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피플
내 인생의 쓴맛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파라과이 국회의장 페르난도 루고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01.31 22:53

파라과이 국회의장인 페르난도 루고 상원의원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인디오 등 소수계층의 권익을 대변하며 ‘빈자貧者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신체적으로는 임파선암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었고, 정치적으로는 기득권 세력의 탄압과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온 그는, 외모는 부드럽지만 마음은 바위처럼 단단한 리더였다.

파라과의 국회의장 페르난도 루고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활동했다. 시골 선생님으로 있던 중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사제가 되려고 신학교를 졸업했고, 1994년부터 파라과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산페드로 교구의 주교로 일했다. 극빈층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치는그에게 사람들은 ‘빈자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 지지에 힘입어 2008년 5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지금은 국회의장으로 있다.

고난의 연속이었던 루고 의장의 생애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루고 의장이 테이블에 놓인 차를 마시며 물었다. “이 차茶는 무슨 차입니까?” 통역이 ‘한국의 특산품인 인삼차’라고 답하자, 그는 “정말 맛있네요. 꿀이나 설탕을 넣었는지 달면서도 쓴 게 꼭 우리 인생을 닮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한마디였다. 그가 말하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은 무엇인지 궁금해져 그 말의 의미를 그에게 물었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맛이 있지요. 단맛, 쓴맛, 신맛….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느끼는 마음의 맛은 단맛이겠지요. 반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때는 쓴맛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쓴맛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쓴맛은 인생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인생이 늘 장밋빛일 수는 없잖아요? 좋은 일만 계속 생긴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요. 쓴맛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치열하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루고 대통령이 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답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과 외교문서에서명하는 루고 전 대통령

그 말대로라면 루고 의장의 인생은 큰 쓴맛의 연속이었다. 그가 네 살 되던 1954년, 파라과이 육군 총사령관이었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후 스트로에스네르는 장장 35년간 권력을 독점하며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반대 세력은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하거나 투옥 또는 추방하는 등 인권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어린 루고의 가족 역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루고의 아버지는 무려 스무 번이나 감옥에 갇혔고, 그의 형들도 해외로 추방당했다. 원치않게 소년 가장이 된 루고는 어머니와 함께 길거리에서 우유와 빵, 과자를 팔아 살림에 보태야 했다.

사람이 어려움을 겪으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게 보이는 법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는 빈민층의 삶을, 어려서부터 가까이서 지켜본 소년 루고는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고교 시절 루고는 전교 3등 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고, 총학생회장을 맡을 만큼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했다. 아버지는 그가 법관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사범학교로 진학했다. 시골 마을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당시 파라과이에는 교사가 부족해서 독일, 일본, 폴란드에서 온 가톨릭 사제들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나마 시골에는 교사가 더 귀해서 집이 가난하거나 인디오, 원주민인 과라니족 출신 아이들은 공부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시골에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면 절 보고 맨발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루고는 사제가 되기로 하고 열아홉 살 되던 1970년 신학교에 입학했다. 1977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는 5년 동안 에콰도르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1982년 선교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조국 파라과이의 정세는 오히려 전보다 더 악화되어 있었다. 여전히 권좌를 차지하고 있던 대통령 스트로에스네르는 훨씬 무자비하고 엄격한 통치로 나라를 다스리던 중이었다.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빈민층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고는 독재정부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의 언행은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남미국가연합UNASUR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잡았다! 이 녀석 잘 생겼구나.” 대통령 시절에도 그는국민들과 격의없이 어울렸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거리에서 가진 지지자들과의 만남에서 인사하는 루고.

61년 만에 독재정권을 교체시킨 ‘빈자의 대통령’
‘정부에 의해 쫓겨나느냐, 내 발로 나라를 떠나느냐?’를 놓고 숙고하던 루고는 1년 만에 다시 조국을 떠났다.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간 것이다. 사회과학과 경제 분야에서 학위를 받고 1987년에 귀국한 루고는 산페드로 지역의 다섯 개 대학을 돌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산페드로는 파라과이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길을 가다보면 예전에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절 알아보고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하고 인사를 해 옵니다. 누군가의 인생에 가르침을 주고 도움이 되었다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이지요.”

