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캠페인 '아버지와 가까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해도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하려면 왠지 어색하고 쉽지 않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세요’ 했더니 대학생 두 분과 군복무 중인 아들을 둔 아버님 한 분이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무뚝뚝하고 감성도 부족한 분인데,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며 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무엇 때문에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냐’고 묻는다면 명확한 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몇 가지 이유는 있다.

아버지는 일단 엄격하셨다. 보수적인 성격과 함께 교도관이라는 직업 특성 때문인지 아버지는 내가 ‘법’을 어기면 확실히 처벌하셨다. 나는 학창시절에 일탈행동을 일삼는 비행청소년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는데도 놀다가 연락 없이 집에 늦게 들어간다든지 중요한 숙제를 안 한다든지 하면 무섭게 체벌하셨다. 아버지의 체벌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고 트라우마가 되었다. 얼마나 심했는지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일찍 퇴근해 집에 오시면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찾으시면 무언가 잘못한 거 같아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버지가 싫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의 부족한 공감능력 때문이었다. 내가 놀다가 다치거나 축농증, 아토피 등으로 고생할 때 ‘괜찮아? 아프지는 않니? 금방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위로해 주시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식의 무심하고 독한 말만 던지셨다.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은 기억이 없다. ‘위로의 말 한마디 하는 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입이 닳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렇게 감성이 메마를 수 있지?’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버지는 융통성과 따뜻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 몰상식하고 거친 행동들만 하는 사람으로 내 마음에 굳게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타지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자주 만나지 않다 보니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들은 조금씩 사그라졌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갈등 없이 지낼 수 있는 게 좋았다.

이후 대학에 들어갔고 군에 입대했다. 해병대 서해 최북단 지역인 대청도라는 섬에서 복무했는데, 군 생활을 하면서 겪는 인간관계의 문제나 고된 훈련, 사회와 단절되어 지내는 경험들이 나의 미래와 가족,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바뀐 것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군대에서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성숙하면서 아버지와의 일들을 되짚어보면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나를 엄한 말로 다스려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드럽고 사랑을 잘 표현하는 아버지였다면 더 행복했을까?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지 않았다면 자칫 순간의 실수나 잘못된 생각을 고집하다가 안 좋은 길을 갈 수도 있었어.’ 이런 게 철드는 건지 아버지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버지의 방식으로 나를 위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앙금처럼 남아있던 아버지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과 태도들이 사라져갔다.

요즘 아버지는 다른 분이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이시지만 내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아버지가 되셨다. 아버지께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솔직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한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어딘가 어색해 입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경상도 남자인가 보다. 이번 기회에 아버지께 ‘내게 왜 그렇게 무섭게 하셨는지, 어떤 생각으로 나를 교육하셨는지, 요즘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등을 여쭤보고 싶다. 아버지의 대답을 들으면 내가 아버지께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

글 | 홍강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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