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보다 먼저 찾아와 시민들의 마음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여는 이들이 있다. 바로 그라시아스 합창단원들이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2014년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제에서 대회 최고상인 혼성부문 1등상과 특별상을 수상해, 음악계에 한국의 위상을 높인 바 있다.

올해로 제7회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북미 25개 도시에서 열렸다. 한 달 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미국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선물을 받았다. 올해 북미 투어에서는 특히 수십억 달러의 빚을 지고 파산한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공연이 펼쳐져 미국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7년 9월 25일, 공연장 메이스닉 템플Masonic Temple에는 3,700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인종, 주택, 교육, 문화, 사회 양극화현상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 도시에서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은 특별한 의미를 더해준다. 새로운 희망으로 도시 전체에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디트로이트를 집중 조명해 본다.

자동차 왕국에서 쇠락한 도시를 상징하게 된 디트로이트
‘모터시티Motor City, 모타운Motown’이란 별명은 모두 한때 유명했던 도시 디트로이트를 일컫던 말이다. 제조업 국가 미국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자동차 산업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1900년대 초 오대호 연안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이점을 가진 이 도시에 소위 ‘빅Big 3’로 불리는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 크라이슬러 그리고 제너럴모터스가 자리잡았다. 이로 인해 1900년대 약 28만 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1930년대에 약 150만 명을 넘었고, 1950년대에는 약 185만 명에 달했다. 약 50년 간 인구가 여섯 배로 증가한 것이다. 20세기 초반,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덕분에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미국이란 나라가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것처럼, 남부 흑인들에게는 백인들과 같은 임금을 받고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남부흑인들이 일자리와 자유를 찾아 북부 공업 도시로 이주하면서 인구가 대폭 증가했다. 흑인 인구의 급증으로 백인 사회는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백인들은 점차 도시 교외 지역으로 이사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이를 ‘백인들의 대탈주’라고 불렀다.

194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던 백인 인구 비율은 이제 고작 7% 정도다. 그 대신 흑인들이 도시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디트로이트에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8마일 로드’가 있다. 남부로부터 흑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백인들이 북쪽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이 길은 일종의 인종 경계선이 되었다. 1950년대 한때는 백인들이 이 길을 따라 높이 2미터의 차단벽을 설치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인종 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1967년 43명이 사망하고 2천 여명이 부상을 입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도시 곳곳에서 폐허가 된 채 버려진 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폐허가 된 채 버려진 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찬란했던 이 도시가 쇠퇴와 쇠락의 길로 들어선 이유 중의 하나는 산업화의 눈부신 성장 뒷면에 이런 복잡 미묘한 원인들이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용이 대중화가 되고, 거미줄과 같은 도로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입지적인 이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성장으로, 중대형 자동차 생산에 집중하던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낮아졌다.

급기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주택가격 하락으로 연체율이 급증해 대형 금융업체들이 부도가 난 현상)가 터지면서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 역시 파산에 이르게 된다. 자동차 산업의 몰락과 백인들의 교외 이주로 디트로이트 인구 감소는 1950년 185만 명으로 정점을 찍다가 1980년 120만 명, 현재 약 68만 명으로 인구가 급감한다. 인구의 감소는 곧바로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세수稅收 감소, 도시의 재정 악화, 치안 문제와 교육의 위기, 의료, 물, 전기와 같은 공공 서비스 부실로 이어졌다. 재정악화를 이유로 공무원과 경찰 인력을 대폭 감소시켰고 디트로이트 시의 이미지는 ‘범죄의 도시, 가난한 도시, 버려진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A씨 가정이 왜 해체되었나?
디트로이트 시민 A씨의 가정은 단란했다. 그런데 어느 날 A씨의 아버지가 실직했다. 당장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서 다른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가 좋지 않아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실직했다. A씨는 불안했고, 자연스럽게 탈출구가 필요했다.

술을 마셨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마약을 하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다니던 공립학교는 갑작스럽게 재정난으로 폐쇄되었다. 이웃 학교로 이동해야 했고, 열악한 학교 환경을 보다 못해 시위에 참가한 교사들로 인해 아이들은 다시 길거리로 방치되었다. 거리의 아이들은 범죄, 술, 마약에 노출되었다.

