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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성장의 비결은 도전과 존중(주)이레테크 우시혁 대표
김성훈 기자 | 승인 2017.10.20 18:33

대전시 외곽에 위치한 (주)이레테크는 직원 수 12명 규모의 작지만 건실한 회사다. 2007년 설립 첫해 매출 3억을 기록한 이래 2009년 매출 10억을 돌파했고, 지금은 20억을 돌파해 확장이전을 준비 중이다. 이 회사의 우시혁 대표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 온 것은 끊임없이 생각의 한계 밖으로 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시혁
충남대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연구용 실험장비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특유의 성실성과 꼼꼼함을 인정받아 7년 만에 지사장에 올랐다. 2007년 주식회사 이레테크를 창업한 뒤에는 CEO로서 부지런히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에 매진하고 있다.

우시혁 대표를 만나러 대전으로 가기 며칠 전, 이레테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10여 년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용 실험기기와 산업용 생산기기를 공급하는 회사’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 궁금해 ‘제품Product’ 항목을 눌러보니 오븐, 진공함 침기, 오토클레이브 등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화면에 떴다. 자료실에 올라와 있는 PDF 파일들을 읽어보았지만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회사가 삼성, LG, 한화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과 거래를 튼 노하우도 궁금해졌다.

 

보이지 않는 데서 세상을 편리하게 하는 기업

마침내 인터뷰 당일, 약속시간인 11시보다 20분 먼저 이레테크 본사에 도착했다. 1층에 있는 130평 규모의 공장에는 대여섯명의 직원들이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부품을 용접하는 직원, 드라이버로 나사못을 조이는 직원, 계기판 버튼을 눌러가며 기계의 성능을 점검하는 직원….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공구나 설비 등이 제자리에 잘 정돈된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5분 정도 공장을 둘러본 뒤 2층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우시혁 대표는 마침 안전보건공단에서 나온 직원들과 미팅 중이라고 했다. 뜻밖에 미팅이 길어지는 바람에 인터뷰는 약속시간을 꽤 넘긴 뒤에야 시작되었다.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저희가 만드는 제품이 진공상태에서 소재를 가열 및 가공하는 기기들이다 보니 자칫 사소한 결함으로도 폭발 등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새 제품이 완성될 때마다 공단에서 직원들이 나와 이상 유무를 꼼꼼히 체크하는데, 오늘따라 미팅이 길어졌네요.”

인터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는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냈다. 우 대표는 미소를 띠며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해 주었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재료에 열처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븐이 필요합니다. 함침이란 가스나 액체 상태의 물질을 재료에 침투시켜 재료의 질을 개선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재료가 산소와 만나면 산화작용으로 재료의 품질이 떨어지기에 진공상태로 만들어 처리합니다. 오토클레이브는 압력을 가해서 좁은 공간에 반도체를 높은 밀도로 만들 때 쓰는 장비입니다.”

반도체 외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터치스크린, 은행용 ATM기기의 부품, 경량화된 자동차 부품 등을 만드는데도 이레테크에서 만든 장비들이 사용된다고 한다. 설명을 듣다보니 ‘내 휴대폰의 터치스크린도 어쩌면 이레테크의 장비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창기에는 주로 국내 기업들과 거래했지만, 이제는 미국, 중국, 유럽 등으로 판매처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첫째도 둘째도 안전을 강조하는 이유

대학에서는 석유와 플라스틱 등을 주로 다루는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우시혁대표. 졸업 후 실험 및 소재 가공장비 제조업체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맡게 된 업무는 ‘비즈니스의 꽃’으로 불리는 영업이었다.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으로서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묵묵히 해내는 그를, 주변에서는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불렀다. 그런데 그런 선입견을 일거에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2004년에 저희 회사 제품을 쓰는 업체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어요. 그런데 저희 제품이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된 겁니다. 자칫 수억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배상해야 할 판국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문득 ‘디지털카메라를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처럼 고화질 폰카도 없던 시절이거든요. 화재현장 사진을 찍어와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화재가 저희 제품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윗사람들의 신임을 얻었고, 일약 지사장으로 승진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중국으로 수출한 장비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험을 했다.

“배터리를 넣고 열처리하는 기계였는데 이상작동으로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폭발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80킬로그램이나 되는 문짝이 20미터나 날아갈 정도였어요. 그 일을 경험한 뒤부터 제품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 하나도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가 안전보건공단 직원과의 미팅에 유독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공장 구석구석에 안전을 강조하는 문구를 붙여놓은 이유가 수긍이 되었다.

 

잘 된다는 자만도, 안 된다는 좌절도 필요없다

2007년, 그는 회사를 세워 독립했다. 우유부단하고 도전이나 모험을 꺼려한다고 스스로 말하는 그가 안정된 직장을 떠나 창업을 하기까지는 여러 번 마음의 싸움을 치러야 했다.

“10년 넘게 직장에 다니며 경험도 쌓았으니, 이제는 개인 사업을 하며 청소년 선도 등 좋은 일도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업을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영업인이었지 엔지니어는 아니었거든요. 이런 장비 하나를 만들려면 천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갈 만큼 공정이 복잡하지만, 정작 수요는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장비를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유통하는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그래, 이왕 사업을 할 거면 제대로 도전해 보자’는 각오로 장비 제조업체인 이레테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업체들을 돌아다니는 동안 계약도 하나둘 성사되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경영의 노하우를 터득했다고 한다. 바로 부담스러운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는 ‘이 업체는 아는 사람도 없고, 지난번에도 거절당했으니 날 만나주지 않을 거야’ 싶은 회사일수록 오히려 더 자주 찾아갔다. 그랬더니 차츰 사업이 확장되었고, 월세 30만 원짜리 사무실에서 1,2층 합계 200평의 공장으로 이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도전과 함께 제 경영의 근간을 이루는 또 한 가지 정신은 ‘존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존중은 서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정신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업무에 대해 지시를 받았다면, 설령 윗사람을 100% 만족시키지는 못해도 일을 진행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윗사람도 일을 시키기에 앞서 아랫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일을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우 대표는 거래처를 대할 때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마음을 얻는다. 많은 영업인들이 철저한 서비스를 앞세우며 계약을 종용하다가도 정작 제품을 팔고 나면 사후처리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우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이레테크의 제품을 구입한 업체에는 수리나 재정비 등 철저한 사후관리를 제공했다. 그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새로 성사된 거래도 많다고 한다. 덕분에 영업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이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연매출이 400~500억인 회사의 CEO인 선배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회사에 비하면 저희 회사는 구멍가게 수준인데도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더군요.

‘아, 내가 작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자만해서는 안되겠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시혁 대표는 최근 또 한 번의 큰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본사 건물과 부지를 팔아 세 배 정도 넓은 곳으로 이전하는 일이다. 물론 부담스럽지만 그렇기에 선택한 길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잘될 때도, 안 될 때도 있더라고요. 당장 잘된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안 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도전과 존중으로 회사를 경영해나갈 작정입니다.”

도전과 존중, 평소 자주 듣는 말이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새롭게 들렸다. 그 도전과 존중이 내년 이맘 때쯤에는 어떤 결실로 돌아올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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