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EU대사 미하엘 라이터러

반백의 머리와 구레나룻, 젊은이마냥 생기 넘치는 눈빛, 똑똑 부러지는 독일어 액센트가 살짝 섞인 영어까지…. 미하엘 라이터러 대사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다정함과 따스함이 묻어나온다. 오는 1월이면 한국 부임 1년을 맞는 그는 한국의 청년들을 향해서도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하엘 라이터러 대사를 인터뷰하러 가기 전날, 기자는 지인 다섯 명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일 것 같으냐?’고 물었다. 공교롭게도 다섯 명 중 세 명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것 같다’고 답을 했다. 그러고보니 라이터러 대사에게는 지휘자가 입는 연미복도 잘 어울릴 법하다. ‘주한 EU 대사라면 지휘자처럼 한국 내 EU 회원국 대사들을 통솔하는 선임 노릇을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종로의 주한 EU 대표부에서 그와 마주하고 처음 던진 질문도 EU 대사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주한 EU 대사는 어떤 일을 하는 자리입니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EU 및 EU 회원국들의 권익과 입장을 대변합니다. EU 회원국들은 대부분 한국과 무역을 하고 있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한 상황이니까요. 둘째, 회원국들 간의 협력 도모입니다. 28개 EU 회원국 중 25개국이 한국에 대사관 등 대표부를 두고 있습니다. 25개국 대사들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모임을 가지면서 충분히,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논의하는 주제도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하지요. 저는 그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회원국들끼리도 의견을 조율케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공외교, 즉 EU 및 EU 회원국과 한국 사이의 교류와 우호를 증진합니다. 국방이나 경제 등 주요사안 관련 회의에도 참석하고요. 문화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각급 학교에서 강연도 합니다. 그밖에 한국인에게 EU를 알리는 일도 하지요.

 

‘유로빌리지’ 홍보를 위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브리핑하는 라이터러 대사
‘유로빌리지’ 홍보를 위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브리핑하는 라이터러 대사

최근 한국에는 외교관이 되거나 국제기구, 글로벌기업 근무를 꿈꾸는 청년이 늘고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우선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또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서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스물네 살이던 1978년부터 해외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외교관이 된 건 1981년이니 벌써 40년 가까이 지났네요. 그 세월 동안 저는 거의 항상 이방인이었죠. 첫 해외 근무지가 코트디부아르였는데, 거기서 저는 여지없이 외국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근무지는 일본이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연한 사고와 대처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 한국 음식을 잘 먹습니다. ‘유럽에는 이런 게 있는데, 왜 한국에는 없어?’ 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유럽 도시들 중 상당수는 인구밀도가 높지 않고, 시골처럼 여유롭고 한적합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사는 것도 적응해야지요.

가족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배우자가 외교관이라면 배우자가 근무할 나라에 직장을 구하거나 직장을 그만둬야 하니까요. 제 딸은 오스트리아, 벨기에, 일본,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덕분에 사고와 생활방식이 아주 유연하지요. 여행을 많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는 유럽에 있을 때 유레일패스Eurailpass를 구입해 각국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일정기간 동안 유럽 내 24개국 국유철도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거든요. 여행을 하면 열린 마인드와 사고를 갖게 되고, 외국어도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외교관에게 외국어는 필수지요.

 

지난 6월 3~4일 서울로에서 열린 유로빌리지 행사는 환경보호를 위한 EU의 노력과 회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지난 6월 3~4일 서울로에서 열린 유로빌리지 행사는 환경보호를 위한 EU의 노력과 회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네, 하지만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로는 북한이 있어 해외 여행이 쉽지 않습니다.

네, 사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섬과 같지요. 여러분이 섬에서 산다면, 선택 가능한 방안은 두 가지입니다. 평생 섬 안에서만 살거나, 아니면 섬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한국, 중국, 일본이 바깥세상을 향해 문을 닫았을 때는 약한 나라였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페리 제독이 와서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시모다조약을 체결해 문을 열면서 강대국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중국도 과거 쇄국정책을 펼 때는 국력이 약했고, 결국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홍콩을 영국에 양도하고 다섯 개 항구를 개방하는 난징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중국은 개방정책을 펼쳤고, 이는 오늘날 중국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한국도 원자재를 수입해서 가공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무역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발전하려면 세계화를 통해 유연한 사고를 터득해야 합니다.

 

라이터러 대사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서울에서 열린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EU 집행위원회에서 근무하던 그는 한국인 동료와 함께 이 회의를 준비했다. EU 집행위원장이던 로마노 프로디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날 때는 그를 수행하기도 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한국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는 성실하고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난 한국인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품었다. 한국 근무를 제의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한 것도 그래서였다.

외교관은 부임 전, 자신이 갈 나라를 A부터 Z까지 샅샅이 공부한다. 책과 인터넷을 뒤지는 것은 기본이고, 그 나라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동료 외교관을 만나 경험담을 듣는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처리하는 습관이 몸에 밴 라이터러 대사로서는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았다. 서울에 온 뒤 한국의 실상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기 위해 곳곳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1월에 부임하셨으니, 한국에 대해 많이 익숙해지셨을 줄 압니다.

한국에서 맞은 첫 주말,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달려갔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너무도 알고 싶었거든요. 북한산은 제가 즐겨 찾는 하이킹코스입니다. 한번은 북한산 등반을 마치고 계곡의 식당에서 비빔냉면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경복궁에서 진행되는 수문장 교대의식도 보고 왔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현대 문화와 전통 문화를 모두 경험한 것이지요.

