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전 교육부 차관 아나파울라

아프리카 남서쪽에 위치한, 한반도 일곱 배 크기의 나라 앙골라의 국민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던 식민 통치기간과 내전을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풍부한 광물자원에 힘입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인재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원임을 알기에 마인드교육을 도입해 건전한 정신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려 한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전 앙골라 교육부 차관 아나 파울라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고문 형식으로 정리했다.

 

앙골라 전 교육부 차관 아나파울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교육부 차관에까지 올랐다. 조국 앙골라를 살릴 길은 바로 교육이라고 믿고 외국에서 들여온 차관을, 학교를 짓고 우수한 교사를 길러내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도록 했다. 그 결과 앙골라의 교육의 질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지만 그녀는 안주하기보다 더 나은 교육법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전쟁을 딛고 올림픽까지 치러낸 한국인의 저력이 궁금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프리카의 앙골라라는 나라의 아나 파울라 의원입니다. 지금 제 신분은 앙골라의 국회의원이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 차관으로만 9년을 일해온 행정가였습니다. 지난 여름, 저는 세계 청소년부장관 포럼 준비팀의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포럼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문득 한국에 꼭 가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6.25전쟁이라는,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엄청난 내전을 겪었지만, 그 모든 상처를 극복하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낸 한국인의 저력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7월, 저는 마침내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포럼이 열리는 부산까지 내려오는 동안 한국의 곳곳을 직접 목격하며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도시에는 멋진 디자인으로 지어졌으면서도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했고,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고속도로는 도시는 물론 시골까지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산과 계곡을 따라 도로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 막힌 곳은 터널을 뚫고 계곡이 있는 곳은 다리를 세워 차들이 시원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시간을 달려 부산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장관들을 만나 교육발전 및 청소년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며 주제발표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걸까?’ 그러던 중 마인드 전문 강사들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강사들은 한국이 빠른 시간에 고속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이 마인드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인은 개개인의 이익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또 일본의 식민통치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고 깊이 사고했습니다. 제 조국 앙골라 역시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불과 몇 년 전까지 긴 내전을 겪었는데요, 한국의 역사와 발전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 우리도 마인드교육을 도입하면 얼마든지 선진국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는 신도시와 구도시로 나누어져 있다.신도시에 있는 믹스센터 호텔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는 신도시와 구도시로 나누어져 있다.신도시에 있는 믹스센터 호텔

27년 내전이 남긴 마음의 상처, 치료약은 마인드교육

사실 앙골라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투머로우> 독자 여러분께 앙골라에 대해 소개를 해 드릴까 합니다. 앙골라는 아프리카에서도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앙골라’라는 이름은 앙골라의 콴자 강과 루칼라 강 사이에 있는 은동고Ndongo라는 지명이 포르투갈어로는 ‘응골라Ngola’로 불리면서 생긴 이름입니다.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이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앙골라에서는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씁니다.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앙골라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것은 1975년의 일입니다. 앙골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반식민지 단체는 크게 세 곳이 있었습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과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UNITA, 앙골라 민족 해방전선FNLA인데요. 이 중 MPLA가 승리를 거두면서 1975년 앙골라는 독립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MPLA는 공산주의 사상에 바탕을 둔 친소련 성향의 독립운동 조직이었습니다. 반면 UNITA는 반공주의와 앙골라인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두 단체는 자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기나긴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1991년 UN의 중재로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이듬해 선거를 치렀지만, UNITA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면서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전은 결국 2002년 UNITA의 수장인 조나스 사빔비가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면서 끝납니다.

27년에 걸쳐 치러진 내전이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무장 군인과 전쟁의 포화(砲火)를 피해 정든 고향과 이웃을 떠나 살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수많은 가옥이 포탄을 맞아 사라지고, 도로와 공장, 항구 등 산업기반시설이 상당수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피해는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습니다.

파괴된 국토보다 더 크고 심각한 피해는 바로 국민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였습니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앙골라에도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 가족을 사랑하는 정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전을 치르면서 그런 아름다운 문화와 따스한 정서가 사라졌습니다. 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에 따라 여러 파로 나뉘어져 다투는 동안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의지할 정신적 버팀목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 간에 의견이 부딪히면 대화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다툼으로 번지곤 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이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것입니다. 부서진 집과 건물이야 다시 더 크고 멋지게 지으면 되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회복될까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인들이 짧은 시간에 경제를 성장시킨 비결을 배워 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마인드교육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마인드교육이야말로 내전으로 상처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할 해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한국산 휴대폰을 갖고 싶어 합니다. 맛있는 한국의 요리나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마인드교육과 해외봉사를 통해 소통하고 교류하며 강해진 한국 청년들의 마인드를 가져가고 싶습니다. 그 마인드를 우리 앙골라 청년들에게도 심어주고 싶습니다.

 

앙골라의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성이며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강우량이 많다.
앙골라의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성이며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강우량이 많다.

