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크레인 심현숙 대표

크레인 회사의 여직원이었지만 현재는 12대의 크레인으로 바쁘게 일을 하는 회사의 사장이 된 심현숙 대표.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중장비 사업에서 여성 대표가 큰 기업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수도크레인의 심현숙 대표를 만나기 위해 안양 시내를 벗어나 흙바닥 주차장에 들어섰다. 정면에 보이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니, 차가운 겨울바람을 녹이는 온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좁기는 하지만 휴지 조각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그곳이 바로 심 대표의 사무실이었다.

“수도크레인은 하이드로 유압식 기중기(바퀴가 달려서 이동하는 크레인)로 일하는 중장비 대여업체입니다. 크레인 중에 제일 작은 5톤 크레인부터 천 톤 크레인까지 있어요. 공사 현장에서 높은 곳에 물건을 올리고 내려주는 역할을 하고, 기계를 조립하거나 배를 끌어올리는 등 힘이 필요한 모든 작업에 투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레인은 여성이 운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남성 기사들 위주로 일을 합니다.”

심 대표가 지금은 회사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만 30년 전만 해도 한 크레인 회사의 경리직원 ‘미스 심’이었다고 한다. 일찍 결혼해 아들을 사무실에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했는데, 어느 날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일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하는 그에게 알고 지내던 거래처 사장님들이 크레인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왔다. 10년 이상 크레인 관련 일을 해왔기에 크레인밖에 몰랐던 그는 크레인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1998년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3천만 원을 가까스로 빌려 크레인 한 대를 샀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돈을 정말 많이 벌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돈이 많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지요. 2000년에는 집안 사정으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이후에 과천과학관, 제3경인고속도로, 안양 삼성 덕천아파트 3000세대 등 큰 공사들을 맡으면서 사업이 커졌고 크레인도 서너 대씩 늘어났어요. 지금은 13톤부터 150톤 중량의 크레인 12대를 가지고 12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아들도 9년차 크레인 기사로 함께 일하며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여전히 ‘미스 심’의 마음으로 일하다
그렇게 ‘심 대표’가 됐지만 그는 아직도 ‘미스 심’으로 일한다. 오랫동안 그와 일해 왔던 사람들이 그를 ‘미스 심’으로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경리사원 없이 재무관리를 심 대표가 직접 하고 있고 현장에는 나가지 않는다. 그가 크레인을 운전하지 못하고 장비를 고칠 수도 없기에 직원들과 수리기사들에게 신뢰를 보여주어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일을 우선적으로 한다. 매일 직원들에게 크레인 배차를 정해주고 뒤에서 알뜰살뜰 그들을 챙기는데, 직원들의 재산관리도 돕고 조언한다.

“9년째 저와 같이 일한 어느 직원은 재무관리가 서툴러 어려워하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제가 적금, 보험을 들을 것을 조언해주고 ‘집 장만 프로젝트’를 정해서 돈을 모으게 했죠. 나중에 그 직원은 자기가 원하던 집을 사서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했지요.

그리고 해마다 연초에 직원들에게 올해의 목표를 말해보라고 해요. 직원들이 말한 것들을 제 수첩에 적어놨다가 연말에 확인해서 목표를 이룬 사람에게는 보너스를 주곤 하지요. 꼭 회사를 위한 목표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집 마련하기’나 ‘둘째 낳기’처럼 개인적인 목표라도 좋다는 거죠. 직원이 행복해야 우리 회사도 잘 되고 발전하거든요.”

이러한 심 대표의 일관된 태도와 세세한 배려 때문인지 직원들은 그를 믿고 따르며 허물없이 다가간다.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맡은 일을 모두 하고 돌아온 직원들은 그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보고한다.

“크레인은 나가기만 하면 일이에요.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가려는데 누군가 ‘이거 하나만 들어주고 가세요’ 하면 기사들이 쉽게 거절을 못해요. 한 50만원 받고 해주는 거죠. 그런 돈은 기사들이 받고 모른 척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우리 기사들은 이야기를 다 하더라고요. 제가 돈 50만원 때문에 자기를 해고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죠. 항상 편한 마음으로 함께 일하다 보니 수도크레인의 직원교체는 거의 없었죠.”

그는 직원들의 미래를 위하여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크레인 한 대만 있으면 개인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직원들을 위해 대출 보증을 서주어 5톤, 25톤 등의 작은 크레인으로 독립하게 하곤 한다. 크레인 회사들은 전국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작업 요청이 들어오면 자기 회사에 없는 크레인은 다른 회사에 요청해 일을 나누어 한다. 때문에 직원이 사장이 돼도 유대 관계만 좋으면 얼마든지 서로를 위하며 일을 나누어할 수 있다. 그래서 심 대표는 언제나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홀로 일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한다! 너희들이 나를 돕고 내가 너희를 도우면서 다 같이 즐겁게 하자!”

오산 공군기지 내에서 해마다 열리는 에어쇼 행사에서 일반인들의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위해 크레인이 사용되기도 한다.
오산 공군기지 내에서 해마다 열리는 에어쇼 행사에서 일반인들의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위해 크레인이 사용되기도 한다.
수도크레인의 150톤 급 크레인 MK80. 주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사용된다.
수도크레인의 150톤 급 크레인 MK80. 주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사용된다.