2년 뒤인 1989년, 마침내 스트로에스네르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임 대통령인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역시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터라 민주화에 소극적이었고, 말년에는 부정선거를 저질러가며 같은 당 대선후보였던 와스모시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이후로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들도 권력 남용, 뇌물 수수, 무능력 등 오점을 남기며 별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급기야 2006년 수도 아순시온에서는 빈민층의 주도로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이때를 기점으로 루고는 강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94년에 저는 산페드로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성직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빈민가 구호활동을 벌이고 토지개혁을 주장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파라과이 원주민의 권익을 대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지요.”

2008년, 파라과이 여덟 개 야당과 사회단체의 연합체인 ‘애국동맹’의 대선후보로 추대된 그는 42.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파라과이로서는 61년 만의 정권교체였다. ‘파라과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 누구나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의료혜택을 누리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루고의 목표였다. 하지만 루고가 자신의 뜻대로 정국을 이끌기에는 지지기반이 너무 미약했다. 파라과이 국회는 상원 45석, 하원 80석으로 구성된다. 그 중 루고가 소속된 애국동맹의 의석은 하원 2석에 불과했다. 그 전까지 집권여당이던 콜로라도 당은 상원 15석, 하원 29석을 차지하며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2012년은 루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해였다. 2010년 8월, 루고 대통령은 정기검진에서 임파선암 진단을 받았다. 브라질까지 오가는 1년 5개월 간의 치료 끝에 2012년 1월,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그 해 6월 15일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파라과이 동부 쿠루과티에서 대규모농장을 점거하고 있던 농민 150명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충돌은 총격전으로 번져 농민 11명과 경찰 6명이 사망했다. 국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루고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들끓었고, 결국 열흘 만에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환담을 나누는 모습.
이번 일정에는 여의도 국회 방문이 있었다.
대한전선 최진용 CEO를 만나 경제교류 면에서 자국 투자를 요청했다.
그라시아스음악학교에서 열린 루고 의장 방문기념 음악회

숱한 어려움을 경험하며 체득한 겸손과 배려
가난, 정부의 탄압, 암, 그리고 대통령직 사퇴까지…. 그 중 하나만으로도 여느 사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쓴맛’들이었지만, 루고는 그 모든 고난을 오히려 달게 받아들였다. 그가 대통령궁을 떠나던 날, 루고를 지지하는 수많은 파라과이 국민들이 국회로 몰려들어 사퇴반대 시위를 펼쳤다.

“저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대부분 농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회의 뜻을 따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더 큰 소요사태가 벌어져 더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방한 동안 그를 가까이에서 취재하며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그의 겸손과 소탈함 때문이었다. 그가 인천공항에 내린 것은 시각은 밤 11시 30분. 그는 대만에서 대통령, 국회의장, 외교부 장관 등 정부 요인과 대담을 갖고 공장까지 견학하는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입국하는 길이었다. 피곤할 법한데도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마중 나온 사람들과 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 ‘늦은 시각까지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다음 날은 아침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뚝 떨어진,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춥지 않으시냐?’는 수행원의 물음에 그는 ‘그래도 중간중간 햇빛이 비칠 때는 따뜻하다’며 농담을 건네는 여유를 보였다. 일선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자신을 환영하러 나온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추운 데 나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았다. 루고 의장의 방한 동안 그를 수행통역한 이찬미 씨는 “의장님은 자신을 남에게 맞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습관이 배어 있다. 그 마음이 느껴졌기에 의장님을 수행한 사흘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기회가 되면 다시 의장님을 통역하고 싶다”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작은 호의에도 크게 기뻐하며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 그 마음의 세계는, 어쩌면 인생에서 숱한 어려움을 경험하며 형성된 것은 아닐까. 쓴 약을 먹은 뒤에 먹은 사탕이 유난히 더 달게 느껴지듯 말이다.

