속에 사실과 감정이 혼재되어 있으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누구나 직장에서 일할 때에는 자신이 맡은 일을 냉철하게 생각하고 정확히 처리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은행 창구에서 근무한다면 돈의 출납을 정확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기쁜 날도 있고 속이 상한 날도 있겠지만, 일에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켜 기쁘다고 마음이 들떠서 돈을 더 주거나 우울하다고 돈을 덜 주지도 않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업무를 할 때에는 감정과 사실을 분별하고 분리할 줄 압니다.

그런데 직장 생활과 달리 부부 사이에서는 사실 여부보다 감정 개입이 더 많은 편입니다. 자신이 배우자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의 일을 처리할 때에는 다른 일보다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감정을 앞세우다가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목회를 할 때 만난 어떤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부인은 건축 현장에서 벽돌을 지고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체격도 크고 힘도 세서 남자들과 같이 일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일을 잘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전에 그 부인은 일을 마치고 나면 늘 술을 한 잔 마셨는데 그게 성에 차지 않아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대폿집에 들러 한 잔을 더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서 동네가 떠나가도록 흘러간 옛 노래들을 불러댔고, 이튿날 아침에 술이 깨면 전날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고 다녔답니다.

그렇게 살던 부인이 어느 날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한번은 그분과 제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은 돌팔이 치과의사였어요. 제가 왜 그 사람과 이혼한지 아십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제가 왜 그랬냐고 물으니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부부가 텔레비전을 같이 보고 있었답니다. 남편이 드라마에 나온 어떤 배우를 보고 “저 여자, 예쁘다”라고 했는데, 아내가 “예쁘면 데리고 살지, 그래”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냥 농담이었는데,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남편이 아내의 말을 다시 받아쳤습니다.

“내가 당신한테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당신하고 결혼하기 전에 진짜 예쁜 여자하고 사귀었어. 그 여자하고 결혼할 건데 어쩌다 당신하고 결혼했네.”

이것도 역시 농담이었지만, 아내도 지기 싫어서 또 받아쳤습니다.

“나도 이제서야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당신하고 결혼하기 전에 영화배우처럼 생긴 남자와 만났었어.

아, 나도 그 남자와 결혼할 건데….”

아내가 그렇게 나오니까 기분이 상한 남편의 말이 조금 더 강하게 변했습니다.

“살지 그랬어? 지금도 안 늦었다. 그 남자한테로 가라.”

아내도 말이 거칠어졌습니다.

“가라고 하면 못 갈까 봐?”

“그래, 가라.”

“좋다. 우리 도장 찍자!”

그렇게 없는 사실들을 꾸며서 서로 싸우다가 부부가 어이없는 이혼까지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었는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감정에 휘말려 귀한 가정이 깨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정확하지 않는 정보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반대로 정확한 정보인데도 사실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좋은 감정이나 나쁜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사실 여부부터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합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상용화되었지만,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던 시절에 카메라의 정석은 니콘 FM2였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셔터 속도가 보통 125분의 1초인데, 4,000분의 1초까지 찍을 수 있는 FM2는 특히 스포츠 기자들이 갖기를 원하는 모델이었습니다. 대부분 125분의 1초로도 촬영이 가능하지만, 스포츠 기자에겐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잡아낼 수 있는 4,000분의 1초 카메라가 꼭 필요했습니다. 카메라의 세계에서처럼, 마음의 세계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사실과 감정들을 세밀하게 분별해서 잘 정돈해 둘 필요를 느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사실도 대충 알고 넘어가는데, 대충 아는 것은 정작 하나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카메라 셔터 속도가 빨라야 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히 잡아내듯이, 우리의 마음도 정밀하게 보아야 정확히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실과 감정의 문제에 대해 목사의 입장에서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삶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앙을 대충대충 머릿속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들은 더욱 힘써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면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를 바라며 믿다가, 현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나타나면 ‘말씀은 성경에 적힌 것이고, 실제로 기도한다고 정말 이루어지나?’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제가 어려서 교회에 다닐 때 들었던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아, 그 마을 교회의 목사님이 주일예배 후에 신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과 신자들이 산을 향해 가는데, 목사님의 막내아들이 우산을 들고 따라왔습니다. 당시에는 우산이 아주 귀했기에, 목사님이 “이놈아, 멀쩡한 날에 왜 우산을 들고 다녀?”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아빠, 비가 오라고 기도하러 가잖아요”라고 하자, 목사님이 “기도한다고 비가 오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구하라, 주실 것이요’를 믿는다면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했어. 구하기만 하면 돼.’ 그렇게 생각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사람들도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구하기보다 자신의 느낌이나 판단, 경험에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가? 내가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는가? 내가 기도하고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가?’ 이렇게 한 단계씩 파고 들어가면서 대충 알고 넘기려는 것들을 마음에서 정리해야 합니다. 마치 카메라로 움직이는 물체를 잡아내듯, 하나하나 짚으면 확실한 사실로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감정에서 우러난 기도는 감정이 바뀌면 기도도 같이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신앙생활 뿐 아니라, 세상살이에도 누구나 아는 보편적인 사실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거나, 배우자는 소중한 존재라거나….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보편적 사실을 평소 마음에 담고 사는 것 같지만, 어떤 일로 부모나 배우자와 갈등이 생기면 마음에 담아두었던 보편적인 사실들이 단번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 사실들을 알고는 있으나 마음으로 정확히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제가 어느 대학의 총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를 읽어주었습니다. 총장님이 자기도 잘 아는 내용이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다음에 나오는 24절을 읽어 보라고 했고, 총장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읽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냐고 제가 물으니,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구절을 다시 읽고 물었습니다.

