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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집안에서 네 번째 주한 브라질대사”루이스 페르난두 세하 브라질 대사
신요한 캠퍼스리포터 | 승인 2018.01.22 15:54

광화문에서 삼청로를 따라 청와대 가까이까지 걸어 올라가다 보면 주한 브라질 대사관이 나온다. 길 건너편에 경복궁과 민속박물관 건물이 바로 보인다. 때마침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눈 쌓인 지붕과 알록달록한 단청빛깔, 길게 이어진 돌담…. 일하다가 지칠 때면 창 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될 것 같은 풍경이다. ‘대사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보고 지내시는구나.’ 그곳에서 루이스 페르난두 세하 대사를 만났다.

루이스 페르난도 세하 브라질 대사
칠리 산티아고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튀니지, 독일, 가나, 싱가포르 등 45년간 아홉 개 나라에서 근무했다. 외교관의 가장 큰 보람으로 그는 구 소련의 몰락 등역사의 다이나믹한 현장을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름답고 다양한 세계 여러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16년 4월에 한국에 오셨는데 그동안 느낀 한국의 인상이 어떻습니까?

저는 한국에 사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한국인의 국민성은 따뜻하고도 강인합니다. 또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여름을 나는 동안 마음이 강인해지고, 겨울을 준비하는 동안 생각이 깊고 부지런해지는 듯합니다.

대사로 부임하기 전, 한국의 역사와 문화, 경제 등을 책이나 보고서를 많이, 그리고 깊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한국에 와서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한국은 반 세기가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빠르게 발전해서 지금은 자동차나 휴대폰 등 첨단제품을 제조해 판매합니다. 이런 엄청난 성취를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적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발전은 기적이 아니라 정부의 훌륭한 정책과 교육에 대한 투자, 그리고 국민들의 굳은 의지와 헌신, 단결로 인해 이뤄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하 대사가 추천하는 브라질의 명승지
설탕덩어리 산Sugarloaf Mountain
대서양에 인접해 있는 과나바라 만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높이는 약 396미터이다. 옥수수를 세워놓은 듯 툭 튀어나온 모양이 마치 과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하던 설탕덩어리의 모습을 닮아 ‘설탕덩어리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16세기 브라질에는 사탕수수 재배가 활발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정제된 설탕은 배를 타고 유럽 지역으로 수출되어 거래되었다.

한국에 대해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한국에 특별히 애착이 갖고 계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한국은 저희 집안과 인연이 깊습니다. 삼촌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주한 브라질대사였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사촌이 각각 1997년부터 2002년까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주한 브라질대사였습니다. 저는 집안에서 네 번째 주한 브라질대사이지요. 뿐만 아니라 무역규모 면에서 한국은 브라질의 여섯 번째 교역상대국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다음으로 큽니다. 브라질을 대표해 주한 대사가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루이스 페르난두 세하 대사가 외교관이 된 지는 올해로 45년째다. 한국 나이로 딱 70세이니 인생의 3분의 2를 외교관으로 살았다. 이 정도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정년퇴직을 몇 년을 남겨놓은 그는 분명히 젊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됐다.

어떻게 외교관이 되셨으며,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 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집안은 외교관 집안입니다. 저는 가족들 중에서 여섯 번째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삼촌이 제가 외교관이 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분처럼 한국에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한국은 제가 부임한 아홉 번째 나라입니다. 첫 외교관 생활을 칠레의 산티아고부터 시작해서 바티칸, 튀니지의 튀니스, 구 소련의 모스크바,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가나 아크라,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으로 왔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와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천연자원이 없는데도 선진국이 된 나라들입니다.

세하 대사가 추천하는 브라질의 명승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
리우 데 자네이루 시의 코르코바두 산(700미터) 정상에 세워진 이 예수상은높이 약 40미터에 무게는 무려 700톤에 달한다. 재료는 속은 철근 콘크리트,겉은 동석이라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제작하는 데만 1925년부터 1931년까지 6년이 걸렸다. 이 조각상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만 연간 180만 명이나 된다.

한국에는 외교관이 되거나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대학생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외교관이 되면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일해야 합니다. 브라질은 다문화국가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경험이 자신과 다른 스타일, 직업,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을 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그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겠지요. 해외 유학이나 교환학생 등의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겁니다.

