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가까이

처음 셀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아버지와 딸. 네 살 때 같이 사진 찍은 이후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처음 셀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아버지와 딸. 네 살 때 같이 사진 찍은 이후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1. 지난날 아버지와의 관계

이번에 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정말 행복하고 귀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일곱 살 무렵부터 부모님의 별거가 시작됐고 인터뷰를 하게 된 스물세 살 때까지 약 16년 간 아버지는 제게 너무나 멀고 어떤 분인지 알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기간에 단 하루도 아버지 집에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뭔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고 여가 시간에는 무얼 하시는지를 알 수가 없었었지요. 학창시절에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가 담긴 조언을 받거나 대화를 하지 못한 건 물론이고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는 아버지와 왕래가 전혀 없었고, 중학생 시절부터 조금씩 연락하기 시작해 1년에 한두 번 아버지와 전화하고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는 게 전부였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용돈을 달라는 이야기 외에 다른 어떤 문자메시지 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2. 과거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토록 아버지를 소홀이 대했던 건 제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 채 아버지를 향해 마음을 닫고 살았기 때문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제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지혜롭고 예의범절과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제게 늘 한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내주셨죠.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장면이나 별거가 시작된 후에 서로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제가 17살 때 케냐에서 유학을 했는데, 유학을 반대하셨던 아버지가 저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전화로 ‘너는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고 그때부터 ‘항상 나를 최고라고 칭찬하며 믿어주셨던 아버지가 변했구나.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버지는 제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고 재혼도 생각하지 않으셨는데,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제게는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죠.

대학에 진학해 2학년이 마칠 무렵 저는 1년 동안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기로 마음먹고 아버지께 이를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를 하셨고 저는 아버지께 인사도 하지 않고 인도로 떠나버렸습니다. 인도에 가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모르고 지냈지만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아버지께 연락하고 싶은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다 반대하는 거야’ 하는 마음이 들어 도저히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3.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를 새롭게 알게 된 점

아버지에 대해 모르고 오해했던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아버지의 학창시절, 할아버지와의 관계 등에 대해 들으면서 ‘아, 아버지도 나와 같은 학창시절을 거치셨지…’ 하는 마음이 들고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또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가 저를 정말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느낀 점입니다.

아버지가 제가 해외에 갈 때 반대하신 것도 유학생활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봐 냉정하게 말씀하신 거였어요. 그런 아버지 마음을 모른 채 말만 듣고 섭섭해 했지요. 또 아버지가 ‘항상 딸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또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딸이 먼저 연락해줄 때 사랑스럽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제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저를 향한 아버지의 큰 사랑이 제 마음을 적셨기 때문입니다. ‘아, 우리 아버지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시구나! 돈 벌어 성공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사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저는 그동안 제가 아버지께 연락하면 아버지가 귀찮아하실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 전화 한 통과 짧은 문자메시지에 행복해하셨고 제가 먼저 연락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삶에는 제가, 또 저의 행복한 미래가 전부이자 걱정거리였는데 그 사실을 이번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고 지냈던 16년 동안 아버지는 혼자 얼마나 외로우셨을까를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해서 눈물이 날 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주신 <투머로우>에 감사드리고 아버지께는 죄송하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4. 아버지를 한마디로 표현해보기

소처럼 성실하고 부끄러울 것 없이 정직하신 나의 영웅! 그렇게 사시는 것이 아버지의 방식인 걸 알았습니다.

 

잊을 수 없는 아버지와의 기억 세 가지

1) 유치원에 다닐 때 우리 집 뒤에 큰 공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에 각종 동물들을 풀어놓고 키우셨는데요. 아버지와 함께 닭장에 들어가 닭에게 쪼여가며 달걀을 꺼내왔던 기억이 납니다.

2) 아버지는 집 마당에 앵두나무를 많이 심고 돌보셨습니다. 아버지와 앵두를 따서 씻어먹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3)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명절을 맞아 아버지와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아버지의 모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걸으시며 길가에 핀 들풀에 대해, 아버지가 다니던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해 다정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아버지께 <투머로우>에서 금산삼사랑농원에서 후원해 주신 진홍삼세트(9만원 상당)를 선물로 드립니다. 드시고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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