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여행기-12월엔 이스라엘로

빛은 어두울 때 더욱 빛난다. 캄캄할수록 빛의 존재는 더 돋보인다. 스스로 빛이라 이름한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스라엘 땅. 그곳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꿈의 땅이다. 백화점 외벽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치장되기 시작 할 즈음, 나는 평소 바라던 성지순례를 떠난다. 어느 나라보다도 이스라엘에 더 가보고 싶은 것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리라. 내 삶 속의 어두움을 예수님이 다 몰아내주셨듯이, 누구든지 예수님과 연결만 되면 모두 변한다. 아주 아름답게 말이다. 내 마음에 찍어온 예수님의 사진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성지순례란 무엇인가?

아시아 동쪽 끝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대륙을 횡단해 아시아 서쪽 끝에 자리한 이스라엘 상공으로 진입한다. 얼마 뒤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한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한다. 샤론평야를 지나 인류 최후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므깃도 평원을 거쳐 협동농장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리조트에 와서 여장을 풀었다.

이번 여행에는 예루살렘에서 외신기자로 있는 장주현 기자가 유대인 가이드 매니와 함께 동행하는데, 요즘 그는 투머로우 특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내일 있을 스케줄 전에, 그는 여행 목적과 방향에 대해 설명해준다.

중동 스타일의 샐러드 바. 비트나 고추절임이 있어서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중동 스타일의 샐러드 바. 비트나 고추절임이 있어서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이 세상 최고의 성지聖地는 성경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성지라 불리는 곳에서는 대부분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성경 속에서 예수님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갈릴리를 거니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서 똑같이 역사하고 계신 것을 아는 게 성지순례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역사적인 설명은 줄입니다. 역사적으로 쉽게 설명해줘도 며칠 뒤 깡그리 잊어버린단 걸 알았거든요. 성지순례와 고고학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고고학이 발달되어야 성지순례가 가능합니다. 발굴이 돼야 볼 수 있으니까요. 고고학은 역사의 부검剖檢과 같아요.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사인을 밝히는 게 부검이잖아요. 우리가 걸어 다니는 땅 속에는 역사라는 거대한 시체가 묻혀 있어요. 그걸 끄집어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검하는 것이 바로 고고학이에요. 그런데 부검하는 자의 소견에 따라서 부검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곳을 보러 가도,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살아 있지 않으면 그곳은 성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나는 일부러 박물관, 미술관만 다니는 여행을 했는데, 그 말대로라면 역사의 시신들만 보고 다닌 셈이다. 이번엔 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여행을 할 것 같다.

 

유대광야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성경 및 여러 자료들로 인해 에세네파의 종교 개념과 생활방식이 알려졌다
유대광야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성경 및 여러 자료들로 인해 에세네파의 종교 개념과 생활방식이 알려졌다
갈릴리에서 54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쿠르씨에서 이주해온 이방인들은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이곳에 거라사인 타운을 조성하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갈릴리에서 54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쿠르씨에서 이주해온 이방인들은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이곳에 거라사인 타운을 조성하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쿠르씨

이스라엘은 초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라는데 새벽 5시에도 밖이 훤하다. 우리는 키부츠 농장에서 직접 키웠다는 못생긴 야채와 과일들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갈릴리로 향했다.

첫 도착지는 쿠르씨Kursi. 성경 속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알려진 곳이다. 거기서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 속의 귀신들을 쫓아내 2천 마리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시고, 그 돼지 떼는 갈릴리 바다로 내리달아 빠져 죽었다.

당시 갈릴리에서 54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쿠르씨에서 이주해온 이방인들이 여기에 모여 돼지를 치며 살았다. 수심 전문가들은 성경의 말대로 돼지 2천 마리가 단번에 수장되려면 물 깊이가 27미터는 되어야 하는데, 당시 쿠르씨 지역의 비탈 언덕의 수심은 32미터여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치밀한 고증과 분석은 장특파원이 향토사학자, 수심 전문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수년 간 만나서 얻어낸 매우 과학적인 결론이라고 한다. 성경이 과학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 비탈길을 오늘 내가 오르고 있다니, 감격스럽다.

종려나무에 달리는 열매 대추야자는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해 꿀과 같다고 표현한다
종려나무에 달리는 열매 대추야자는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해 꿀과 같다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언덕 아래 비잔틴 시대 유적지에서만 맴돌다 가버리고, 황량한 언덕까지 오르는 일행은 우리 팀 외엔 없다. 인간의 역사를 보려는 길과, 예수님의 역사를 보려는 길은 이렇게 시작부터 다르구나 싶었다.