외교관으로 일하려면 기본적으로 열정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재능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하지만 열정과 인내가 없다면 다른 직업은 몰라도 외교관으로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외교석상에서 협상을 하려면 이성을 잃지 않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 나라에서만 살면서 일하고 싶다면 열정은 그다지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의 평생을 조국을 떠나 살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부모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인생도 열정 없이는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외교관은 은행원이나 법률가 등 여느 화이트칼라 직업과는 다릅니다. 외국에서 살 때도 늘 조국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조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함께 외교관이 된 동료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 열정이 없어서 얼마 뒤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열정이란 단어는 보통 청춘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루이스 페르난두 세하 대사의 입에서 열정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흔히 중남미 하면 떠오르는 삼바 리듬의 그 열정과는 다른 느낌인데, 정확히 옮기자면 애정에 가까웠다. 외교관이 되면 3~4년마다 근무지가 바뀌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쉽지 않다.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 세하 대사도 처음에는 자녀들과 함께 지냈지만 1998년부터 시작해서 2006년까지 자녀들이 하나둘 독립해 브라질에 남았다. 취재를 하고 있는 나도 부모님 직업상자주 이사를 다니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기에 그 심정이 헤아려졌다. ‘열정 없이는 오래 갈 수 없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갖은 고충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듣고 보니 외교관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로군요. 외교관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수학을 싫어했습니다. 대신에 문법과 역사, 지리를 좋아했습니다. 문법은 상황에 맞게 능숙하게 글을 쓰고 문맥에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지리를 통해서는 다른 나라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 과목들은 제가 외교관이 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외교관이신 아버지를 따라 아르헨티나에서 보냈습니다. 브라질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모국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제가 먼저 습득한 언어는 스페인어였습니다.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랑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말이 섞여서 나오거나 헷갈립니다. 어떤 때는 철자도 발음도 같은데, 뜻은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17세에 브라질에 다시 오기 전까지 제겐 포르투갈어를 따로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친구들과도 스페인어로 대화했습니다.

그러다 17세 때 저는 인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외교관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삼촌은 제게 늘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격려해 주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물론 외교관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인생을 걸어야 하고 돈도 많이 못 번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외교관이 되려면 브라질에서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부모님이 계신 아르헨티나를 떠나 브라질에서 홀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제 꿈을 지지해주셨지만 아버지는 그다지 지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럭비를 하고 있었는데 17세가 되면 유소년 리그를 넘어 1부 리그에서 뛸 수 있었습니다. ‘바로 브라질에 가지 말고 아르헨티나에 1년 더 머물면서 럭비 챔피언이 되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미 시립 럭비클럽에 가기로 이야기도 다 되어 있던 상태였지만 럭비선수가 제 꿈은 아니었기에 외교관이 되기 위해 결국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브라질에 건너와 또래에 비해 뒤처진 포르투갈어를 따라잡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외교관 시험은 브라질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였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미리 알았더라면 응시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보면 그때는 굉장히 대담했고, 순박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젊음의 아름다움이고 멋이 아닐까요?

생각이 너무 많으면 문제와 맞설 수 없습니다. 부딪혀야 해요. 행운도 무언가 시도하는 사람에게 따라오는 법입니다. 그렇게 뛰어들었던 외교관의 길을 걸은 지 벌써 45년이 되었는데 아직 외교관 외에 다른 직업은 상상할 수 없어요. 외교관으로서 지내는 동안 기쁜 일들이 많았습니다. 나의 조국을 대표한다는 것, 한국 같은 나라에 와서 지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쁩니다.

나도 2014년에 브라질로 1년 동안 해외봉사를 다녀왔기에, 자연히 브라질이라는 나라와 한국과 브라질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세하 대사는 한국과 브라질이 서로 상생하고 발전하는 방안을 찾는 데도 열심이었다.

세하 대사가 추천하는 브라질의 명승지
상파울루 시립극장 Theatro Municipal
1903년에 착공해 1911년 완공된 이 극장은 거의 매일 아름다운 오페라 공연과 음악회가 개최되는 곳으로 상파울루의 랜드마크이자 시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좌석은 1523석 규모로, 외관 못지않게 내부도 화려한 대리석과 정교한 조각들이 곳곳에 있어 입장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마리아 칼라스, 엔리코 카루소 등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들이 공연하기도 했다.

대사님은 한국과 브라질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브라질에 진출하기를 꿈꾸는 한국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브라질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파트너입니다. 예를 들면, 브라질은 한국에 철광석을 수출합니다. 한국은 그 철광석을 가공해 차를 만들어 브라질에 수출합니다. 물론 브라질에서도 차를 생산하고,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브라질에 공장을 세워 차를 생산합니다. 그밖에도 한국에서는 커피와 닭고기, 설탕 등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아프리카 등 제3국으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브라질에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사이의 교류와 교역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어를 배워두면 좋습니다. 한국어와 포르투갈어를 모두 할 수 있으면 브라질에서 취업할 기회도 많아집니다. 현재 두 나라 간에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어 포르투갈어 구사자 수요가 큽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부러움을 느낀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인들의 우수한 두뇌인데요. 젊은 한국 학생들이 브라질에 많이 와서 살면서 일도 하고 두 나라의 발전과 우호증진에 기여해주면 좋겠습니다.

ⓒGresasc

<투머로우>가 그동안 취재했던 주한 외교관들에 비하면 세하 대사의 영어는 그다지 유창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조곤조곤한 말투는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창 밖으로 보이는 대사관 건너편 경복궁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건물 중 한 채를 브라질로 가져가고 싶어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한국인의 역사와 건축기술, 미적 감각의 결정체니까요. 한국인 여러분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대신 한국의 추운 날씨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네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을 향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듬뿍 묻어나왔다.

신요한 캠퍼스리포터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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