나 또한 작년에 디트로이트에 가서 놀란 것은 가족 구성원 중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이거나 크고 작은 범죄로 감옥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디트로이트의 복구, 무엇에 희망을 품어야 할까?
2014년, 도시는 파산 신청을 한 상태다. 디트로이트에 대해 말로만 들었던 사람들도 이 도시에 와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후 마이크 더간Mike Duggan이라는 유능한 정치인이 시장이 되고, 자동차 3사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는 점점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쇠락과 함께 마음이 무너져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정치인과 정부, 기업이 도시 환경을 바꿀 수 있고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는 있지만 이런 변화는 표면적이고 제한적일 뿐이다. 정부에서는 당장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일에는 예산을 투자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외형적인 변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미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까지는 이끌어 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디트로이트에 살면서 삶이 새로워지는 사람들은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 마음에 행복과 소망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와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작은 어려움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더 깊은 절망에 빠져 들어가 삶을 포기하는 것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공교육의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어린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보다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다.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는 확신이 없는 아이들은 마약과 술에 취한 부모를 보고 성장하면서,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마음에 무기력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 결과 마약을 하거나 알코올에 빠지는 것이다. 혹은 사회를 향해, 부모를 향해 증오심을 갖고 범죄에 빠지기도 한다.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만 즐기는데 전념할 뿐이다. 하지만 일단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거칠고 어두워 보이는 얼굴 너머에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사랑하는 이유
2011년부터 북미 전역에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투어가 시작되었다. 칸타타 공연은 특히 디트로이트 시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연이었다. 오랜 가뭄끝에 내린 단비처럼 시민들의 마음에 깊이 행복을 안겨주었다. 힙합이나 록 콘서트와 같은 대중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분, 슬픔, 증오를 해소시키기보다 오히려 증폭시켜 발산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라시아스의 음악은 듣는 이들에게 따뜻한 휴식을 안겨주듯 소망과 평안을 느끼게 하였다.

인간은 살면서 행복을 느낄 기회가 많을수록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카타르시스와 같이 단순히 감정을 발산하는 차원을 넘어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공연을 관람한 이들에게 깊고도 진한 울림을 남겨주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다른 어느 도시의 시민들보다 더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사랑하고 있다.

칸타타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3,70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칸타타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3,70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디트로이트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대관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문의 전화를 받았다. 이 도시에서 칸타타 공연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고, 만나본 미국 대학생들 중에는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해마다 칸타타를 보러 왔던 학생들도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반가워하기도 하고 함께 행사 준비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팬이 되어버린 어떤 아주머니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수천 장의 티켓을 집적 전하기도 하셨다. 어떤 분들은 관객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칸타타와 함께 하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칸타타가 끝나고 난 지금도 매일같이 우편함에는 마음을 담아 남겨둔 소정의 금액을 보내오는 분들도 있다. 공연이 끝났지만 내년 칸타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디트로이트 사람들에게 칸타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꼭 자원봉사자로 함께하고 싶어요!”
“공연을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고, 환상적이었습니다. 내년에도 잊지 말고 디트로이트에 공연을 열어주세요!”

공연의 2막 뮤지컬‘안나’. 개구쟁이 안나 스토리는 미국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큰 호응을 얻었다.
공연의 2막 뮤지컬‘안나’. 개구쟁이 안나 스토리는 미국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자동차 산업으로 인한 도시의 번영과 쇠퇴, 흑백의 인종갈등,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양극화, 이런 모든 분열과 갈등의 문제들이 산재한 디트로이트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공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아우르고 있다. 칸타타 공연이 열리는 메이스닉 템플Masonic Temple공연장에는 그 어떤 공연장에서도 볼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3,700명의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어린 아이부터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흑백을 넘어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결코 한 곳에 같이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공연 내내 울고 웃고 함께 행복하게 하는 힘이 <크리스마스 칸타타>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겨울 내내 쌓여 얼어붙은 눈덩이를 녹이는 것이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아니라 봄날의 따뜻한 햇살인 것처럼, 그라시아스 음악의 따뜻한 울림이 시민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고통과 절망을 녹이고 소망과 행복을 움트게 하는 것을 보았다. 내년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더욱 기대되고 소망스럽다.

뉴올리언즈 <크리스마스 칸타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는 물바다가 되었다. 이재민만 6만 명이 경기장에서 지내야 했다. 뉴올리언즈에서 만났던 관객들의 특징은 다수가 그라시아스합창단의 칸타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사랑하는 고정팬이었다.

라스베이거스 <크리스마스 칸타타> 지난 10월 1일, 5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미국 역대 최악의 총기사건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났다. 네바다주에서 관광과 도박의 최고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의 거리에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10월 9일, 상처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 도시에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열렸다. 미국 6대 TV방송국 중 하나인 폭스FOX TV 뉴스 시간에 <크리스마스 칸타타> 소개 소식을 접한 시민, 몰리 테일러Molly Taylor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때맞춰 와 주었습니다. 칸타타 공연은 지난 총기사건 이후 우리에게 꼭 필요했습니다. 불쌍한 이 도시, 불쌍한 이 나라는 그 사건 이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메시지가 지금보다 더 합당한 시기는 없으며, 지금 여기 모여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했습니다.”

공연장인 올리언스 아레나에 4,500명이 입장하였고, 이들은 칸타타 공연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함을 느꼈다


​글 | 노대일 (IYF Michigan Director)
​사진 | 김진욱 객원기자
정리 |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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