 

 

가버나움 회당터를 멀리서 찍은 사진. 앞쪽 검정색 유적지는 그곳에 흔한 현무암으로 지은 것이며,뒤쪽 우윳빛 건물은 예수님 사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돌을 가져다 지은 것이다. 예수님 당시 가버나움 회당은 갈릴리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가버나움 회당터를 멀리서 찍은 사진. 앞쪽 검정색 유적지는 그곳에 흔한 현무암으로 지은 것이며,뒤쪽 우윳빛 건물은 예수님 사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돌을 가져다 지은 것이다. 예수님 당시 가버나움 회당은 갈릴리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가버나움Capernaum은 베드로의 장모, 백부장의 하인, 중풍병자, 혈루증 여인, 소경과 벙어리 등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매우 많은 곳이다.

예수님도 이곳에서 20개월 이상 지내시면서 사역을 하셨다고 한다. 천천히 걷다보니 검은색 현무암이 많이 보인다. ‘이 돌 위로 예수님이 걸어가셨을까? 이 돌들은 예수님 얼굴도 보고 음성도 들었겠지?’ 발에 채는 돌들이 부럽게 보였다.

장특파원이 그간 연구해온 검증된 해석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의 말이 청중의 마음에 밀려들어오면서 2천 년 전으로 우리는 거슬러올라간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일을 했습니다. 갈릴리에서는 가장 큰 회당이 가버나움에 있어 예수님이 여기로 오신 겁니다. 그물을 버리고 제자들도 따라와서 예수님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마태복음에서 가버나움을 책망셨을까요?

회당 터 건물의 돌 색깔을 눈여겨보세요. 밑돌은 검정 돌, 윗돌은 흰 돌이에요. 회당이 증축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증축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실 때 믿고 따르는 자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말씀 들으러 수천 명씩 단번에 모였으니까요. 이러니 이상한 풍조가 돈다는 소문이 나서, 로마군이 조사하러 왔는데 그들 눈엔 예수님이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보였어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민란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다 십자가 사건 이후, 유대인들이 갈릴리 일대를 다니면 다시 조사를 했어요. ‘너, 갈릴리 출신이지?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어?’ 상관이 있다고 답하면 회당에서 축출하고... 그런 불이익을 주면서 예수님과 연관된 사람들을 색출해내고 예수님의 행적 지우는 일들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사실이 드러나면 취직도, 진급도 안되니까 ‘나는 예수와 상관이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사람들이 회당을 증축했습니다. 멀리 예루살렘에서 흰 돌들을 가져다가 가버나움의 검정 돌 위에 얹은 겁니다.”

회당 증축은 결국 ‘우리가 다시 율법으로 돌아왔다고, 우리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고 고백하는 무언의 행위였다.

‘검은 돌 위의 흰 돌.’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변절 증거다. 나를 하얗게 보이려는 것은 거짓이다. 어둡고 검은색이 본래 내 모습이니까. 내가 어두워야 빛이 필요한 것을 안다. 그래야 빛 되신 예수님이 보인다. 가버나움의 검은 돌을 생각하다 보니,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예수님이 설명한 복의 개념은 사람의 생각과 정반대였다.게네사렛에서 베드로을 만나 그물을 내리라고 할 때도상식을 뒤집는 제안이었다.
예수님이 설명한 복의 개념은 사람의 생각과 정반대였다.게네사렛에서 베드로을 만나 그물을 내리라고 할 때도상식을 뒤집는 제안이었다.

팔복산과 게네사렛

이제, 예수님이 여덟 가지의 복을 선포하신 팔복산The Mount of Beatitude을 향해 걷는다. 우리는 부유한 것, 건강한 것, 기쁜 것이 복인 줄 아는데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돈 많은 사람,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의에 주린 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세상이 정한 복의 기준을 갈아 엎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지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디베랴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게네사렛Gennesaret 선착장에서 잠시 기다린다. 갈릴리 북서 해안인 이곳은 지금은 볼 게 없지만, 옛날에는 수산물이 풍성하여 어업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이 장소가 의미 있는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예수님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상식밖의 제안을 하셨다.

