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무덤 같은 자취방

카타콤은 2세기,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묘지로 쓰던 지하동굴이다.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카타콤이 이 시대 서울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내가 지낸 자취방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친구 3명과 함께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했다. 그때 내 방의 모습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필라멘트가 다 타버려 어두침침한 형광등, 벽걸이에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옷가지들, 구석구석 피어있는 곰팡이와 거미줄, 언제 세탁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땀내 나는 이불…. 나와 친구들은 이런 방이 좋진 않았지만, ‘나중에 한 번에 손보면 되지’ ‘대충 살면 되지’ 하고는 불편한 문제들을 방치한 채 살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

하루는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읽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사소한 것들을 방치하면 나중에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거리에 있는 한 상점의 유리창이 깨졌다. 그런데 그것을 빨리 손보지 않고 방치하면 사람들은 그 상점은 비어 있든지, 주인이 관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유리창을 더 깰 수도 있고 상점에 함부로 들어가 물건을 훔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적용되는 이론인데,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다. 거리 한 구석에 누가 쓰레기를 하나 버렸을 때, 그것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얼마 후에 그곳은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 누구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기 때문이다.

1980년 중반, 뉴욕 지하철은 빈민굴과 다름없었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욕설이 대부분인 페인트 낙서가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 뉴욕 지하철에서는 소매치기와 폭력, 살인 등의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시민들이나 중산층들은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고 뉴욕 지하철은 결국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95년, 루디 줄리아니가 뉴욕 시장으로 취임해 뉴욕시 정화사업을 펼쳤다. 쓰레기를 치우고 낙서를 지우고 우범지대마다 CCTV를 설치해 낙서하는 사람들을 추적했다. 사람들은 깨끗해진 지하철 역사에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고, 환해진 거리 곳곳에서 범죄행위를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뉴욕 지하철은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되었다고 한다.

 

마음의 방을 정돈하자 삶이 달라졌다

참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제안하여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형광등을 교체하고, 옷걸이를 만들고, 곰팡이와 거미줄을 제거하고, 이불을 세탁하고…. 그러자 방이 호텔 스위트룸처럼 깔끔해졌다. 그 뒤로는 매주 날을 정해 조금씩 흐트러지는 방을 정리하곤 했다.

중요한 것은 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마음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방에는 오랫동안 방치해 놓은 어두운 감정들이 쌓여 있었다. 친구들이 내 물건을 함부로 쓰거나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지만 ‘얘기해서 뭐해? 괜찮아지겠지 뭐’ 하며 섭섭함을 쌓아놓았다. 늘 바쁜 부모님을 향한 오해도 한 구석에 쌓여 있었다. 그밖에 미안함,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에 내 마음의 방은 어두침침했고, 내 삶은 무척 소극적이었다.

내 자취방을 정돈한 것처럼 마음의 방을 정돈해 보았다. 사람들에게 섭섭한 것이 있으면 표현하고 미안한 것이 있을 때는 사과를 전했다. 그러자 사람들과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며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께도 오랫동안 쌓아둔 서운한 마음을 풀고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자취방이 달라진 것처럼 내 마음의 방도 카타콤에서 멋진 스위트룸으로 바뀐 것 같다. 내가 바꾸려고 애쓴 적이 없는데, 자연스레 내 삶이 밝아졌다.

 

조성현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던 중, 2013년에 멕시코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멕시코에서 각종 범죄와 중독에 물든 청소년들을 만나 함께 울고 웃으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전남 무안에서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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