평교사에서 교육감, 교육감에서 차관이 되기까지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에게 삶에 필요한 지식과 도덕성, 규칙 등을 가르침으로써 사회를 위해 제몫을 다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교육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하지만 최근 교육부의 책임과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때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도 교육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현재 앙골라의 15세 이상 문맹률은 28.9%나 됩니다. 심지어 젊은이들 중에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치른 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저는 교육부 차관으로 일했습니다. 2008년에 차관이 되었으니 9년 동안이나 차관직을 맡은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차관이었던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안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야 내가 부모님께 도움이 될까?’를 늘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일찍 철이 든 셈이지요.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저를 좋은 학교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루빨리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나와 사범학교에 들어갔고, 졸업 후 평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내용들을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따라와주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도 흐뭇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나중에는 윌라Wila라는 주의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이 되어 10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런 저를 대통령께서 관심 있게 봐 주시고 앙골라 교육의 틀을 짜는 차관직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런 대통령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수도 루안다의 신도시 도로
수도 루안다의 신도시 도로
지난 7월, 월드문화캠프에 참가하여 무주태권도원에서 강연을 했다.
지난 7월, 월드문화캠프에 참가하여 무주태권도원에서 강연을 했다.

제자의 행복을 자기 행복으로 삼는 교사를 키운다

교육은 단지 기술과 지식을 전수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식물처럼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를테면 학생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급식 시스템도 갖춰야 하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화목한 가정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프리카라면 어느 나라든 에이즈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교육과 성교육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도 사회의 성원으로 자랄 수 있게 교육 받을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장애인 학교를 지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모들을 교육해 잘못된 인식을 바꿔줘야 합니다. 이처럼 교육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요소들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해외의 교육사례 등을 찾아가며 해법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한계에 부딪힐 때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저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사람인지 실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은 훌륭한 선생님이 훌륭한 학생들을 키워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앞에서 앙골라의 독립을 쟁취한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이 공산주의 사상에 기반을 둔 조직이었다는 것은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MPLA는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새 이념으로 채택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각종 규제도 철폐했는데요, IMF에서도 앙골라의 발전을 위해 지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에 저희 교육부에서는 그 지원금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을 길러내는 프로젝트를 마련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생계나 경제적인 이유로 교사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라의 미래인 청소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교사가 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앙골라 교육부가 주도한 교사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서 청소년을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소신과 철학을 가진 선생님들이 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학교도 전보다 많이 늘었지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동들도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교육여건을 개선했습니다. 현재 앙골라에는 초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는 아이들이 20만 명이 넘습니다. 학업을 포기했던 아이들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는 몹시 기쁩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차관으로서 맡아 진행했던 일들 가운데 가장 보람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앙골라는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가난하고,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올바른 가치관, 그리고 물질보다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데서 교사가 된 의미를 찾는 교사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무주태권도원을 찾은 파울라 장관 일행. 산골이 고향인 그녀는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오니 고향에 온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무주태권도원을 찾은 파울라 장관 일행. 산골이 고향인 그녀는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오니 고향에 온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수도 루안다 내의 신도시에 있는 기업 건물
수도 루안다 내의 신도시에 있는 기업 건물

마인드를 갖춘 인재야말로 금보다 값진 자원

앙골라의 기후는 한국과는 정반대입니다. 한국이 여름일 때 아프리카는 겨울입니다. ‘겨울이라고? 아프리카 하면 사시사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줄로만 알았는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강물이 다리 없이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두껍고 단단하게 얼어버리는 곳도 있습니다.

앙골라는 각종 자원이 풍부합니다. 광물자원으로는 구리, 금, 다이아몬드, 대리석이 있고, 석유와 석탄도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높은 산이 많아 삼림자원도 넉넉합니다. 토지도 워낙 비옥해서 씨앗만 심으면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쑥쑥 자랄 정도입니다.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나무도 많고 코끼리나 얼룩말, 기린, 들소 등 야생동물도 풍부한, 그야말로 자원의 보고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배우고, 마인드교육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제는 건전하고 강인한 마인드를 갖춘 인재야말로 최고의 자원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앙골라에는 아직 그런 인재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엄청난 자원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아직 땅속에 묻혀 잠자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인들에게 앙골라처럼 많은 자원이 주어졌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발전했을지 모릅니다.

앞으로 한국의 마인드교육을 앙골라에도 도입해 실천하고 싶습니다. 현재 앙골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다행히 뜻있는 지도자들의 노력 덕분에 최근 앙골라 교육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학교가 세워지고, 훌륭한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교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인드교육이 도입된다면, 언젠가는 앙골라도 부강해지는 것은 물론, 내전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앙골라는 지금도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저희 앙골라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정말 많은 청년들이 자원봉사자로 앙골라에 와 주셨으면 합니다. 앙골라의 국토는 한반도의 일곱 배나 될 정도로 광활하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 수준인 2,500만 명에 불과합니다. 일부 대도시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을 뿐 사람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사는 지역이 대다수입니다. 1,9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사람들이 거주하기도 합니다. 또 앙골라 국민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유연한 안목과 사고방식을 지닌 청년 여러분들이 오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오셔서 여러분의 꿈도 펼치시고, 앙골라를 발전시키는 데 힘과 지혜를 보태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앙골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앙골라에는 아직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기술이나 학문도 가르치고, 자신의 욕구를 다스리고 매사에 깊이 생각하는 ‘절제와 사고의 마인드’를 청소년들에게 심어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7월 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면서 포럼 주최측 여러분들, 특히 대학생 수행원들이 저희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불편한 점이 없도록 세심하게 돌봐주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손님을 잘 모시도록 철저히 교육받아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장차관들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생각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성과 배려였던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좀 더 오래 머물면서 더 많은 한국인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우리는 이미 한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조국 앙골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혹 신앙을 가지신 분이라면 앙골라를 위해 기도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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