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아프리카 人›

모바일 인터넷 발달 후에 케냐 청년들의 일자리 문화가 바뀌고 있다. 유치원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영어를 바탕으로 그들은 세계를 향해 구직의 열을 올리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케냐의 영어교육
케냐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 정규 TV와 라디오에는 하루 종일 영어 방송이 나오고, 학교 수업은 국어 시간 외에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장터 노점의 할머니는 영어로 고구마 장사를 하고, 택시 운전사도 영어로 손님을 맞이한다. 심지어 노상강도들도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할 때 영어를 사용한다.

케냐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영어로 대화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케냐인의 유창한 영어 비결은 유치원 교육에서 발견할 수 있다. 케냐의 유치원에서는 일주일에 며칠씩 ‘영어의 날’을 시행한다. 그날에는 케냐 언어를 쓸 수 없고 오직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 아직 모국어도 서툰 아이들이 하루 종일 영어로만 생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선생님과 아이들은 특별한 놀이를 한다. 현지 언어로 말하다 적발된 어린이의 목에 작은 널판이 붙은 목걸이를 건다. 널빤지에는 ‘저는 현지말을 사용했어요’라는 짓궂은 글귀가 적혀있다. 우스꽝스런 목걸이를 받은 아이는 울상이 된다. 아이는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친구를 잡아내야만 널판 목걸이를 넘겨줄 수 있다. 영어의 날이 되면 널판 목걸이는 여러 아이들의 목에서 목으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걸이를 거는 아이들의 수가 적어지고 마침내 한 명도 걸지 않게 된다. 어린 나이때부터 영어로 소통하고 생활하는 데 적응하는 것이다.

케냐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영어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확실히 발음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수업은 받아쓰기와 발표 위주로 진행된다. 한국에서 모든 학생들이 구구단을 외워야 하듯 케냐에서는 영어 듣기 훈련을 가장 기본적인 과정으로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의 대부분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학교 공부를 포기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영어로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를 자막 없이 그대로 시청한다.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궤도에 오른 학생들은 사방의 영어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연스럽게 실력을 늘린다. 듣고 말하는 소통 중심 영어에 익숙한 케냐 청소년들은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머리 아픈 영어 대신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재미있는 영어를 배운다. 케냐에서는 영어 시험 점수가 낮은 아이들도 영어 드라마는 잘만 본다. 실제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인터넷과 영어의 만남, 케냐 청년들을 날게 한다
영어 능력이 뛰어난 케냐 청년들은 요즘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예전에는 얻을 수 없었던 고급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방대한 정보가 있다. 케냐 청년들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한한 정보들을 습득하여 자신의 경쟁력으로 쌓고 있다.

사실 우리가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라는 표현은 엄밀히 따지면 반만 맞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라고 해야 한다. 인터넷에는 다른 어떤 언어보다 영어로 된 정보의 양이 많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방문해 보면 영어로 된 표제어는 549만 건인 반면 독일어는 211만 건, 프랑스어는 191만 건으로 영어 정보의 양이 훨씬 크다. 한국어 표제어는 39만건에 불과하다. 특히 학술적인 고급 정보에 관해서는 영어 정보의 양과 질이 월등하다.

인터넷에 무궁무진한 정보들이 담겨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그것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열악한 인프라로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성전화 등의 고가 장비를 사용하거나 대학 연구소에 방문해야 인터넷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옛말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정부와 기업들은 신속하고 꾸준하게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덕분에 몇몇 앞서가는 국가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케냐 통신 위원회The Communications Authority of Kenya는 2017년 케냐 전체 인구 중 87.4%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아프리카 평균 28.7%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인터넷 보급률 뿐 아니라 속도 또한 나아지고 있다. 미국의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기업 아카마이 테크놀로지Akamai Technologies의 2016년 4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터넷 속도가 빠른 나라는 15.0Mbps를 기록한 케냐이다. 이는 프랑스(10.0Mbps)나 중국(6.3Mbps)보다도 높은 수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6.6Mbps, 모로코 5.2Mbps, 나이지리아 4.1Mbps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속도 기록은 모바일 통신사에서 제공되는 4G와 5G 서비스로인해 조만간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터넷 이용은 더 이상 신기할 일이 아니다. 케냐에서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 대학생들은 자취방을 구할 때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는지를 먼저 살핀다. 그들은 집세를 더 내더라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방을 선호한다. 거대 SNS 기업 페이스북은 탄자니아에서 데이터 요금 없이 무료로 페이스북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인터넷을 모르던 수많은 탄자니아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들어가 무수히 많은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 내고 있다. 필자는 케냐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복권을 구입하거나,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WhatsApp’으로 손자에게 셀카 사진을 보내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케냐의 유명 블로거들이 유튜브를 이용한 1인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패션과 여행, 운동, 음식 등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자유롭게 소개하는 콘텐츠는 케냐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기는 방송이다.
케냐의 유명 블로거들이 유튜브를 이용한 1인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패션과 여행, 운동, 음식 등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자유롭게 소개하는 콘텐츠는 케냐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기는 방송이다.

이제 케냐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하면 안돼요
요즘 케냐 젊은이들 사이에는 예전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외국의 업무를 받아 처리해주는 일이다. 나의 친구 데이비스는 케냐의 명문 나이로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그는 얼마 전에 변호사 시험을 치렀다. 11월에 발표될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몇 달 동안 데이비스는 인터넷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의뢰인은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베트남 학생이다. 아직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지 못하는 그 베트남 유학생은 학교 레포트를 작성한 후 이메일로 케냐에 있는 데이비스에게 보낸다. 데이비스는 월남 쌀국수처럼 작성된 문서를 올바르게 교정해주거나 아예 새롭게 만들어주고 보수를 받는다. 데이비스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그 일을 하면서도 웬만한 공장 노동자보다 괜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데이비스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서 베트남 대학생을 소개받았다. 저렴하게 영어 업무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영미권의 의뢰인과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케냐의 일꾼들을 만나게 해주는 웹사이트는 여러 곳이 호황 속에 운영 중이다. 간단하게는 인터뷰 번역, 지역 정보 자료 수집부터 시작해 대학교 전공 레포트 작성, 논문 대필 등 여러 가지 의뢰가 올라온다. 워드 문서 한 쪽 당 우리 돈 3천 원에서 1만 원 정도를 삯으로 받는다. 작성이 어렵거나 분량이 많은 자료일수록 보수가 늘어난다. 업무를 마치면 선진국 기준으로는 저렴하지만 케냐 기준으로는 넉넉한 수고비가 전달되며 의뢰인과 수임인은 서로 만족한다. 한 건만 제대로 해내도 일반 케냐 노동자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인터넷 비즈니스에 능한 케냐의 청년들은 1인 미디어 사업에도 뛰어들고 있다. 워드프레스나 블로그스팟에 영문 블로그를 개설하여 접속자를 끌어 모으고 광고를 유치해 돈을 버는 것이다. 초기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유튜브를 이용한 1인 방송도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는 케냐 사람들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영어에 능통한 그들은 전 세계인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당연히 수입 규모도 커지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만 소비되는 한국어 콘텐츠 시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영어와 인터넷은 케냐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아프리카라는 지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세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들은 미처 몰랐던 자신들의 잠재 능력을 깨닫고 정보의 바다 위를 날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부터 배운 영어를 이용해 인터넷의 정보를 흡수하고 되팔고 있다. 자신이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무셈비 맘보는 나에게 말했다.“이제 케냐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하면 안돼요. 노력하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인터넷에 널려 있거든요.”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대로 우리는 조만간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선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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