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변호사 이소미

인터뷰 중에 ‘이런 변호사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어떻게 남다른 마인드를 가지게 됐는지,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지, 행복하게 일하는 비결은 뭔지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는 이소미 씨. 그의 이야기가 백 퍼센트 공감이 가서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하시는 일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지멘스 PLM(SIEMENS PLM)이라는 회사의 미국 법무팀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멘스는 독일에 본사를 둔 역사가 오래된 큰 회사입니다. 그중 지멘스 PLM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계열사입니다. 저는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지적재산권 계약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계약 시 상대편 회사 법무팀과 협상하거나 계약서를 수정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변호사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정보통신 관련 정책연구원에서 조금 일하다가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갔죠. 프랑스에서 법학을 공부하려고요. 프랑스에 있으면서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법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학생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그때 미국이 굉장히 젊은 나라로 느껴졌어요. 서른도 채 안되어 보이는 젊은 분이 하버드법대 교수님으로 있다는 사실이나, 교수님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 학술회의에서 논의되는 지적인 내용들이 젊고 신선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프랑스처럼 다듬어져 있거나 세련돼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젊고 미래가 있는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죠. 원래 유럽에서 공부하려 했던 계획을 바꾸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거기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어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자신만만했어요.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그런데 유학을 하고 뉴욕에서 취직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지요. 학업을 마치고 소송을 담당하는 한 회사에 들어갔어요

사실 저처럼 외국인은 소송을 위해 글을 쓰는 업무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만둬야했는데 그때 자존심이 무척 상했죠. 상사가 다른 회사에 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잘 써주겠다고 했는데도 거절하고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워요. 제가 너무 오만했던 거죠.

다시 직장을 구해 다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외롭고 힘들더라고요. 학교에 다닐 때처럼 사람을 사귀기도 쉽지 않았어요. 달리 마음을 풀 곳이 없어서 파티에 가기 시작했어요. 젊고 연봉이 높은 직장에 다니다 보니 자주 파티에 초대받았어요. 금요일마다 가서 수다를 떨고 술도 마시고 했죠.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머리가 너무 아프고 여전히 외로웠습니다. ‘이제 술은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금요일이 되면 다시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무척 공허했습니다. ‘지금은 술을 마시는 정도지만 이러다 담배도 피울 수 있고 마약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술 하나도 마음대로 끊지 못하고 외로움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보니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저 자신을 믿는 마음이 철저하게 무너졌어요. 그리고 마음에서 내 자신을 믿고 사는 삶을 쫓아가보니, 그 끝은 절망과 고통, 불행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보게 됐습니다. 당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며 말했어요. ‘와, 멋지다! 미국에서 변호사를 해?’라고요.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고급 식당에 가고 비싼 옷을 입으니,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제 마음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켜 보았어요.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이들은 어떨까?’ 흥미로웠던 점은, 물론 수재들이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평범한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나와 좀 다른 점이 있었어요.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저는 마음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잖아요. 가난해지는 건 한순간이죠. 마찬가지로 설령 머리가 뛰어나거나 물질적으로 풍족한 환경에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 관리할 만한 강한 마음의 능력이 없으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더라고요.

인생은 멀리 봐야지요. 공부도 길게 보며 해야 하고요. 머리가 좋으면 짧은 시간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성공한다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절대 아니에요. 인생을 놓고 보면 마음이 지혜롭고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저런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이대로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찾게 됐어요. 책도 읽어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말이죠.

이소미 씨는 청소년 및 대학생들을 위한 캠프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교사 역할도 하고 있다.
이소미 씨는 청소년 및 대학생들을 위한 캠프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교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렇군요. 그 후에 삶에서 강한 마음을 배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시는지요?

사실 저는 이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경험도 많이 부족하고 영어도 잘 못해요. 그래서 언젠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제 일을 맡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러던 중에 하루는 성경을 보았지요. 저는 크리스천이거든요. 구약성경 여호수아서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라는 구절이 자주 나와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며 항상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전쟁을 하러 가는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그 구절이 제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켰어요. 저는 전쟁을 할 때 무기나 군사가 얼마나 잘 준비돼 있는지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승리는 그런 것들에 달려 있진 않았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마음이 유약해서 조금만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닥치면 두려워서 피하며 살았어요.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맞닥뜨려 부딪히며 해결하고, 극복해 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건 무척 중요해요. 그런데 회피하면서 살아온 거예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라는 구절이 큰 용기를 주면서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도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넘어져도 일으켜 줄 분이 있으니까요.