“예수님 당시 게네사렛 쪽은 물이 굉장히 얕았다고 합니다. 지금 수위는 그때보다 낮은데 육지에서 100m 가까이 헤엄쳐 나가도 발이 땅에 닿거든요. 제가 궁금해서 직접 실험을 해봤어요. 노련한 어부 베드로가 그걸 몰랐을리 없지요. 그는 얕은 물의 고기만 잡을 수 있는 짧은 길이의 그물을 사용하고 있었을 겁니다. 베드로는 짧은 그물을 단숨에 쳐서 바로 잡는 방식을 썼을테니까요. 그날은 운이 없었던지, 짧은 그물로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나타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그 그물의 길이가 깊은 물에 내리는 용도가 아닌 것을 알고 계셨을 거예요. 상식을 벗어나는 이 요청에 베드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지금 베드로가 가진 그물은 얕은 물용이라서 깊은 데 가봐야 소용이 없거든요. 닭 잡는 칼로 황소 잡으라는데.... 믿기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해서 깊은 물로 가서 그물을 내립니다.

그런데 얕은 물에 안보였던 고기들이 멀리 소풍을 왔는지, 깊은 그곳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금방 잡히는 겁니다. 베드로 심정이 어땠을까요? 베드로는 그날 밤이 새도록 수고해도 자신이 얻은 것이 없었기에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듣고 따를 수 있었습니다. 해봤지만 실패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음성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자기 생각 너머에 있는 말씀의 능력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거주 14년차 기자답게, 장 특파원의 명확한 설명은 우리의 상식을 부수고 허를 찌른다.

 

마사다 요새는 높이 약 450m의 절벽 위에 있는 언덕으로, 길이 600m, 폭 250m 가량의 평지다.밖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북쪽 절벽에 큰 계단을 만들어 놓은 듯한 3층 구조의 계단식 건물의 터가 보인다.
마사다 요새는 높이 약 450m의 절벽 위에 있는 언덕으로, 길이 600m, 폭 250m 가량의 평지다.밖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북쪽 절벽에 큰 계단을 만들어 놓은 듯한 3층 구조의 계단식 건물의 터가 보인다.

마사다 요새

드넓은 유대평야로 나간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역사적 현장이다. 그래서 중고생 수학여행과 군인들 정신교육의 단골 코스이기도 한데, 마사다를 통해 성지순례자가 봐야 할 포인트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이다.

높이 450m 요새라서 그곳에 갈 때 대부분 케이블카로 이동한다. 올라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구절양장 언덕길을 따라 도보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유대인의 로마 대항지가 되기 전에, 이곳은 기원전 40년 경 헤롯 1세가 지은 겨울 궁전이었다. 아기 예수를 잡아 죽이려 했던 그는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나면 도망할 은신처가 필요해서 몇 년이라도 버틸 수 있는 물 저장 탱크와 저장고를 갖춰서 3층 대리석 궁전을 건축했다.

기원후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 예루살렘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려고 로마에서 공수 특전단이 들어왔다. 이때 봉기했던 유대인들 중 960명의 민간인들은 항복을 안하고 버티다가 유대광야 길을 따라 헤롯 왕이 만든 이 요새로 올라왔다.

최강의 군사를 1만5천 명을 파견했어도 결국 승리하지 못한 로마군은 결국 3년 동안 탱크 모양의 전차로 요새 언덕을 치고 올라가 벽을 허물면서, 이스라엘 포로들을 투입해 경사로를 쌓아서 요새에 이르렀다. 로마의 점령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유대인들은 결단을 한다. 제비뽑기로 선정된 10명이 모두를 죽도록 도와주고 마지막에 그들이 자결을 택하는 방법이다. 단칼을 입에 물고 성벽을 올라온 로마군은 잔인한 복수를 꿈꾸었으나 이미 유대인들은 죽어 있었다. 3년간 서로 버텼던 전쟁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마사다에 올라가 항쟁했던 유대인들은 알고 보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도한 자들이었다. 젊었을 때, 그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빌라도 법정에 왔을 때 ‘못 박으소서’ 했던 자들이거나 그 후예들이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마음에서 부정한 사람들의 최후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는 곳이다. 빌라도를 향해 ‘만약 화가 있으면 우리와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던 사람들의 최후였다.

 

엔게디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사해 풍경.
엔게디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사해 풍경.