심 대표님 요청이면 언제든 달려갑니다
심 대표는 중장비 수리와 정비전문업체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장비들은 고장이 잦은 편인 데에다 밤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에는 크레인의 경유가 얼어서 새벽에 일을 나가려고 하다가 속수무책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 대표가 도움을 요청하면 수리전문업체의 엔지니어들이 새벽이든 궂은 날씨이든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고쳐주고 간다.

“제가 직접 수리를 못하잖아요. 중장비 수리전문업체와 전기정비업체에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제가 조금만 자존심을 세우고 멋대로 하면 금방 소문이 나요. 그러면 도움이고 뭐고 결국 일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혼자서 사업하는 게 아니잖아요. 평소에 제 일을 돕는 많은 분들께 자주 찾아가서 대화도 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위급할 때 언제든지 와서 고쳐주는 엔지니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못하는 걸 아니까 와서 기꺼이 도와주지요.”

회사를 운영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지혜롭게 채워 나가기 위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용이었다. 그렇기에 대금 납부기한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돈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면 대출을 해서라도 제 시간에 입금했다고 한다. 그 또한 현장에서 돈을 받아 회사 운영비와 직원들 월급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기에 거래처 대표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신용을 쌓아온 것이다. 심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수도크레인의 성장 비결이 단순하게 짚어졌다. 신용 또 신용이었다.

크레인 기사의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심 대표가 바쁜 중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크레인 기사 인재 양성! 심 대표의 아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아들 또래의 젊은 인재들이 많이 없어서 인재 양성의 필요성이 절감하고 있다. 한국의 건설 공사 현장은 더 높고 더 큰 빌딩을 짓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큰 중량의 크레인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인력의 공급이 절실한 실정인데, 힘들다고 공사 현장을 피하는 분위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크레인 기사는 자격증을 따기가 힘들지만 일을 시작해 초반에 노력하면서 경력만 쌓으면 연봉 6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 엔지니어가 될 수 있습니다. 크레인 한 대와 공사 현장만 있으면 독립적으로 사업도 가능하고요. 정년도 없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직업이지요. 건설 장비 중에서도 크레인 기사를 1순위로 쳐주고, 현장에는 크레인 한 대를 도와 일하는 인부들이 10명이나 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크레인 기사는 소수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심 대표는 요즘 초보기사 3명을 뽑아 일을 가르치고 있다. 경력이 없는 직원이 일하다가 사고가 나면 감당해야 하는 수리비가 억대이기 때문에 누구나 경력자와 일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0년을 내다보며 세대교체를 위해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젊은 인재를 양성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에도 크레인을 대여해 주며 학생들이 크레인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자격증만 있다고 기사로 고용하지는 않아요.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인부로 일하고 계시는데, 크레인 기사라고 운전석에 앉아서 에어컨 바람을 쐬거나 따뜻한 난로를 쬐면서 왕처럼 일하면 안 되거든요. 우리 회사 기사 중에 어떤 분은 어른들을 위해 트로트 노래를 틀어주고 얼음물도 떠다 주면서 일하다 보니 능률이 올라서 일이 한두 시간 더 빠르게 마친다고 하더라고요. 기술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성품적인 자질을 갖추어야 우리 수도크레인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직원이 새로 입사할 때는 담배와 술도 끊으라고 당부합니다. 운전석에 앉아서 담배만 피워댄다면 건강을 헤쳐서 오래도록 일을 못할 테니까요.”

심 대표는 언제나 메모에 열심이다. 직원들의이야기도, 업무에 대한 것도 기록한다. 작은 수첩에는30년 동안의 거래처들과 중장비 수리, 전기정비전문업체의 연락처들을 기록해둔 것으로 그에게 가장중요한 기록이다.
심 대표는 언제나 메모에 열심이다. 직원들의이야기도, 업무에 대한 것도 기록한다. 작은 수첩에는30년 동안의 거래처들과 중장비 수리, 전기정비전문업체의 연락처들을 기록해둔 것으로 그에게 가장중요한 기록이다.

중장비 업계에서 모성 리더십 발휘하다
한번은 누군가가 그에게 돈을 좀 쓰라는 말을 해서 지갑에 현금 100만원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열어보니 77만원이 남아 있었다고. 얼마전에는 백화점에 갔다가 모피코트 가격을 보고 놀라서 27만 원짜리 코트 한 벌만 사서 돌아왔다고 한다.

큰 사업을 일구고 많은 돈을 벌어보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돈 쓰는 법을 모르고 회사 일에만 몰두하는 여성 CEO였다. 남성 위주인 중장비 사업에서 자신의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신용으로 채우면서 한길을 걸어온 심 대표는 남성대표가 쉽게 가지지 못하는 사려 깊은 뒷받침으로 직원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수도크레인은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자리 잡았다.

심현숙 대표를 만나기 전에는 크레인 회사라고 해서 웬만한 남자보다도 호탕한 여장부 CEO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직원들을 챙기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상한 어머니의 리더십이 보였다. 아들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크레인 직종에 도전하며 밝고 건강하게 살길 바라며 하루하루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심 대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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