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굿뉴스코 단원 김영아 스토리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만나면 여러 학생들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외롭고 힘들었는데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니 큰 사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김영아 씨의 마음 또한 그 사랑에 녹아내렸다. 2017년 한 해 대만에서 봉사단원으로 지내며 받은 사랑 때문에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의 스토리는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송이였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늘 혼자였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안 좋은 날이면 집에 돌아와 자해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부모님께 소리를 지르며 풀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나를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고립된 채 학교생활을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권유해서 정신과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 분노조절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어서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병원에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끝없이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한 친구의 소개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나도 외국 어딘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낸다면 변할 수 있을 거야.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고 생활을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 들어 봉사단에 지원했다.

나무도 꽃도 예쁘고 사람들도 친절한 대만에서 화장실에 숨어버린 날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비자를 발급 받고 항공권을 예약하는 일 등이 무척 낯설고 어려웠는데, 다른 봉사단원들과 함께 준비하면서 2017년 1월 30일에 무사히 대만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대만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다. 나무도 예쁘고 꽃도 예쁘고 사람들도 친절해 첫인상은 대만족이었고 모든 것이 좋았다.

온화한 기운이 이곳저곳에 감도는 대만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하기 힘든 부분들이 생겨났다. 나는 마음이 약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활동을 하다보면 자주 불안했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한번은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단원들과 함께 댄스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내가 방해만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두렵게 느껴져 화장실로 숨은 적이 있다. 이전에 한국에서 지냈던 것처럼 혼자 가만히 있고만 싶어서 화장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굿뉴스코 봉사단 대만 지부장님 부부와 모든 단원들이 내가 없어진 걸 알고 나를 찾아 건물 구석구석을 헤맸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지부장님 사모님이 화장실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사모님은 “영아야, 나는 딸이 없어. 네가 우리 딸 하면 되겠다.”라고 하셨다.

내 마음이 힘들고 몸이 아플 때마다 지부장님 부부는 부모님처럼, 봉사단원들은 가족처럼 나를 돌봐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나에게 스며들어오자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지부장님, 다른 단원들과 함께 대만의 한 대학을 찾아가 봉사단 활동과 대만 월드캠프를 홍보했다.
지부장님, 다른 단원들과 함께 대만의 한 대학을 찾아가 봉사단 활동과 대만 월드캠프를 홍보했다.

‘속마음을 말하면 나를 싫어할 거야’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따뜻한 배려 속에서 내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지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이나 봉사활동을 하는 중에 자주 갈등이 일어났다. 다른 단원들의 사소한 말에 상처를 받아 화가 날 때가 자주 있었는데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있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잠도 잘 못 자서 예민해졌고 사람들에게 화가 나거나 불만스러운 일들을 잠꼬대로 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나를 싫어할 거야’라는 염려 때문에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점점 고립되어 갔다.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서 급기야 짐을 싸고 지부장님 사모님께 말씀을 드리자 사모님이 이유를 자세히 물으셨다. 다행히 사모님께 그 동안의 내 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었는데, 사모님이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영아야, 사람들이 너의 안 좋은 모습을 보면 너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야. 실제로 친구들이 너를 싫어했니? 정확히 모르잖아. 사실이 아닌 생각들이 너를 혼자 있게 만들었고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도록 했어. 영아야, 나는 네가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해도 싫어하지 않아. 너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를 언제나 사랑하시지. 나는 네가 이곳에 있으면서 부담을 뛰어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 너를 도와줄게. 너는 변할 수 있어.”

사모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혼자 있고 싶은 이유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러워 피하려는 마음에서 생긴다는 걸 알았다. 고집도 세고 잘못된 생각에 잘 빠지는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지부장님과 사모님이 너무 고마웠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한 발짝씩 걸음을 옮겨 놓으면 나도 변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솟아났다.