이날 루고 의장은 여의도 국회, 대전, 경북 김천, 서울로 이어지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첫 방문지인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를 만나 환담했다. 우 대표는 ‘1962년 두 나라가 수교한 이후 우리 교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파라과이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루고 의장 또한 ‘이번 방문을 통해 두 나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라며, 양국이 서로 존중하며 같은 마음으로 협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항으로 그를 환영하러 나온 봉사단원들과 인사하는 모습.
본지 편집장과 인터뷰를 하는 루고

“이 표창은 청소년을 위해 일하겠다는 서약”
이어서 루고 의장 일행은 대전의 그라시아스 음악학교로 향했다. 2009년 2월 설립된 그라시아스 음악학교는 재학생들이 국내외 콩쿠르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등 신흥명문 예술학교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지난 2016년에는 이 학교 학생들이 파라과이 현지 학교에서 재능기부로 음악을 가르치는 등 파라과이와도 인연이 있다. 루고 역시 한때 교사를 꿈꾸었던 만큼 교육에는 관심이 남달랐다. 학생들 은 특별히 그를 위해 ‘브라보 파라과이Bravo Paraguay’ ‘미 파라과이Mi Paraguay(내 조국 파라과이)’ 등 파라과이에 대한 애국심을 주제로 한 노래들을 준비했다.

“파라과이는 널 안아주는 형제의 나라 너에게 마음을 주네
나의 파라과이, 너를 위해 노래하네 나의 파라과이”

지구 정반대편에서 생각지도 못한 조국의 노래를 들은 루고 의장은 감격스러운 듯 손뼉을 치며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학교를 둘러보고 학생들의 공연까지 보고 나니 마음에 묻어두고 있던 교육에 대한 열정, 학생들을 향한 애정이 새롭게 솟아나는 기분입니다. 저희 파라과이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합니다. 이번에 대만 정부 인사들을 만났을 때도 파라과이에 기술학교를 세워달라고 요청했었어요.”

음악학교 방문을 마친 루고 의장의 마지막 목적지는 경북 김천의 국제청소년연합IYF 수련원이었다. IYF 주최 월드캠프에 와서 특강을 하는 등 이 단체를 적극후원하는 그를 고문으로 임명하는 위촉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마침 이곳에서는 올해 해외로 파견되는 해외봉사단원들의 워크숍이 진행 중이었다. 수련원 4층에 모인 예비 굿뉴스코 단원과 IYF 회원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그의 고문 위촉을 축하해 주었다. 루고 의장은 ‘자격 없는 내게 이런 직책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고문 위촉은 제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IYF 편에서는 제게 주는 신뢰의 표창입니다. 둘째, 제 편에서는 앞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서약입니다. IYF는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서로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저의 도움은 작고 보잘것없겠지만 그동안의 제 경험을 살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조언하고 헌신하겠습니다.”

파라과이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마인드교육
지난 2012년, 루고 의장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치인생은 그렇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듬해 총선에서 그는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지난해에는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며 다시 일어섰다. 올해 치러질 파라과이 대선에서 그는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는 어떤 포부를 품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습니다. 계속 정치인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저도 이제 곧 일흔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정치를 하며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앞으로 제 뜻을 이어받아 일해줄 후계자도 필요하니까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을 위한 계획보다는 당장 파라과이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이끌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처럼 파라과이도 인구의 52%가 30세 미만인 젊은 나라다. 파라과이가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젊은이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루고 의장은 ‘파라과이 젊은이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면서도 그만큼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배울 기회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파라과이 청년들에게는 공부할 기회, 일할 기회, 건전하게 놀 기회도 부족합니다. 실업도 심각해서 25명을 뽑는 일자리에 3천 명 넘는 청년들이 지원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마인드교육이 파라과이 청년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청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고, 사고력과 절제 등 건전한 정신을 심는 교육이 저희에겐 반드시 필요합니다.”

청년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마약을 소비하는 것도 그는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기술 분야에만 인재가 지나치게 쏠리는 점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자국 청소년을 위해 마인드교육을 도입하고 싶다고도 했다.

“IYF에서 실시하는 마인드교육은 파라과이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고, 사고력과 절제 등 건전한 정신을 심는 교육은 꼭 필요하지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투머로우> 독자들에게 배움이란 ‘평생 계속되는 끝이 없는 과정’임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옛날에는 대학이 교육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첫 단계입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종사할지 결정하는 입문과정이지요.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그래서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배움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성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