 

직접 현장을 발로 뛰시는 걸 보니 굉장히 부지런하신가 봅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터넷이나 미디어로는 접할 수 없는, 독특하고 색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인터넷을 쓰지 않고도 이슈가 될 만한 중요한 소식을 유럽에 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외교관 일을 시작했을 때는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1982~85년 제가 아프리카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업무를 처리했고 기껏해야 텔렉스telex라는, 팩스와 비슷한 장치로 문서를 보내는 정도였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근무하다가 부르키나 파소에 갈 일이 생겼는데 가장 먼저 전화번호부를 사야 했습니다. 그 안에 담긴 관공서나 회사의 주소와 연락처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원이었거든요. 가게에서 ‘이게 마지막으로 딱 하나 남은 전화번호부’라며 비싼 값을 불러서 돈을 더 내고 전화번호부를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정보검색이 가능하고, SNS로 세계인들은 하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혁명과도 같은 변화지요.

 

라이터러 대사의 관용차인 전기차. 작고 아담한 사이즈와 유럽연합 기旗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 빛깔이 인상적이다.
라이터러 대사의 관용차인 전기차. 작고 아담한 사이즈와 유럽연합 기旗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 빛깔이 인상적이다.

환경이 바뀌어도 ‘다른 나라와의 사귐’이라는 외교 본연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람이 절대 완벽할 수 없듯, 나라들도 저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이익을 조율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외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외교란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춤, 노래, 예술품 등을 통해 언어를 넘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외교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요소는 바로 경청입니다. 상대의 마음 안에 들어가봐야 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나 가치관을 상대에게 억지로 주입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중국에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외교란 협상인 만큼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한국의 외교부 사람들과 협상을 한다면 ‘저 사람들은 우리 EU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또 무엇을 기대하며, 그들과 우리의 공통 관심사는 무엇인가?’ 를 생각해야겠지요. 반면 통상자원부 사람들과 협상한다면 같은 문제를 놓고 생각하더라도 답변이 달라집니다. 특히 한국은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더라도 쌀 같은, 국민정서상 꼭 보호하고 싶은 품목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 자신을 상대의 입장에 대입해보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되어보는 거죠.

그렇게 하려면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한국에 오니 다들 포털 네이버를 즐겨 쓰더군요. 그 전까지 저는 네이버란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한국인과 일하려면 네이버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인이 구글이 아닌, 고유의 포털사이트를 즐겨 쓴다는 건 참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한국인의 본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인은 카톡 메신저를 즐겨 씁니다. 왜 왓츠앱이나 위챗, 혹은 네이버의 라인 같은 메신저는 쓰지 않는 걸까요? 저는 한국 내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들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다른 메신저도 썼으면 합니다. 소통의 채널이 넓어지니까요. 한국의 인구는 5천만으로, 870만인 오스트리아에 비해 훨씬 크지만 그래도 세계 속에서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틀을 벗는 국제화된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지난 5월 31일 오전 9시, 주한 EU 대표부에서는 ‘유로 빌리지Eurovillage’ 홍보를 위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6월 3~4일 서울로 7017에서 열린 유로빌리지는 글로벌이슈인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EU의 노력과 28개 회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였다. 이 간담회에서 유로빌리지 행사 못지않게 화제가 된 것은 EU 대사가 타는 관용차량이었다. ‘관용차’ 하면 흔히 배기량이 높은 큰 검정 세단을 떠올리지만, 라이터러 대사가 타는 차는 파란 색의 소형 헤치백 차량이었다. 이 차는 전 세계 EU 대표부들 중 처음으로 사용된 전기차로, 환경보호를 위한 EU의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손수 관용차를 운전하고,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니실 때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환경보호와 삶의 질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유럽은 수질과 대기 등 생활환경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지역이지요. 서울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한강이 가로지르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의 대기는 세계에서도 가장 오염이 심한 편입니다. 주한 EU 대표부가 환경관련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환경오염 외에 한반도의 이슈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안보입니다. 연일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북한이 서울에서 불과 60km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요.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분쟁지대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은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늘 긴장만 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잊어도 좋다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경각심을 갖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이미지가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단기간에 탈바꿈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의 성장비결을 궁금해 합니다. EU도 한국과 협력한 덕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투머로우>의 주요 독자층은 대학생과 청소년입니다.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십니까?

여기 잘 나와 있네요. (여기서 그는 <투머로우> 책을 들어보였다.) ‘Tomorrow내일’이라고요. 이 책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내일을 생각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일 우리가 생각 못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이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 위에 북한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당장 내일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은 하루 아침에도 충분히 뒤바뀔 수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인들은 현재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다음 세대는 통일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분단된 채 6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인들은 현재상황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목표와 방향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삶의 방향이 잡힙니다. ‘4년 안에 이러이러한 목표를 이뤄야 하니 3년 동안은 큰 돈을 쓸 수 없어’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현재 한국은 가계빚이 아주 많다고 들었습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함부로 돈을 쓰지 않습니다. 내일을 행복하게 살려면, 오늘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투머로우> 독자들이 내일을 생각하며 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년이면 예순넷이 되는 라이터러 대사. 그는 틈틈이 수영과 하이킹으로 체력을 관리하고 하루 두 끼를 먹는 등 절제하는 생활을 유지하며 업무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하루 일하는 시간은 10시간 이상, 주당 6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EU 대표부의 한 직원은 ‘대사님은 젊은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 만큼 일에 의욕적인 분’이라고 귀띔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면 그는 혼자 고민하거나 자료를 찾기보다 직원들과 토론하거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지혜를 모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에게 물었다. “대사님 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는 언제였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갈 때였습니다. 유학을 간다는 건 어쩌면 그 나라에서 직장을 잡고 평생을 살아야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 여자친구와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제 인생의 작은 시험이었죠. 하지만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 유학을 결심한 것,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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