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에 해외봉사를 갔다가 ‘치웬두’라는 친구를 만났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춤을 출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친구였다. 지난 8월부터 치웬두와 함께 많은 문화댄스공연들과 나이지리아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만나 회의하고 공연 연습을 했다. 덕분에 나는 치웬두와 많이 가까워졌다.

어느 날, 나이지리아 청소년 캠프 때 공연할 무대를 위해 현지 친구들과 함께 저녁 8시에 모여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치웬두가 댄스 팀장이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말한 뒤 우리끼리 연습을 하고 있었다. 5분 뒤, 치웬두가 내게 뛰어와서 조용히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말했다. 자기 방에 불이 났는데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며 내가 같이 가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치웬두 손을 잡고 치웬두의 방으로 뛰어갔다. 사실 나는 겁이 많아서 불이 났다는 사실도, 치웬두 방으로 향하는 어두운 길도 무섭고 겁이 났다. 그런데 방 앞에 갔을 때 창밖으로는 노란 불빛만 새어나왔고, 연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긴가민가하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 가운데에 손바닥만 한 초콜릿과 과자, 활활 타고 있는 성냥 세 개가 꽂혀 있는 머핀이 있었다. 치웬두가 그 빵 위의 성냥을 가리키며 “여기 불이 났어!” 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댄스연습을 하고 나면 밤 10시가 넘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집에 돌아가서 씻고 자곤 했다. 연습이 끝나면 평소처럼 바로 들어가서 잘까봐,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치웬두는 연습을 하는 도중에 불이 났다며 나를 속이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나랑 동갑인 치웬두는 9년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빠와 오빠, 언니, 여동생과 함께 다섯 식구가 방 두 칸에서 살고 있다. 중학생인 동생을 제외하고 모두가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며 어렵게 지낸다. 나이지리아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치웬두를 도와서 치웬두 방 앞에 서서 물건을 전달해 주다가 장판이 없는 바닥, 벽지가 없는 벽, 어둡고 작은 방에서 치웬두네 세 자매가 지내는 것을 보았다. 나는 태어나서 그런 방을 처음 봤다. 상상도 못할 만큼 초라한 그 작은 방에서 세 자매가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센터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동안 한국에서 내가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는지 생각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가난해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그에 비해 작은 일 하나에도 불평하며 더 좋고 비싼 것을 원하는 사치스러운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치웬두가 머핀에 성냥깨비를 꽂아 생일축하를 해준 그날 저녁, ‘나는 과연 이런 대우와 행복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생각했다. 나는 사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봉사를 하러 나이지리아에 왔지만 항상 내가 편한 대로 하고 살았다. 영어를 잘 못한다는 핑계로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피했다. 나만의 울타리를 만든 채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지도, 그들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담을 치고 지냈다. 이런 못난 나에게 치웬두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고 있었다. 비싸서 잘 사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고작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돈을 모아 사서 준비했을 치웬두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 초콜렛은 세상 어떤 초콜렛보다 달았고, 머핀은 어떤 케이크보다 달콤했으며, 성냥1개의 불은 21개의 초보다 밝고 따뜻하게 내 마음을 감싸주었다. 나는 그 날의 치웬두의 표정과 마음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나이지리아에서 살면서 치웬두같이 내 또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나이대의 나이지리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쌓였던 오해를 풀기도 하면서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아낌없이 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도, 전기와 물이 끊기지 않으며 치안이 좋고 풍요로운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난 것도….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일 년 동안 나이지리아에 지내면서 내 마음에 감사함으로 남았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안고 한국에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이 행복을 전하고 싶다.

글 | 최인형
뷰티디자인 경영학을 전공하는 풋풋한 1학년 학생.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만나 2017년을 나이지리아에서 보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시간이 생길 때마다 5~6km 조깅을 즐길 만큼 운동을 좋아한다. 이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져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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