약 없이 잠들고 101층 빌딩에도 오르게 되다
2017년 5월 초에 봉사단이 주최하는 큰 행사가 대만 타이중에서 열렸다. 지부장님과, 행사에 초청받아 오신 마인드교육 강사님과 봉사단원들이 함께 차를 타고 행사 장소로 이동하는데, 지부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강사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영아가 정말 많이 변했어요. 표정도 밝아졌고 아주 씩씩해졌어요.” 지부장님의 이야기에 나는 조금 놀랐다. ‘나는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지부장님이 나를 너무 좋게 보시는 거 같아’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달라진 것이 여러 부분에서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게 정말 싫었다. 그런데 자주 양로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고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또 사람들 앞에서 댄스도 하고 준비한 프로그램들도 진행했다. 처음에는 부담 때문에 안 하고 피하려고 했는데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사람들 앞에 서고 댄스를 하는 게 즐거워졌다. 한국에서는 항상 피하고 살았는데 대만에서 부담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또 나는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무서워서 에스컬레이터도 타지 못했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지하철을 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꼭 타야했기에 지부장님과 사모님은 나에게 근처 백화점에 가서 혼자 에스컬레이터 타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혼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높은 건물에도 올라간다. 얼마 전에는 대만에서 제일 높은 101빌딩에도 갔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대만의 경치를 보고 웃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내가 약을 먹지 않아도 푹 잘 잔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일깨워준 대만의 사랑
나는 그동안 내가 힘든 것밖에 몰랐다.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면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고 특히 부모님을 슬프게 만들었다. 때때로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어? 그냥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엄마 아빠도 나 같은 딸이 없으면 속이 더 편할 거야!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지?”라고 심하게 말해서 부모님이 많이 우시기도 했다. 당시 내 마음에는 원망과 불평, 어두움만 가득했다.

대만에 도착한 뒤 엄마와 한 첫 통화에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며 생떼를 썼다. 그런데 후에 지부장님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포기하지 않고 부담을 넘어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엄마에게 전화해 그런 마음을 전하며 죄송하다고 했더니 엄마는 괜찮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그때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내 모습이 어떻든 내가무슨 말을 하든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무척 감사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늘 함께 지냈지만 부모님을 원망했는데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이 느껴지니 행복했다. 대만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나를 세밀하게 생각해주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참 많이 났다.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고 살았는데 몰랐구나.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그러셨던 거구나.’ 나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그것이 큰 힘이 되어 대만에서 봉사하고 도전하고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고소공포증세를 가졌던 김영아 씨가 마음이 건강해져서 101빌딩 89층에 올라가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고소공포증세를 가졌던 김영아 씨가 마음이 건강해져서 101빌딩 89층에 올라가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내게 대만이 소중한 이유
대만에서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문득문득 신기했다. 항상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웃을 줄 모르는 내가 아주 사소한 일에 크게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내게 행복하고도 밝은 웃음을 선물해 준 대만은 나의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지난 1년, 대만의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 친절한 사람들 때문에 즐겁고 행복했지만 내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 준 소중한 시간이기에 언제 까지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이름을 한자로 ‘金英我’라고 쓴다. 영英은 뿌리를 뜻하는데 그래서 종종 내 이름을 보며 뿌리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꽃이 피기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뿌리이다. 뿌리가 땅에 단단히 잘 박혀 있으면 비바람이 쳐도 견뎌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김영아도 그렇다. 촉촉한 사람들의 마음의 땅에, 사랑의 땅에, 희망의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진한 향기를 머금은 꽃으로 피어났다. 그 향기로 어두움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고 내가 맛본 변화의 행복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Mini Interview

대만에서의 적응 방법은?
일단 음식과 날씨를 사랑하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대만에서 들은 잊을 수 없는 한마디는?
지부장님이 제게 ‘대만의 보배’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것 같아요.

가장 좋았던 봉사활동과 그 이유는?
양로원 방문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곳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위해 노래도 부르고 댄스도 했는데,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어요. 몸이 아픈 분들을 보면서 우리 할머니가 건강하신 것이 너무 감사했고, 우리 할머니를 대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웃는다고 했는데 그 비결은?
내 욕심과 욕구가 너무 커서 쉽게 만족하지 못했고 웃을 수 없었어요. 항상 불만만 많았지요. 욕심을 버리니까 금방 행복해졌어요. 사소한 일에도 웃게 되고요. 요즘은 너무 자주 웃어요.

‘대만에서 봉사활동하면 이것만은 제대로 배운다’ 하는 게 있다면?
부담을 넘게 되고 사고하는 힘이 생깁니다.

대만 홍보를 한다면?
17기 여러분! 모두 대만으로 오세요! 진짜 좋은 나라입니다. 물도 좋고 산도 좋고 음식도 좋고, 무엇보다 그동안 받아 본 적이 없는 큰 사랑을 받을 겁니다. 제대로 훈련 받을 수 있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대만으로 오세요!

글 | 김영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으며 어두운 학창 시절을 보내던 중 친구의 소개로 굿뉴스코 봉사단을 알게 돼 16기 대만 단원으로 지원했다. 양로원 봉사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밝은 웃음과 건강을 되찾은 그는 대만에서 맛본 사랑과 기쁨을 담은 체험담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겠다는 작은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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