엔게디

우뚝 선 모습이 유대광야 어디서도 잘 보이는 마사다와 반대로, 엔게디 계곡은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과 연결되었을 때 어떤 어려움도 평안과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음을 실증해주는 곳이 바로 엔게디 계곡이다.

사울을 피해 엔게디로 가면서 다윗은 이러다가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걸 발견한다.

다윗을 위해 하나님이 마련한 이 오아시스에는, 연중 내내 폭포물이 흐르고 스물여섯 종류의 먹을 과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이 골짜기로 들어갈 때,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 눈에는 덤불숲으로만 보였을 텐데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다윗을 따랐을까? 다윗과 동행하면 광야에서 배고프기도 하고 잠잘 곳도 없었을 텐데... 다윗을 따라가는 삶이 늘 편안하고 안정된 것은 아니었을 텐데.... 원래 우리 인생이 메마른 광야를 걷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러다 중간에 그늘을 만나고 시원한 물을 마셔서 인생 살맛이 생기는 게 아닐까?

엔게디를 오르내리며 다윗을 생각해 본다. 사람들의 눈에 다윗은 보잘 것 없는 목동에 불과했다. 그는 결코 왕이 될 훌륭한 조건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하나님을 늘 찾고 맞춰가려는 귀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겉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갖춰져 있었던 엔게디처럼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그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내 인생이 광야 같다고 느낄 때가 또 오겠지. 그때를 위해 몇 천 년 동안 변함없이 콸콸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를 내 마음의 귀에 입력시킨다. 삶이 메말라 있을 때 나는 엔게디 다윗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사해

똑바로 선 내 머리끝이 방문 손잡이에올 만큼 어렸을 때,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며 신문도 보고 일광욕하는 사진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여긴 어딜까? 튜브도 없이 어떻게 몸이 물 위에 뜰까? 만일 내가 여기에 간다면, 헤엄치기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을 넘나들며 호기롭게 보았던 그곳을 반세기 훌쩍 넘어 오늘에야 가본다. 사해의 발원지는 이스라엘의 헬몬산 이다. 여기서 시작한 물줄기는 갈릴리 호수를 거쳐 다시 요단강을 타고 내려와 사해로 모인다. 사해의 폭은 갈릴리와 같은 14km지만, 남북 길이는 78km로 갈릴리보다 면적이 6배 더 넓다. 그런데 사해는 해발 –410m로, 지구에서 지표면이 가장 낮은 곳이다. 원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는 법인데, 사해보다 더 낮은 곳이 없기 때문에 들어온 물은 나갈 출구가 없다. 그렇게 갇힌 물은 뜨거운 햇볕에 증발되면서 염분이 쌓이고 쌓여 아무런 생물도 살 수 없는 짜디짠 바다로 만들었다.

사해死海라면 죽어 있는 바다인가?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니까 그런 셈이다. 그래서 죽이는 바다이기도 하다. 사해의 염분 농도는 일반 바닷물의 농도보다 여섯 배가 넘는다. 따라서 특수한 염생 해초와 세균을 제외하면 어떤 생물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이다. 그런 조건이 오히려 피부병을 유발하는 세균들도 살기 어렵게 만들어서, 사해는 피부병 치료 장소로도 매우 유명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사해는 세계 생산량의 1/4에 달하는 브롬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사해 주변의 진흙은 미용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죽은 바다가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사해는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스파라고 할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다.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 수 없는 반면, 피부병 세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 이 호수에 몸을 담그면 수영을 못해도 누구나 뜬다. 또한 천연 미네랄이 풍부해 머드팩을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다.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 수 없는 반면, 피부병 세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 이 호수에 몸을 담그면 수영을 못해도 누구나 뜬다. 또한 천연 미네랄이 풍부해 머드팩을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너무 낮은 곳에 위치해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사해 수면.... 그러나 하나님은 사해를 사랑하셔서 썩지 않게 염분을 높이셨다. 사해에 몸을 담그면 뚱뚱하든, 날씬하든, 젊었든, 늙었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동등하다. 마치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 차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황금돔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장소이자,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곳이다.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황금돔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장소이자,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곳이다.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옛 헤롯 성전의 서쪽 벽(The Western Wall) 60미터. 우리는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옛 헤롯 성전의 서쪽 벽(The Western Wall) 60미터. 우리는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성전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벽틈 사이로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워 넣는다.
성전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벽틈 사이로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워 넣는다.