“총장님의 성경에는 ‘Being justified’라고 적힌 부분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의롭게 했다고 하시는데 거기에 무슨 조건이 더 붙겠습니까?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열심히 기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 왜 총장님은 열심히 기도 해야 한다며 다르게 말하십니까?”

제 말에 그분이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을 읽었으나 자기 생각대로 이해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하면서도 자기의 생각이나 경험을 섞어서 믿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총장님의 경우처럼 있는 사실도 자기 생각에 맞춰 왜곡하는 일이 생깁니다.

어떤 사실이든지 우리 마음에 정확히 뿌리를 내리면 삶이 달라집니다. 그 사실이 마음을 잡아 주어 순간적인 감정을 따라 움직이지 않게 해주기 때문 입니다. 마음에 뿌리내린 사실이 많을수록 삶은 건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실에 대해 ‘진실로 그러한가?’ 되묻고, 진실로 그러하다면 마음에 새겨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분명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삶의 형태가 다릅니다.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고 마음에 일어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뿌리내린 기준들을 따르기에 삶이 밝고 건전합니다.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어도 자신이 다 아는 내용이라면서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자연히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두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직장 일은 깔끔하게 하면서, 마음에서 정리해야 할 일들은 어지럽게 늘어놓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 사실을 막연히 알고 있는가, 마음에서 확증했는가?’ 하며 한 부분 한 부분 더듬어가면서 사실과 감정을 정리하고 정돈해야 합니다. 마음이 흐트러져 있을수록 사실이 아닌 허망한 생각에 휘둘려, 불행으로 이끌리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결국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판단을 따라 살던 삶에서 마음에 확증한 사실들을 따라서 사는 삶으로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복잡해서 귀찮기 때문입니다. 그냥 일어나는 생각대로, 일어나는 감정대로 살아갑니다.

만약에 그릇들이 부엌에 뒤엉켜 있으면 주부가 정돈을 하지 않겠습니까? 숟가락은 숟가락대로 서랍에 넣고 접시는 접시대로 선반에 정돈해 놓으면, 주부는 어두운 밤 캄캄할 때라도 그냥 가서 숟가락은 서랍에서, 접시는 선반에서 척척 찾아낼 것입니다. 부엌에 정돈된 물건들처럼, 마음 안에 있는 여러 사실들도 정돈되어야 합니다. 정돈되지 않은 것들은 시간이 날 때 하나씩 꺼내 신중하게 사고하면서 정돈해야 합니다. 같은 사실도 관념으로 알고 있는 것과 마음에 정확히 자리 잡은 것은 매우 다릅니다. 사실이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그것을 근거로 꿈을 꾸고, 그 꿈이 실현될 것을 확신하며 그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때 우리는 행복을 만납니다.

글 |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의 설립자이며 목사이다. 세계 최초로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청소년 문제 전문가로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한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 곧 마음의 세계를 성경에서 찾은 그는 젊은이들에게 물질세계가 아닌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나를 끌고가는 너는 누구냐>에 이어 <마음을 파는 백화점>을 냈고, 지난해엔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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