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해외봉사 해외봉사 이야기
인생샷은 가장 어려울 때가 진리!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긍정적인 마인드로 즐기는 법
전진영 기자 | 승인 2018.02.10 19:15

지난해 미국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최은규 씨. 그의 봉사활동 사진엔 유난히 웃음이 나오는 밝은 표정이 많다. 그중 한 컷이 표지로 선정되어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일 년의 해외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두 시간 전이었다.

표지 사진에 이어 두 번째 인생샷. 일의 고단함을 떨쳐내려는 기개가 돋보인다.(오른쪽이 최은규)

표지 사진의 느낌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이때 무척 즐거웠나봐요.
5월에 도미니카라는 나라에 영어캠프 봉사를 갔다가 건물 공사 작업을 도와줬는데, 제 인생에 그렇게 힘들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너무너무 덥고 지쳐서 봉사활동 자체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매일 손빨래 해야하고, 한창 나이라 밥을 먹어도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프고, 시원한 콜라도 생각나니까 한국에 가고 싶더라고요. 일하다가 머리 위로 비행기만 지나가면 소리 질렀죠. 나 좀 데려가라고요.

하지만 한국에서 술과 노는 것에만 빠져 있었던 제 삶을 떠올리니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이 하루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어떤 순간에도 즐길 줄 아는 느낌’이란 주제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 사진을 보고 우리는 웃음이 터졌고, 그때부터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이 많이 생겨났어요.

봉사 가기 전에 한국에서 어떤 대학생이었나요?
부모님이 일 때문에 자주 집에 못 들어오셔서 대신 용돈을 주시다 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어요. 자주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술 마시고 게임하며 놀다 보니 낮과 밤이 바뀌어서 학교도 제대로 못 갔어요. 솔직히 그런 삶이 재미있고 편했지만, 어느 날 내가 이렇게 살다가 5년,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니 매우 걱정이 됐어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냉장고 안에 가득 차 있던 술을 모두 내다 버리고 친구들도 멀리했는데, 결국 다시 찾게 되더라고요. 스스로는 저의 잘못된 삶을 바꿀 수 없어서 고민을 많이 하던 중에, 주변에서 해외로 봉사활동을 가보라고 추천해서 지원을 했고 미국으로 왔어요.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후진국이 아닌 미국을 봉사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번은 미국 할렘 빈민가 소식이 나온 잡지를 봤어요. 폭력과 마약으로 어둡게 사는 사람들에게 봉사단원들이 찾아가서 그들 마음에 소망을 심어주는 내용들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을 지원해서 갔고 할렘 사람들을 만나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오픈하우스라는 이벤트를 열어서 할렘에 사는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할렘에는 길거리에서 자는 노숙자들도 많고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많이 나서 물어봤더니 마리화나 냄새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국가에서 지원받는 아파트와 돈이 있어서 일은 안 하고 계속해서 마약만 하고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오픈하우스에 초대하니 매주 100명 이상 찾아왔어요.
우리는 태권도 공연, 부채춤, 한국 노래 등 문화공연을 보여주고 한국음식도 대접했어요. 그리고 마인드강연을 했더니 할렘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가족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가족이 없이 혼자 산다고 해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지원보다 함께할 가족이었어요. 혼자서 외로워서 마약을 찾게 되고 쉽게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꾸준히 와서 우리와 상담을 나누면서 친구가 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행복했어요.

최은규 씨와 함께 봉사했던 대학생 단원들과 함께. 모두 똑같이 밝은 웃음을 가졌다. (맨 앞 오른쪽이 최은규)

봉사하면서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나요?
뉴욕에서 월드캠프를 하는데 제가 맡은 역할은 식당 봉사였어요. 아카데미 준비, 손님맞이, 청소, 그리고 팀 리더가 있는데 저만 여자들이 있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속으로 ‘나는 영어를 못하잖아. 그래서 다른 일은 못하고 식당 일만 할 수밖에 없는 거야’라는 알 수 없는 불평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 귀한 경험한다. 감사하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제 마음속 불평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고 좋지 않은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제가 좋아하는 것만 따라서 살아왔지만 잘된 것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 제 마음을 바꾸어 ‘귀한 식당일’을 하게 되니, 무척 행복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제 생각, 느낌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듣고 따랐어요.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도미니카에서 돌아와서 트리니다드라는 작은 섬나라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시까지 일하고 저녁 8시에 자고, 주말에는 모든 주민이 주변 섬으로 휴가를 떠나는 나라였어요. 그 작은 섬나라도 자기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과 문란한 성생활로 문제가 많았어요. 매일 사람들을 초청해서 마인드강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순수해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줬어요. 제가 노래만 부르면 1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같이 춤을 췄어요. 이 작은 나라의 순수한 사람들이 저 때문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행복했어요. 봉사하러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뉴올리언스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준비를 했어요. 집마다 초대 편지를 돌렸는데, 한 흑인이 나와서 편지를 찢어버렸어요. 사람들이 너무 무섭고 거칠어서 힘들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곳은 12년 전에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도시의 70퍼센트가 물에 잠겼고, 그 혼란한 시기에 각종 범죄가 일어나 미국에서 손꼽히는 위험한 도시 중에 하나가 된 곳이었어요. 사람들은 그때의 사건으로 누구하나 쉽게 믿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이후 저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덩치 크고 무서워 보이는 사람에게도 직접 편지를 주며 초청했어요. 이것은 아주 좋은 크리스마스 행사라고 소개하면서요. 드디어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열리던 날, 그렇게 까칠하던 사람들이 줄지어 공연장에 들어오더라고요!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공연을 해줘서 감사해요. 내년에도 와주세요”라고 인사하며 돌아갔어요. 정말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어요.

도미니카의 시골 마을 캄푸에서 즐겁게 샤워 중인 최은규 씨와 현지인 친구. 마을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손님을 위해 자기가 쓸 물을 양보하여 양동이로 두세 통이나 되는 양의 물을 쓸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최은규 씨를 위해 이불을 쌓아 침대를 만들어 주고, 잘 때 모기에게 물리지 않도록 모기약도 사방에 놔주었다고 한다. 가난하지만 풍성하게 베풀 줄알고, 친구의 말 한마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또 다른 인생샷으로 남았다.

이제 곧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텐데 봉사자로서 마지막은 소감은 어떠세요?
봉사 와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모든 순간들이 가장 행복한 인생샷으로 남았어요. 피부와 체력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요.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옛날처럼 지낼까 봐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에요. 한국에서 게임하고 재미있는 것 다 찾아봤지만 봉사 1년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거든요. 이제까지 방황하면서 흘려보낸 시간들을 거울 삼아 앞으로 값진 일들에 도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최은규
미국에서 일 년 간의 봉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미국에서 좌충우돌하며 행복한 순간을 여러 번 만나며, 부정적이었던 그의 사고방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어려울 때 빛을 발하는 그의 재기 발랄함을 담은 사진이 이번 표지로 당당히 실렸다.

전진영 기자  gugong815@nate.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진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