또 하나, 업무를 보는 관점에 대한 건데요. 저는 일을 할 때 ‘회사를 위해 이 일을 해준다’라고 하기보다 ‘나는 지금 배우고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유익하고 재미있으니까요. 이런 시각으로 직장을 보면 ‘돈 받고 배우는 곳’이 되니 즐거울 수밖에 없지요. 그런 마음으로 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중요도나 가치를 자신이 보는 눈으로 계산하거나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 주어져도 마음을 쏟아 기쁘게 해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배우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지요.

 

직장이 ‘돈 받으면서 배우는 곳’이라는 말을 들으니 저도 일하는 게 즐거워지네요. 변호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는지요?

아버지가 추천해주셔서 법학과에 갔지만 처음에는 사실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법과 내가 어긋나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생각을 해 보았어요. ‘좋아한다, 적성에 맞는다’라는 게 무엇인지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변하고, 좋아하는 옷도 변하고, 어떨 때는 좋아하는 사람도 변합니다. ‘내가 좋아한다, 나에게 맞는다’라는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더라고요. 내가 경험한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지는데, 그것들은 변합니다. 내가 ‘이건 재미없어. 이건 내 적성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게 정확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많은 일들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단계가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악기를 배울 때 ‘도레미’소리를 겨우 내는 단계라면 즐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이 곡 저 곡 연주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악기를 연주하는 게 재미있어집니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정말 변호사답게 일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제가 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변호사 일이 제 적성에 맞는다고 이야기해요. 좋아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거죠.

2016년 이소미 씨 아버지 생신 때 온 가족이 하와이에 모였다. (뒷줄 가운데가 이소미 씨 부부)
2016년 이소미 씨 아버지 생신 때 온 가족이 하와이에 모였다. (뒷줄 가운데가 이소미 씨 부부)

자신의 취약한 부분은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저는 꼼꼼하지 못한 게 약점입니다. 시간관리도 잘하고 싶은데 쉽지 않고요. 그리고 미국에서 영어로 법률 일을 해야 하는데 영어실력이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게으르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이니까 일이 미뤄져도, 어질러져 있어도 그냥 용납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거죠. 부지런해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는 게으른 사람이야’라는 마음을 먼저 바꿔야합니다.” 이 말이 무척 공감이 갔어요. 저는 ‘꼼꼼하지 못해서, 영어가 약해서’ 하는 핑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오탈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실수를 할 때가 있어서 주어진 일을 중심으로 소극적으로 했죠. 그런데 마음을 바꾸어 ‘영어는 쉬워. 나는 어느 미국 변호사들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세계 최고의 변호사야!’라고 마음을 바꾸어 먹게 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일하면 같은 팀의 변호사들이 제가 설치고 다니면서 실수할까봐 불안해하고 싫어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반대로 동료들이나 상사들은 저의 그런 능동적인 태도를 좋아했습니다.

 

대학생들과 취준생들에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 제가 이야기한다는 건 너무 거창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말씀드리면,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자신이 일을 잘하면 취업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무엇인지와 그에 대한 회사와 상사의 뜻이 어떠한지를 살펴 거기에 맞추어 한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회사는 기본적인 소양이 갖추어진 사람들 중에서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찾을 겁니다. 회사에서 관리자의 위치에 계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제 이야기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너무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상응한 대우를 기대하고,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면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 됩니다. 겸손한 자세로 일과 사람을 대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회사에서 어떤 일이든 자유롭게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세요. 회사는 그런 사람을 원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위한 캠프에 참석해 멘토 혹은 교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기쁩니다. 젊음이 참 좋지요. 그들이 변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그들의 마음에 정확히 전달되면, 삶은 달라집니다.

제가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저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대학생 시절에 방황하며 배운 이야기죠. 저는 유학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지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 헤맸습니다. 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 내가 강해져야 하는 줄 알았고, 지혜로워지기 위해 많은 것을 배워야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강하고 지혜로운 마음은 ‘내가 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일 때 찾아옵니다. ‘내가 나를 버릴 수 있을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소미 Somee L. Kim
이화여자대학교와 스탠퍼드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현재 뉴욕 주 변호사로, 지멘스 PLM 미국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유학시절과 사회 초년생시절에 겪은 어려움을 계기로 강한 마인드를 갖게 된 그는 누구보다 활기차게 생활하며, 미국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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