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아랍어 구사자‘가 될 송영우

대한민국 토박이 송영우 씨는 꿈이 남다르다. 세계 최고의 영어 구사자가 아닌, 보통 사람의 눈에는 글씨라기보다 그림처럼 보이는 아랍어 알파벳을 유창하게 읽고 말하는 ‘세계 최고의 아랍어 구사자’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꿈을 갖게 됐을까?

“저는 지난 2014년에 이스라엘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경험한 일들을 계기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꿈들이 만들어졌죠. 이스라엘에 가기 전에 아랍어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제가 하고 있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말썽만 부리던 아들이었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 부모님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장학금을 목표로 공부한 것입니다. 열심히 한 만큼 결과는 좋았습니다.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고요. 그런데 점점 회의가 찾아왔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생겼습니다.”

방학이 되면 학기 내내 고생한 자신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하느라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지냈는데,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지난 학기에 배운 아랍어가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았다.

“언어란 게 그렇잖아요.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알던 것도 생각이 안 나고 외우기만 했던 단어들은 금세 잊어버리고요. 영어가 우리 말과 어순이 달라서 배우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아랍어는 또 달라요. 동사, 주어, 목적어 순으로 말하고 글 또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반적인 방향과는 반대로 쓰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해독하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뽑혀요. 처음 한 학기 동안은 알파벳 쓰는 것에 익숙해지느라 시간을 다 보냈죠. 알파벳 28개가 있는데 한 단어 안에서 위치에 따라 모양이 네 가지로 달라져요. 이렇게 어려운 언어를 방학 3개월 동안 쉬고 다시 시작하려니 전혀 생각이 안 날 수밖에요.”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서인지 송영우 씨는 다음 학기부터 방학 끝나기 2주 전부터 이전 학기 수업을 복습했다. 즐겁게 보내고 싶은 방학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학기가 시작되면 두 배로 해야 하는 공부…. 이렇게 네 번의 학기를 반복하다 급기야 성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자 딱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

‘내가 이 공부를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랍어 선생님을 찾으러

“아랍어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언어를 공부하지만 막상 그 언어로 무엇을 하겠다는 미래가 없으니 성적이 떨어지면 포기하는 거죠. 그래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고, 그때 선택한 것이 해외봉사였습니다. 당시에 아랍권 국가는 지원자를 받지 않았는데, 봉사단 이스라엘 지부에서 아랍어 공부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이스라엘로 떠났죠.”

한국을 떠나 그가 도착한 이스라엘은 베이지색과 사막의 흙 색깔이 섞인 벽돌 건물들로 이루어진 깨끗한 도시였다. 그리고 ‘키파’라는 작은 모자를 쓰고 검정색 옷을 입고 다니는 이스라엘 남자들과 검정색 천인 ‘차도르’로 온몸을 가리고 ‘히잡’을 쓰고 다니는 아랍계 여자들을 보면 유대교와 이슬람교 두 문화가 공존하는 게 한눈에 느껴졌다고 한다. 두 문화 사이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아 종종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래서인지 삼엄한 분위기도 감돌았다고….

그곳에서 봉사단이 했던 첫 번째 미션은 ‘아랍어 선생님 찾기 프로젝트’였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아랍어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아서 대화하고 배우는 것이다.

“날씨는 엄청 덥고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나가야 했어요. 우리를 소개 할 말을 아랍어로 종이 한 페이지 정도 적은 다음 모두 외워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었더니 한 사람씩 대답을 해주는 거예요. 길가에 앉은 한 중년 부인에게 저희를 소개하고 아랍어 선생님을 찾는다고 했는데, 한국에 관심 있는 친구가 있다고 소개를 해주었고 그분에게 아랍어를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알고 보니, 아랍 여성들에게 K-팝과 한국 드라마는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봉사단원들이 아랍 사람들에게 아랍어로 한국을 소개하고, 그들이 말을 교정해 주면서 어느새 그들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장학금 받는 수단으로 배웠던 아랍어를, 사람을 사귀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몰랐던 단어를 듣고 기억해 두었는데, 그 말을 할 상황에서 문득 단어가 생각나 말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진짜 재미있더라고요.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더 말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이집트에서 한국어 아카데미에 참석한 학생들과.
이집트에서 한국어 아카데미에 참석한 학생들과.

구름에 가려도 달은 그 자리에

아랍어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송영우씨는 ‘다른 단원들보다 내가 좀 더 잘하는구나’ 하며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맡은 일에 소홀해지고 아랍어만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제가 맡은 일을 대충 하게 되고 건방져지더라고요. 그런 태도가 잘 고쳐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는 지부장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호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아랍어에 이제야 재미를 붙이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저의 잘못된 마음가짐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침대에 머리를 박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더욱 심난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무렵, 지부장이 그를 불렀고 두 사람은 동네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영우야, 너는 지구가 자전하고 있는 걸 믿냐?”

“그렇죠. 아니, 믿는다기보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지구는 돌고 있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잖아.”

이어서 지부장은 중요한 말을 했다.

“네가 불안 속에서 사는 아랍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줘라. 그러기 위해 넌 세계 최고로 아랍어를 잘하는 사람이 될 거야. 지금은 부족해도 분명 아랍어를 유창하게 할 거다.”

얼핏 들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때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 잔뜩 낀 사이로 달이 보였다. ‘저 달이 구름에 가려도 달은 존재하고 있고, 안개가 껴서 희미한 빛만 보여도 달은 그대로 지구를 비추고 있다. 그처럼 내 꿈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꼭 빛나는 존재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아랍어 구사자’가 될 것을 믿었다.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나니, 제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더라고요. 아랍어권 학생들을 모아서 한국어 아카데미를 하고 마인드강연도 했습니다. 이웃나라 이집트에 가서 한 달 간 아카데미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요건이 좋아서 독일에까지 가서 유럽 봉사단의 행사를 도왔고, 연말에는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해 큰 행사의 스태프로 봉사했습니다. 비록 삼엄한 이스라엘 공항에서 출입국할 때마다 수많은 검문을 받고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제가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와서 그의 과제는 ‘꿈 구체적으로 만들기’였다. 아랍어 어학병으로 군에 입대한 그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수동적으로 사는 병사들 틈에서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생활했다. 마인드 레크리에이션 주최, 장기자랑대회 참가, UCC 제작 등 다양한 일에 참여하여 다수의 포상휴가를 얻어냈다.

“군에 있을 때 미래의 직업을 생각했어요. 선배 중에 아랍어로 대기업에 들어가서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힘들어서 그만두려는 것을 봤거든요. 꿈을 위해서 배울 수 있는 지금, 아랍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마인드가 건강해야 공부도 잘하고 꿈도 이룰 수 있겠더라고요. 이슬람권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제시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끌어가려면 먼저 저부터 건전하고 강인한 마인드를 갖춰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역 후에는 국제청소년연합 소속 학생회의 임원으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행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했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계획해 어떻게 진행하며, 조직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조직 구성원들이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어떻게 이끌지 등의 리더십 마인드에 대해 몸으로 직접 뛰면서 배우고 있다.

“저는 원래 이렇게 다른 사람을 챙기거나 생각할 줄 모르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꿈을 발견한 후, 장학금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던 아랍어가 꿈을 이루는 수단이 되었고, 또 그꿈을 이룰 수 있는 마인드를 배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제가 즐거워 보이지 않나요?”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지만 열심히 하는 법을 몰라 좌절했던 송영우 씨는 이제 꿈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배우고 달려가는 ‘지금’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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