예루살렘

갈릴리와 유대평야를 돌아보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이 마침 안식일의 시작이었다. 안식일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에 매여, 마음까지 안식하지 못하고 사는 유대인들의 단편을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볼 수 있었다. ‘안식일 엘리베이터’라고 명명해 작동시키는 이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여닫기를 자동 설정해 버튼 누르는 일로 안식일을 범하지 않게 해준다. 손가락으로 버튼은 누르지 않겠지만, 마음으로 누른 버튼은 어쩌지? 마음으로 짓는 죄를 더 크게 보시는 예수님이 그려졌다.

다음날 우리는, 예수님이 나귀 타고 입성하신 예루살렘을 벤츠 관광버스를 타고 들어와 감람산에서 하차했다. 건너편으로 예루살렘 성전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그곳은 이슬람 소유로 있지만, 그 성전이 우리 마음 안에 이뤄져 있다면 어느 종교가 차지하고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저녁이면 감람산으로 돌아가셨을 예수님을 떠올려본다. 그분을 통해 병이 낫고 죄사함 받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분을 위해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본래 우리에게 없는 것일까?

비록 솔로몬의 성전은 허물어져 없지만, 예수님이 성전에서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만나서 주신 ‘사랑’은 우리 마음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룬 일에 관심을 가지면 무엇을 봐도 사람의 흔적만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모든 문화와 문명은 사람의 죽음 이후 박제가 된다. 이번 여행은 사람의 길이 아닌,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가는 것이었다.

순례의 길은 버스를 타고 가서, 허허벌판에 내려 멀리 골똘히 바라보는 일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엘라 골짜기에 올라갔을 때였다. 거센 바람이 귓전을 스쳤고 눈앞에는 비닐하우스 농장이 펼쳐졌다. 여기서 무엇을 볼 것인가? 장특파원의 설명을 따라서 우리는 마음의 눈을 다윗의 십대 시절로 맞춘다. 그러자 비닐하우스 위로 거대한 골리앗이 보이고, 건너편에서 소년 다윗이 나타난다. 우리는 함께 외쳤다. ‘골리앗,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스라엘이 아름다운 것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먼저 와계시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때마다 예수님이 돕고 계시기 때문이다.

비아 돌로로사가 끝나는 지점인분묘교회 정문 앞의 광장.
비아 돌로로사가 끝나는 지점인분묘교회 정문 앞의 광장.
현재 예루살렘 성의 다메섹 문 근처에 있는가든툼(Garden Tomb)은 예수님의 무덤으로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기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이다.
현재 예루살렘 성의 다메섹 문 근처에 있는가든툼(Garden Tomb)은 예수님의 무덤으로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기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이다.
양문 곁에 위치한 베데스다 연못. 제사 지내려고 데려온 양을 깨끗이 씻기는 곳이었다.이곳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만나말씀으로 일어나게 하셨다.
양문 곁에 위치한 베데스다 연못. 제사 지내려고 데려온 양을 깨끗이 씻기는 곳이었다.이곳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만나말씀으로 일어나게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의 감람나무.과학자들에 의하면 수령이 3천 년 되었다니,예수님의 기도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감람나무.과학자들에 의하면 수령이 3천 년 되었다니,예수님의 기도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을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고 하는데, 나는 이번 여행으로 버킷리스트 두 개를 지울 수 있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여행이었고, 또 하나는 올해 85세인 친정어머니와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그 친정예루살렘어머니 덕분에 우리 모녀는 여행 중에 감사한 일이 많았다. 내가 깍쟁이처럼 생겨서 먼저 말을 붙이지 않는 한, 상대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 편인데 어머니와 함께 다니니까 “어르신, 어떠세요?”하면서 선뜻 말을 걸어온다. 성격 호탕한 어머니가 윤활유 역할을 해주셔서 나는 사람들과 잘 섞여 지낼 수 있었다.

투어 팀이 이동할 때마다 나이 많은 어머니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하지만 실제 어머니는, 나보다 더 활기차고 정신력도 강하셨다. 팔복산 고개도 성큼 넘으시고, 므깃도 지하터널도 당당하게 다녀서 젊은이들이 힘들다고 불평할 기회를 원천봉쇄하셨다. 어머니와 단둘이 해본 첫 여행이 마침 성지순례라니, 더 행복하고 더 감사했다. 버스 안에서 배운 히브리어 노래를 속으로 불러본다. ‘호두 라 아도나이 키 톱(선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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